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리리리링~ 띠리리리링~♪” 오늘도 돈 들어오는 소리다.
일 년 중 강원도 바닷가의 최대 성수기는 7월 말~8월 중순의 여름휴가철이다. 보통은 국내보다 해외로 더 많이 휴가를 떠나긴 하지만 요새는 해외여행도 힘들고 워낙에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쉬는 관계로 끊임없이 관광객이 밀려온다. 덕분에 오픈하자마자 우리도 첫 번째 성수기를 맞았다. 아직 비수기를 경험하지 못한 우리에겐 드라마 촬영에 이은(최고 시청률 0.5%의 그 드라마다.. 그땐 꿈이 있었다) 성수기로 정말이지 금방 부자가 될 것만 같았다. 여유 있는 전원의 삶만 해도 만족스러운데 일 년 내내 성수기 같다면 이러다 금방 건물 올리는 건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새벽에도 이른 아침에도 낮에도 때를 가리지 않고 수시로 입금되는 소리가 울린다. 가끔 한밤중에 소리가 울려 잠을 깨기도 하지만 잠을 깊게 못 자도 여전히 기분이 좋다. 그건 바로 돈 들어오는 소리니까! 우리는 자본주의의 노예임을 매 순간 깨닫게 해주는 소리다. 예약과 동시에 돈이 들어오는 데 그 규칙적인 소리는 세상에 둘도 없는 멋진 합주곡 같다. 마치 모르는 사람이 힘내라며 후원해주는 듯한 경쾌한 입금 소리!
“드르륵(메일), 띵(문자), 따라라라라(입금)”
경쾌한 효과음 뒤에는 육체적인 고단함이 따라오는데 매일 넘쳐나는 빨래와 청소에 손가락은 늘 부어있었고 손목엔 보호대가, 몸에는 파스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그래도 손님이 별로 없으면 어떡하지를 걱정했던 터라 매일 고단한 육체노동에도 감사하며 성수기의 고됨을 이겨낼 수 있었다. 성수기엔 쉬는 날도 없이 계속 만실인 경우가 많은데 그래도 덕분에 청소에 요령도 생기고 속도도 빨라지게 됐다. 매일 책상에만 앉아 있다가 갑자기 육체노동을 심하게 하니 아침마다 온몸이 쑤시긴 했지만 답답한 정장에서 벗어나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편하게 출근해도 되고 청소할 땐 듣고 싶은 노동요로 틀어놓고 실컷 따라 부르며 일할 수 있는 자유에 행복했다.
갑갑한 조직생활에서 벗어난 해방감만 해도 좋은데 손님까지 많으니 그야말로 신바람이 나는 시기였다. 객실이 모자라 손님을 못 받는 날이 많아지자 “지금보다 더 규모를 크게 했어야 했구나!”라는 생각까지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인생이 어디 뜻대로만 흘러가랴. 성수기가 있으면 비수기도 있고 많이 번 날이 있으면 못 버는 날도 있는 법. 일 년 사계절을 돌고 나니 생각보다 성수기 기간은 짧고 기나긴 비수기를 잘 버티려면 벌 수 있을 때 최대한 열심히 벌어 저축해 두어야 하는 거였다.
첫 번째 여름 성수기엔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터라 닥치는 대로 열심히만 했다면, 두 번째 해엔 기대감과 함께 두려움도 컸는데 한 달 넘게 매일 손님을 치르고 바닥 넘쳐날 모래와 빨래를 생각하니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던 거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 게 오픈 전에는 아무리 힘들어도 사업이 잘 되기만을,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다 이겨내겠다고 생각하다가 어느 정도 먹고 살 만해지니 점점 더 편하게 일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이 또한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능이긴 할 텐데 아무래도 늘 몸이 피곤하니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도 같다.
오프라인 공간을 운영하는 자영업은 사무직 회사 업무와 다르게 육체노동이 많을 수밖에 없다. 청소, 시설 관리, 설거지 등 대부분이 몸을 쓰는 일이고 주로 서서 일하다 보니 쉽게 피로해지는데 체력 관리가 그래서 더 중요하다. 쉬는 날이 없는 성수기엔 당연히 몸이 피곤해질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몸이 피로하면 마음도 피폐해진다는 점이었다. 많은 손님이 오고 조금 더 비싼 가격을 받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서비스로 보답해야 하는데 매일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쉬지 않고 일하니 여름 막바지인 8월 말 즈음이 되면 웃음과 말을 잃어버리게 됐다. 몸이 피곤하면 조금 쉬어 주면 해결될 일이지만 첫해엔 비수기에 손님이 얼마나 올지 알 수 없어 몸이 버틸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쉬지 않고 버텼었다. 그렇게 힘겹게 하루하루 버티던 중 위기가 찾아왔다.
어느 날 몸은 지칠 대로 지치고 손님들의 반복되는 질문에 앵무새처럼 답하는 나를 보며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라고 생각한 때가 있었는데 이 힘들어하는 모습이 얼굴에도 그대로 드러났나 보다. 손님 한 분이 너무 지쳐 보인다며 괜찮냐고 물어본 날이 있었던 거다. 얼굴빛에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는데 은연중에 드러내지 말아야 할 내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너무 부끄러웠던 때가 있다.
그 일이 있고 나서는 아무리 힘들어도 늘 웃으며 서비스할 수 있게 노력하곤 했는데 그런 기본적인 친절과 서비스를 매일 해낸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비록 깔끔한 정장 차림으로 출근하는 직장인과,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편하게 출근하는 시골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의 모습이 남들 눈에는 다르게 보일 수는 있어도 매일 성실히 맡은 바 일을 해내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모습은 어디서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생각보다 여름은 짧고 금방 지나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손님이 없어 걱정하는 것보다 몸이 조금 힘들더라도 바쁜 게 훨씬 나은 것 같다. 영업이 잘 되는 중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다거나 건강이 나빠지는 일이 생기면(매출을 조금 포기하더라도) 영업시간이나 휴무일을 조정하거나 직원을 고용해서 일과 삶의 균형을 찾을 수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엔 아무리 힘들어도 계속해서 가게 문을 열어야 하고 그러다 보면 건강도 더 나빠지고 스트레스도 쌓이는 악순환이 생기기 때문이다.
개인사업을 할 땐 스스로 체력과 스트레스 관리를 잘해야 하는데 몸이 아프거나 업무량을 초과해도 주변에서 알려줄 사람이 없어 자칫하면 무리하기 쉽다. 자기가 오버페이스 하는 줄도 모르고 앞만 보고 달리게 되는 건데 우리 같은 초보 창업자는 더욱더 무리해서 일할 경우가 많아 처음부터 너무 욕심만 내기보다는 꼭 자신의 페이스를 찾아가며 일하기 바란다. 사람마다 체력과 스트레스 내성이 달라 정해진 기준이 있는 건 아니니 스스로 잘 관리하는 게 최고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같은 경우엔 여름 성수기가 고돼도 비수기엔 충분히 쉬어가며 여유 있는 삶을 살 수 있어 그 고단함을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집안일이란 게 아무리 해도 티는 안 나고 여름내 자라나는 잡초와 벌레들이 매일같이 괴롭히긴 하지만 성수기를 잘 보낸다면 충분히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우리는 비수기에 그동안 하고 싶었던 취미생활도 맘껏 하고 강원도 곳곳을 여행 다니곤 했다. 이때는 어딜 가도 저렴한 편이고 사람도 별로 없어 강원도의 자연과 정취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시기였다.
비록 성수기에 조금 고생해도 비수기에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이런 라이프스타일이 좋아 이대로 여기 눌러앉을까? 란 생각도 많이 했을 정도로 바닷가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님의 삶은 분명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