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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크어버드 Jul 04. 2020

폐기물만 5톤!

리모델링의 시작은 역시 철거다. 그림도 깨끗한 도화지가 있어야 하듯 원하는 것을 채우기 위해선 비우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 가장 먼저 철거를 시작한 곳은 테라스 공간이었는데 전에는 개인적으로만 사용하던 공간을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출입할 수 있는 오픈된 출입구로 바꾸고자 했다. 당시 테라스에서 나와 조금만 언덕을 올라가면 마을 조합이 운영하는 논골카페와 식당이 있었는데, 멋진 전망대와 함께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라 그 길을 따라 새로운 상권을 만드는 게 목표였다.


동해시 '바람의 언덕' 전망대와 그 앞에 위치한 '논골카페'

집에서 1분 거리에 이런 멋진 곳이 있던 덕에 길을 따라 관광객이 점점 늘고 있었다. 기존 출입문은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좁은 골목길에 있었는데 테라스 쪽은 노출도가 좋아 카페 출입문으로 사용하기엔 제격이었다. 리모델링 시 자재를 운반하기에도 좋은 위치라 제일 먼저 공사를 시작했다.

 

테라스 철거작업

테라스 땅이 문보다 높아 전에 조금 의아했었는데 철거를 시작하자마자 그 의문이 풀렸다. 나무 데크로 덮여있던 바닥을 뜯어내기 시작하자 땅속에서 유리 조각, 나무, 못, 플라스틱, 심지어 변기까지 온갖 잡동사니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 양이 도저히 삽으로 해결될 수준이 아니라 결국은 드릴로 땅을 깊숙이 파내며 폐기물을 꺼내야 했다. 차가 집 앞까지 못 들어오는 관계로 폐기물을 들고 나르는데만 매일 두 명씩 꼬박 며칠이 걸렸다.


테라스에 폐기물이 그렇게 많았던 이유는 나중에 이 집의 전전 주인이 카페에 방문하고 나서야 우연히 알게 됐다. 알고 보니 우리 집은 2013년에 새롭게 증축공사를 한 집이었다. 테라스도 그때 만든 공간이었는데 공사하면서 이런저런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한다.


그때도 우리처럼 젊은 부부가 주인이었는데 공사 도중 아내의 임신 소식을 알게 됐다고 한다. 아내분께서 입덧을 몹시 심하게 해서 남편분도 퇴근 후엔 아내를 돌보느라 현장에 많이 나가보지는 못했다고 한다. 나중에는 어쩔 수 없이 현장 소장님에게 거의 일을 맡기게 됐는데 공사 후 나온 폐기물을 모두 치우자니 인건비가 너무 많이 나가고 그렇다고 직접 현장에 나가 치울 수 있는 상황도 아니어서 어쩔 수없이 땅에 묻어 테라스가 그렇게 높아졌다는 거다.


폐기물을 다 꺼내고 나니 1톤 트럭 5대 분량인 5톤이 나왔는데 하루에 두 명의 인건비와 폐기물 처리 비용까지 몇백만 원의 추가 비용이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예산이 그리 넉넉지 않았는데 처음부터 예상치 못한 곳에서 돈이 줄줄 새는 게 앞으로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아무래도 불꽃 쇼를 펼치다 책상만 태워 먹은 게 아니라 주머니에도 구멍을 냈나 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집을 짓다 보면 이렇게 예상치 못한 곳에서 추가 비용이 나가는 건 흔한 일이고 전에 증축 공사할 때도 아주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해 함께 공감해줄 만한 사람이 있다는 점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테라스가 그 형태를 드러나기 시작하고 내부 인테리어도 조금씩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테라스

테라스는 새로운 출입문 통로와 야외 테이블로 변신을 시작했고 자재를 들고 나르던 지붕 뒷길은 나무 데크로 마감해 사람들이 지나다닐 수 있는 편리한 길로 만들어졌다. 출입문과 야외 벽돌 테이블은 아내가 원하던 제품이 아니라 아내와 장인어른 사이에 약간의 실랑이가 벌어지긴 했지만 멀리 일산에서 온 제품이라 다시 반품할 수도 없어 결국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원목의 나무 느낌을 원했던 아내라 처음엔 많이 속상해했지만 멀리서 오셔 매일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보니 너무 자기 고집만 부릴 수 없다고 생각해 조금씩 양보하기로 했다. 가족끼리 일할 땐 이런 갈등이 흔히 발생하는데 (인근 카페 사장님도 아버지께서 공사를 해주셨는데 하도 트러블이 많이 생겨 다시는 함께 일하지 않겠다고 했단다!!) 서로 양보하며 원만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가 필요하겠다. 아무래도 큰돈이 들어가는 공사다 보니 쉽지 않은 문제인 건 사실이다.


내부 공사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건 침대 제작과 화장실 공사였다. 남자 방과 여자 방에는 각 6인이 머무를 수 있는 침대를 캡슐 형태로 제작할 생각이었고 작은방은 온돌 형태의 2인실로 꾸밀 계획이었다. 화장실 같은 경우는 보일러실과 창고, 그리고 원래 있던 화장실까지 총 4곳의 리모델링이 필요했다.


당시 침대를 짜다가 재미있는 (당시엔 하나도 재미있지 않았던) 에피소드가 생겼는데 매트리스 구매를 위해 우리가 잠시 서울에 올라갔을 때였다. (매트리스는 아무래도 직접 누워 봐야 하는데 강원도에선 살 수 있는 제품의 종류가 많지 않아 서울로 갔다) 다양한 브랜드의 매장을 방문하다 한샘에서 마음에도 들고 가격도 적당한 매트리스를 찾아 계약을 했다. 미션을 잘 수행한 기쁜 마음으로 동해로 돌아왔고 침대도 어느새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하늘의 장난인가!


제작된 침대 사이즈를 보니 우리가 산 매트리스가(약 20cm) 생각보다 높아 2층에 올라갈 때 불편하기도 하고 침대에 앉으면 머리가 천장에 닿는 것이었다. 우리 생각은 침대에 앉아 책도 읽고 간단한 활동도 할 수 있는 사이즈로 일부러 높게 제작한 건데 이러면 침대를 크게 만든 의미가 없었다.

침대 안에 앉아서도 활동할 수 있게 매트리스의 적정한 높이를 재보니 8cm만 넘어가도 활동하기가 조금 불편했다. 결국 눈물을 머금고 매트리스 계약을 취소했는데 취소한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위약금 10%가 붙어 20만 원에 가까운 돈을 또 허공에 날리고 말았다. 너무 아까웠지만, 혹시라도 더 늦게 발견해 매트리스가 이미 도착한 후라면 더욱 난감했을 거다.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라며 긍정의 에너지를 발산하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속이 쓰린 건 사실이다.


인테리어 공사 시엔 우리처럼 바보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꼭 치수와 관련된 것들은 꼼꼼하게 챙기길 바란다. 치수 계산을 잘못해서 제작한 공간에 가구나 가전제품이 안 들어가는 경우도 가끔 봤는데 다용도실 입구가 좁아 세탁기가 안 들어가는 황당한 경우도 있다. 그런 실수를 왜 하지?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막상 공사가 시작되면 이것저것 신경 쓸 것이 많아 잠깐 깜빡하는 사이에 놓쳐버릴 수 있다. 괜히 이리저리 잘 모르는 현장을 누비고 다니기보단 전문가에게 맡길 건 믿고 맡기고 주인이 꼭 확인해야 하는 이런 부분을 놓치지 않고 체크하길 바란다.


기존 계약을 취소했으니 새로운 매트리스를 다시 구매해야 했는데 매트리스 제품은 대부분 기본 높이가 있어 결국 대안으로 라텍스 매트를 선택했다. 마침 전에 써본 라텍스 중에 높이도 알맞고 사용감도 좋은 게 있어서 잘 맞을 것 같았다. 매트리스보다 조금 저렴한 제품인 만큼 내구성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는데 교환주기를 짧게 해서 그 단점을 보완하기로 하고 인터넷으로 주문을 했다. 그나마 다시 서울로 다시 가지 않고도 주문할 수 있는 제품이어서 참 다행이었다. 이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마감 처리된 침대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또 싸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캡슐 침대 사이즈는 세로 기준 200cm 매트까지 들어갈 수 있게 넉넉한 편이었다. 제작된 사이즈도 정확하고 은은한 편백나무 향도 맡으며 기분 좋게 있는데 마감재 나무가 침대 안쪽으로 조금 들어와 있는 걸 발견했다. 매트리스 사이즈가 200cm였기에 마감재가 들어갈 여유 공간을 생각하면 세로 길이가 200cm가 아닌 205cm 정도로 여유 있게 구조를 짰어야 했는데 매트리스 크기만 생각하다 깜빡 놓쳐 마감하면서 이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이미 절반 넘게 마감한 상태였고 하루 일과가 끝나가는 늦은 오후였기에 순간 말문이 막혀 버렸다. 한편으로는 또다시 매트리스 에피소드와 마찬가지로 마감 전 지금이라도 발견한 걸 천만다행으로 여기며 붙였던 마감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장인어른이 멤버들에게 마감한 부분을 다시 뜯어야 한다고 말씀했을 후 몇 초간 흘렀던 그 정적은 내 머릿속에서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이만하길 다행이라며 애써 위로를 하고 하루를 잘 마무리했다. 아무래도 공사하는 내내 계속 위로하는 일이 생길 것만 같다. 그래도 우여곡절 끝에 완성한 침대지만 완성도도 높고 쾌적하게 제작되어 결론적으로는 이용하시는 손님들 모두 좋아하곤 하셨다.


치수 계산을 잘못해서 부랴부랴 시작한 보강작업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캡슐 침대

침대 제작과 함께 각 방의 화장실 공사도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타일 기술자 없이 장인어른이 혼자 다 하시기엔 신경 쓸 일이 너무 많았다. 남자 방과 카페 화장실 2곳의 공사를 끝낸 후 여자 방과 2인실은 업체에 외주를 주기로 했는데 여기서 또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하나 생겼다. 계약한 업체에서 2명의 타일 전문가가 오시기로 했는데 우선 약속된 날짜에 연락 없이 오지 않으셨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해 그러려니 했는데 다행히도 며칠 뒤엔 방문하셨다. (오실 때도 연락 없이 오신다) 그렇게 첫날 공사가 끝나고 다음 날 마무리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둘째 날 두 분 다 오시지 않아 연락해보니 어제 두 분이 일하다 다툼이 생겨 서로 같이 일 못 하겠다고 잠적을 하셨다고 한다. 업체 사장님도 연락이 안 된다며 당황해하셨는데 시멘트가 타일 사방에 다 발려 있던 상황이라 하루라도 빨리 지우지 않으면 안 됐다. 시간이 지나 시멘트가 굳으면 잘 지워지지 않아 안 해도 될 고생을 엄청나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보내줄 수 있는 다른 인력이 없다고 해 공사 대금을 지급하지 않는 조건으로 업체와 계약을 끝내고 화장실은 며칠간 방치되었다. 그리고 그 굳은 시멘트 자국을 나중에 스펀지와 수세미로 긁어내느라 가족들 모두 손톱이 빠지는 줄만 알았다. 마른 시멘트 자국을 지우는 일은 생각보다 정말 힘든데 이런 사고가 생기지 않게 숙박업소의 중요 요소인 화장실은 꼭 믿을만한 업체를 찾아 계약하길 바란다.

그래도 고생한 보람이 있어 슬슬 게스트하우스의 형태가 드러나고 마무리 공정 중 하나인 도배, 장판을 하는 날이 왔다. 공사 전 업체에 방문해 미리 원하는 장판 종류를 골랐었는데 시공일에 현장에 가보니 다른 장판으로 시공돼있었다. 침대와 방 색상에 맞춰 고른 장판이었는데 다른 제품으로 시공되고 나니 아무래도 영 어울리지 않았다. 이쯤 되면 마음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보니 거의 포기 상태로 그냥 쓸까 고민하다 아무래도 안 되겠기에 업체에 연락했고 다행히 원래 장판으로 재시공을 약속했다. 기존 장판을 걷어내고 새로 시공하는 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불가능하고 그 위에 덮어 씌우는 선에서 서로 합의를 봤다.


테라스, 침대, 화장실, 장판까지 마무리되니 공간의 대략적인 형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아내가 요구한 색상이나 느낌의 자재와 다른 것들이 시공돼 약간의 문제가 있긴 했지만, 다행히 전체적인 그림은 해치지 않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제는 전자제품과 테이블처럼 큰 가구와 소품들을 배치하면 공간의 느낌이 완성될 것 같다. 드디어 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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