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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크어버드 Jul 07. 2020

택배만 오는 게 아니라 욕도 같이 옵니다

차가 집 앞까지 못 오는 시골 주택을 구했다면 택배의 불편함 정도는 각오하는 편이 좋다. 지방은 오프라인 매장에서 구매할 수 있는 소품의 종류가 적은데, 아무래도 마음에 드는 물품을 구하려면 인터넷 구매가 필수였다. 문제는 에어컨, 세탁기같이 큰 제품으로 보통 인터넷으로 구매하는 게 저렴하지만 배송에 확신이 없는 점이 온라인 주문을 망설이게 했다.


집에서 주차장까진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거리인데 완만한 듯 가파른 내리막길을 따라 2분 정도 걸어 내려와야 했다. 그래서 그런지 테이블같이 무거운 물건이 오는 날이면 왜 이런데 택배를 시키냐며 전화로 욕설을 하는 기사님들이 있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수화기 너머로 육두문자가 생생하게 전달된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일이라 처음에는 적잖이 당황했지만, 나중에는 익숙해져 벨소리만 듣고도 "아, 기사님이 화가 많이 나셨구나~!" 하고 눈치챈 경우가 많았다.


나중엔 욕먹는 게 너무 싫어 하루 종일 택배 전화를 기다렸다가 카트를 끌고 주차장부터 집까지 택배를 직접 나르곤 했다. 배송 관련된 에피소드가 굉장히 많은데 그중에서도 기억나는 몇 가지를 적어봤다.
 



Episode 1. 쇼케이스 구매

<이런 곳인 줄 알았으면 안 팔았어요!!>


카페 쇼케이스는 강릉의 한 중고매장에서 구매했는데 배송은 며칠 뒤 직접 해주시기로 했다. 구매할 때부터 차가 집 앞까지 안 들어오는 언덕 좁은 길의 동네이니 꼭 카트를 가져오시고 최소 2명 이상은 오시기를 당부드렸다. 물건을 판매하신 여자 사장님께서 배송이 안 되는 지역이 어딨냐며 걱정하지 말라고 남편분과 직원분들이 잘해줄 거라고 말씀하셨다. 당시 너무 쉽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 조금 걱정되긴 했지만 충분히 당부했으니 괜찮을 거로 생각했다. 약속한 배송 날, 마음의 준비를 하고 묵호등대로 나가보니 역시나 카트는 없고 남자 사장님과 직원 두 분께서 차에서 내리셨다.

 
“사장님, 물품 구매할 때 여자 사장님께 말씀드렸는데 혹시 카트는 없나요? 차가 집 앞까지 안 들어와서 꼭 가져오길 계속 당부드렸거든요.”
“허허. 전달 못 받았는데 이거 큰일이네. 일단 길을 한 번 볼게요.”
 
언덕 아래 길을 보신 뒤 사장님과 직원들은 모두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의 뜻이 무엇인지 알았기에 또 한 번 욕먹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결국 나를 포함한 장정 4명이 한 모퉁이씩 쇼케이스를 들고 언덕을 내려오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중간중간 쉬기도 하고 가파른 계단을 내려갈 땐 호흡을 길게 내쉬며 말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배송이 끝나자 미안한 마음에 연신 감사드리며 시원한 음료와 커피를 내어 드렸다.
  

가파르고 좁은 시골길 탓에 모든 자재와 가구는 다 사람 손을 거친다.

 

“내가 10년 넘게 이 일하면서 이렇게 배송 힘든 지역은 처음이라고! 이런 덴 줄 알았으면 팔지도 않았어! 마침 직원 한 명이 더 있어서 살았지 안 그랬으면 못 해줬어요!”


그렇다, 그 마음 나도 백번 이해한다. 살짝 화가 나신 사장님께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렸고 짜증 가득했겠지만, 티도 못 내시던 직원분들께도 이 글을 빌어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쇼케이스는 눈으로 볼 땐 그렇게 무거워 보이지 않는데 막상 들어보면 전부 유리라 굉장히 무겁다. 울퉁불퉁한 돌길에 센서나 모터가 망가질까 봐 끌고 갈 수도 없었던 터라 결국 그날은 손으로 드는 게 최선이었다. 쇼케이스 배송을 겪어보니 아무래도 제빙기는 포기해야겠다.




Episode 2. 하이마트 난닝구 영업사원


냉장고, 에어컨 같은 기본적인 가전제품은 모두 하이마트에서 구매했는데 여기에도 사연이 있다. 우리에게 필요했던 큰 전자제품은 냉난방기, 객실용 벽걸이 에어컨 3개, 세탁기, 건조기 등이었다. 처음엔 하이마트 같은 오프라인 매장은 비싸니 인터넷으로 구매할까 했는데 순간 택배의 악몽이 떠올랐다. 이 물품을 모두 인터넷으로 구매하면 욕을 오지게 먹어 거의 불로 장생할 수준이었다. 금세 생각을 바꿔 원하는 브랜드별 매장을 직접 방문하기 시작했고 거실용 냉난방기는 캐리어 제품을 사고자 했다. 시내 대리점 사장님이 직접 현장을 보고 싶다고 하셔서 집에 방문 후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셨다.


"여긴 에어컨 들고 나르기도 힘들고, 공사하려면 배관도 따야 하는데 수량이 많지 않아 못 해주니 그냥 이마트나 하이마트 같은 곳에서 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거기서는 확실히 배송해줄 거란 얘기와 함께 말이다."


이런 경우가 워낙 많다 보니 "아, 또 안 해주는구나!"라고 순순히 포기하고 여러 매장을 방문하다가 다양한 회사의 제품을 동시에 구매 가능한 하이마트에서 결국 한꺼번에 구매하기로 했다. 이때도 담당 영업사원분께 배송이 힘들다고 미리 말씀을 드렸다. 괜찮다며 현장에서 요청이 오면 자기도 도와드리면 된다며 계약을 했고, 그 말은 현실이 되어 우리 영업사원분은 배송 날에 현장에 끌려가 정장을 벗고 난닝구 차림으로 땀을 한 바가지 쏟으셨다고 한다. 나중에 다른 물건 사러 방문했을 때 알려주신 건데 다행히 멱살을 잡지 않고 웃으면서 이야기해 주셔서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마무리되었다.


그래도 다시 한번 당부하건대 웬만하면 자동차 진입로가 확보된 곳으로 집을 구하길 바란다. 공사는 한 번 하면 그만이지만 가게에서 나오는 쓰레기와 맥주병, 소주병을 들고 다니느라 여름에 손목이 남아나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뭐 그래도 단단한 생활 근육을 얻을 수는 있으니 생활 속에 운동하고자 한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Episode 3. 라텍스 욕설 사건


매트리스 대안으로 구매한 라텍스 배송 때도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마침 우리가 없을 때 배송이 왔는데 장인어른께서 기사님이 혼자 매트를 들고 오시기엔 무겁고 양도 많아 카트를 끌고 등대에 미리 나와 계셨다. 기사님이 라텍스를 하차하시는 사이 장인어른은 라텍스 일부를 카트에 싣고 가게로 옮기셨다. 첫 번째 배송 후 다시 등대에 가보니 차는 없고 길바닥에 매트만 나뒹굴고 있었다. 기사님께 전화해서 배송 안 해주고 어디 가셨냐고 물어보니 얼버무리다 다시 등대로 와 매트를 카트에 함께 담았다고 한다. 그러다 순간 화가 나셨는지 갑자기 자기네 택배 시키지 말라며 소리를 치며 욕을 하고 차를 몰고 떠나서 결국 장인어른 혼자서 모든 매트를 들고 옮기시고야 말았다.


너무 죄송스럽고 화도 나서 고객센터에 클레임을 걸었더니 돌아온 답변이 원래 지방엔 친절한 택배기사님이 없다나 뭐라나 지금 생각해도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택배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주문해 놓고도 미안해 등대로 나가거나 간식과 음료를 챙겨드리곤 했는데 면전에서 욕을 먹거나 이렇게 가족들에게 피해가 갈 땐 정말이지 맘이 많이 상했었다. 전국 어디든 시골 지역은 택배 기사님에게나 주문자에게나 큰 어려움일 텐데 아무래도 우리가 젊다 보니 이런 일이 더 많이 생겼는지는 모르겠다. 근처 조합 사무장님이 우리 보고 왜 마트에서 배송 안 시키고 매번 힘들게 들고 다니냐고 물어보신 걸 보면 말이다. 저희도 배송시키고 싶어요 조합장님..


그렇다고 인터넷 구매를 안 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 앞으로도 택배가 올 때마다 늘 노심초사하곤 했다. 그리고 그 걱정은 몇 번 더 현실로 나타나 택배가 매일같이 오던 오픈 임박 기간에는 꿈에서도 택배기사님께 욕을 먹곤 했다. 욕을 하도 먹어 오래도 살겠다. 어쩌다 보니 강원도에 가서 수명이 늘었다.
 

이 정도는 부부 둘이서 거뜬히! 생활 근육이 샘솟는다.


드물긴 하지만 그 뒤로도 택배를 등대 주차장에 연락 없이 두고 가는 경우가 있어 나중엔 양이 많거나 조금 무겁다고 생각되는 물품은 미리 주차장에서 기다렸다가 물건을 나르곤 했다. 가끔 배송이 힘들다고 추가로 개인 계좌로 돈을 요구하는 분도 있었는데 상식을 벗어나 이상한 요구를 하는 경우엔 전처럼 본사에 클레임을 넣어 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변하는 건 없고 괜히 속만 더 썩었는데 고객센터에서도 전처럼 지방엔 택배기사님 구하기 힘들어 어쩔 수 없으니 원하면 택배비 2,500원을 환불해주거나 앞으로 배송을 못 해준다고 하는 답변뿐이었다. 본사에서도 안 된다니 할 말이 없었다. 그냥 이곳에 살면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구나라고 생각하며 그분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마음을 다스리곤 했다.


지방은 택배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경제 공급자가 적어 (인테리어, 택배, 배달 음식점 등 다 마찬가지다) 경쟁이 치열한 서울이 오히려 더 저렴하고 좋은 서비스를 누리는 경우가 많은데, 막연한 시골살이에 로망을 품고 있다면 이런 현실적인 모습도 한 번쯤 고려해보면 좋겠다. 무작정 도시를 떠나면 그 소중함을 느끼는 순간이 많아질 거다.


사실 몇몇 안 좋았던 케이스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택배 기사님은 친절하고 좋으셨는데 일부 이상한 분들이 우리에게 남긴 상처가 오래가서 그렇게 느끼는 것도 같다. 매번 15분 거리 시내 이마트에서 장 보기가 너무 힘들어 딱 한 번! 주문해본 이마트 배송 기사님도 첫 배송일에 다음부턴 택배 주문하지 말라며 성질을 내고 가시니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 같기도 하고 말이다.


역설적으로 도시에 지친 사람들이 이런 시골의 정취를 찾아오곤 했지만 잠깐 하루 이틀 머물다 가는 것과 이곳에서 삶을 꾸려가는 건 분명 다른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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