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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크어버드 Jul 19. 2020

바닷가 아침의 갓 구운 크루아상

게스트하우스 오픈과 함께 약 2주일 정도의 가오픈 기간을 두기로 했다. 가오픈 기간엔 전반적인 서비스 흐름을 몸에 익히고 공사 중 미처 발견하지 못한 하자를 찾기 위해서다. 리모델링 공사를 통해 뼈대가 완성됐다면 그걸 운영할 소프트웨어 기획은 아직 미흡했다. 조금 더 준비 기간을 두고 오픈할까 고민도 했지만 처음부터 너무 완벽하게 하기보다는(과연 사업에 완벽한 준비가 있기는 할까?) 오픈 후 발생하는 문제점을 파악해 이를 보완해 나가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최대한 고객의 의견을 반영해 운영 및 시설을 개선하면서 말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걱정거리는 게스트하우스 조식이었는데 주변의 다른 게스트하우스 대비 가격이 비싼 데다, 아침 식사 한 끼만은 우리 집에 찾아온 손님에게 정성스러운 한 끼로 대접하고 싶어 쉽사리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조식 퀄리티를 너무 높이기엔 수익성 측면도 분명 고려해야 했기에 고민이 길어지곤 했다. 더 나은 조식 구성을 위해 무작정 단가를 높이거나 손이 많이 가는 메뉴를 구성하면 처음엔 넘치는 의욕으로 호기롭게 시작해도 얼마 못 가 낮은 수익성에 금방 지쳐버릴 것도 같았다. 한 번 좋은 서비스가 제공되면 나중에 서비스를 줄이는 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뚜렷한 해결책 없이 고민의 날이 이어지던 중 어떤 우연한 만남을 통해 조식을 결정하게 되는 계기가 생겼다.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일 때 우리는 숙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떠돌이 생활을 했었는데 주로 호텔과 에어비앤비(Airbnb)를 이용했다. 어느 날  에어비앤비(Airbnb) 조식 시간에 주인 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주인장 부부께서도 2년 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동해에 정착하신 걸 알게 됐다. 반가운 마음에 우리도 얼마 전에 이곳으로 와서 게스트하우스와 카페를 준비 중이라고 말씀드렸더니 신기해하시며 위치를 물어보셨다. 마침 주인 부부께서도 4년 전 동해에 정착할 곳을 알아볼 때 방문해본 적이 있는 집이라고 하셨다. 신기한 일의 연속이다. 우리는 덕분에 사장님 부부의 정착기도 듣고 앞으로의 가게 운영에 관한 조언도 얻게 됐는데 여느 날처럼 카페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재미있는 제안 하나를 하셨다.


카페에서 작은 플리마켓을 할까 하는데 동해에 숨겨진 젊고 개성 있는 셀러들만 모아 진행해보고 싶으시단 거였다. 소규모 인원으로만 초대하려고 하며 괜찮다면 우리도 그곳에 멤버로 초대하고 싶다고 하셨다. 플리마켓 참석 멤버 중에는 구도심에 위치한 독립서점, 마카롱 집, 캔들 공방, 전통음식 연구소, 빵 반찬 스튜디오 등 개성 있는 분들이 많이 있었고, 첫 행사인 만큼 어떤 경제적인 이득보다는 셀러들이 한자리에 모여 생길 시너지와 인연을 위해 무상으로 공간을 제공하고 기획에 참여하실 예정이라고 했다.


당시 중복된 업종은 가급적 피하는 게 나름의 규칙이었고 우리는 카페에서 판매할 케이크를 준비해 디저트 분야로 참석할까 했지만 한창 오픈 준비로 바쁠 때라 참석이 망설여졌다. 하지만 이를 통해 좋은 인연이 생길 것 같아 초대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첫 미팅에 참석해보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당시 플리마켓은 포기하게 됐지만, 그날 미팅에 참석한 덕분에 예상했던 대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됐다. 그리고 그날의 만남 중 하나의 인연이 갓 구운 크루아상의 조식 탄생으로 이어지게 된 거다.


조식을 포함해 우리 동해 생활의 큰 인연이 된 '메르시마마'라는 곳은 하드 계열 빵에(바게트 같이 딱딱한 종류) 곁들이는 빵 반찬을 개발하는 스튜디오다. 빵 반찬이라고 하면 낯선 용어일 텐데 토마토, 바질 등의 페스토 류를 빵 위에 올려 먹을 수 있게 개발한 메뉴였다. 강원도 유기농 농장에서 재배한 바질로 페스토를 만들고 이에 곁들일 프랑스 빵, 그리고 명란 바게트 등이 인기 있는 곳이었다. 동해의 오래되고 낡은 상권에선 보기 드문 상업공간 인 데다 맛도 좋아서 SNS에서 제법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가게가 위치한 곳은 시멘트 공장 창고 옆의 후미진 골목으로 과거 묵호항이 석탄과 명태, 오징어 잡이로 번성했을 때 호황을 누리던 골목이었다. 당시 서울에도 몇 없던 백화점이 있던 곳이었으니 얼마나 번화했던 곳인지 짐작할 수 있을 테다. 비록 지금은 과거의 영광은 모두 사라지고 낡은 건물과 극장터만 남아있는 구도심의 상권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인근 골목엔 지금도 오래된 양장점, 국숫집, 그리고 네온사인 화려한 유흥주점이 뒤섞여 있었는데 이런 어울리지 않는 묘한 조합과 레트로 감성을 찾는 마니아들이 종종 찾는 지역이다.


골목 끝자락 스튜디오가 가까워지면 빵 냄새가 코를 자극하는데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던 이 골목이 지금은 빵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로 가득 차니 이곳이야말로 살아있는 도시재생의 사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첫 미팅에 참가한 다음 날, 우리는 빵도 사고 마마님의 스튜디오도 구경할 겸 가게를 방문했다. 모임에서 만나 뵀던 터라 인사를 나누고 마마님께서 무료로 빵 반찬 시식을 해주셨는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마마님도 홀로 계신 노모를 모시기 위해 얼마 전 안양에서 고향인 동해로 수십 년 만에 돌아오셨다고 했다. 오래전부터 이곳에서 영업 중이신 줄 알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스튜디오는 두 달 전에 오픈하신 거였고, 젊은 시절 프랑스에서 오랜 유학 생활을 한 뒤로는 계속 서울에 있었던 터라 동해가 고향이긴 하지만 지금은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낯선 땅이라고 하셨다.

 

빵 반찬 시식을 준비하시는 메르시마마님


마마님뿐만 아니라 우리가 주변에 알게 된 다양한 가게 사장님 중엔 의외로 타지에서 정착한 분들이 많았는데, 아무래도 해군 부대가 있어 전출입 인구가 많기도 하고 여유로운 바닷가 생활이 좋아 이주한 분들도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또한, 지방 소도시 특성상 공무원이나 자영업을 제외하곤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타지에서 오신 분들은 대부분 자영업에 종사하기도 했고 말이다.


갓 구운 크루아상과 파이, 빵 반찬을 시식하며 이런저런 서로의 사연이 오고 가는데 마침 같은 자영업자인 만큼 자연스럽게 사업 이야기도 나누게 됐다. 당시 게스트하우스 오픈이 며칠밖에 안 남았던 때라 마마님께서 조식은 혹시 어떻게 할 건지 물어보셨는데 마침 고민하고 있던 것들을 솔직히 말씀드렸다.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렇다면 메르시마마의 빵과 빵 반찬으로 조식을 구성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선뜻 제안해주셨다. 우리야 너무 좋긴 했지만 판매하는 가격을 보니 아무래도 단가가 맞지 않을 것 같아 바로 답을 할 수는 없었다. 마마님도 우리 마음을 읽었는지 빵은 물론 소매가 아닌 도매가 그대로 주시고 빵 반찬만 구매해서 사용하면 된다고 하셨다.


빵 반찬은 비교적 고가였는데 그중에서 가장 고가였던 바질 페스토는 무료로 제공해줄 테니 생각한 단가와 맞으면 같이 한 번 콜라보레이션을 해보자고 하셨다. 비록 짧은 대화였고 두 번째 만남이었지만 마마님도 비슷한 시기에 오픈하는 젊은 부부와 함께 으쌰 으쌰! 하며 시너지를 냈으면 하는 마음으로 많이 양보해서 제안해주신 것이다. 아내와 눈짓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내고 그렇게 우리의 조식 메뉴가 결정됐다.


갓 구운 크루아상과 파이 & 빵 반찬 3종으로 구성된 조식 세트


빵은 냉동 반죽 상태로 제공하며 한 달 치 수량을 미리 계산해 월에 한 번씩 정산 및 물건을 받아오기로 했다. 그리고 냉동고에서 빵을 꺼내 예약된 손님 수에 맞게 한 접시 예쁘게 나가면 되는 시스템이었다. 단점이라면 매일 아침 일찍 나가 빵을 구워야 했지만 자칫하면 나태해지기 쉬운 시골 생활의 게으름을 잡아줄 수도 있고 냉동인 관계로 재고 부담도 덜한 구조라 단점보다는 장점이 훨씬 많은 방식이었다.


결과적으로 조식 서비스는 꽤 성공적이었는데 강원도 웬 시골에서 갓 구운 프랑스 빵이 조식으로 나온다는 소문은 금방 SNS를 타고 손님을 끌어모았고 덕분에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우리 게스트하우스도 금방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젊은 손님들이 대부분인 게스트하우스인지라 SNS와 블로그에 손님들이 올려준 조식 이야기도 많이 노출되어 별도의 홍보 없이도 금방 입소문이 난 덕이었다.


의도치 않은 바이럴 마케팅 효과로 조식 시간은 게스트하우스의 하이라이트가 됐는데 조식 때문에 일부러 숙박하러 찾아오는 손님들까지 생길 정도였다. 꼭 강원도까지 와서 먹지 않아도 도시에서 흔히 맛볼 수 있는 크루아상과 파이였지만 전망 좋은 바닷가 시골의 정취를 느끼며 먹는 맛은 또 다른 가보다. 매일 아침 가게엔 갓 구운 빵 냄새가 가득했고, 그 냄새를 못 이겨 원래 아침을 안 드시는 손님들도 조식은 꼭 드시곤 했다. 창밖으론 시골 어촌의 한가로운 풍경이 보이고 카페엔 기분 좋은 음악과 갓 내린 커피 향이 식욕을 돋워준다.


조식으로 빵과 빵 반찬을 맛본 손님들은 빵 반찬의 매력에 빠져 퇴실 후 메르시마마에 찾아가 한 바구니 쇼핑을 하기도 하는 등 우리의 콜라보레이션은 성공적이었고 동해에 오면 꼭 가봐야 할 일종의 관광코스가 됐다.


생각해보니 강원도에 오기 전에는 전혀 상상치 못했던 모습으로 삶의 많은 것들이 바뀌어 있었다. 사람 일이라는 게 원래 모두 계획할 수 없듯이 막상 실행에 옮기면 이렇게 뜻하지 않게 좋은 일들이 생기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처음 동해로 왔을 때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이었지만, 하나둘씩 좋은 인연이 생겨났고 사업적으로 좋은 파트너까지 생겼으니 말이다.


아무도 모르는 타지에서 산다는 건 누구에게나 두렵고 외로운 일이다. 하지만 어디든 다 사람 사는 곳이고 그곳에서 우리처럼 뜻하지 않은 좋은 인연을 만나는 경우도 종종 생기곤 하니 새로운 삶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너무 걱정만 하기보다 한 번쯤 과감히 실행해보는 건 어떨까? 물론 준비와 기획도 중요하지만 막상 실행에 옮겨야지만 알 수 있는 것들도 많기 때문이다.


마마님 같은 경우는 동해를 떠나 서울에 머무르는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데 '푸드 스타일리스트'라는 새로운 직업을 갖게 된 아내의 첫 작품도 메르시마마의 빵 반찬이었다. 동해에 있는 동안 마마님은 아내를 딸처럼 예뻐해 주셨는데 (시어머니가 되긴 싫으시다며 ^^;) 우리의 소중한 인연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 같다.


조식 준비하는 여 사장님과 매니저 남편
푸드스타일리스트 아내의 첫 포트폴리오 '메르시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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