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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크어버드 Aug 14. 2020

저도 이런 곳에서 카페 하며 살고 싶어요

그해 여름은 매일같이 이어지는 육체노동 덕에 온몸이 파스와 테이핑으로 가득 찼지만, 첫 장사의 설렘과 늘어나는 통장을 보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비록, 13개의 침대와 4개의 화장실이 매일 날 기다리고 있어도 말이다) 첫 번째 성수기에는 오른손 인대에 무리가 와 여름내 늘어나 있었는데 사람 몸의 적응력은 위대해 둘째 해부터는 테이핑을 붙이지 않아도 그럭저럭 버텨낼 만했다.


원래 게스트하우스 오픈과 함께 열고자 했던 카페는(7월) 생각보다 청소일이 버거워 성수기가 끝나가는 8월 말 즈음 첫 영업을 개시했다. 두 달간의 기간 동안 디저트 메뉴를 연구하고 손님들께 시연하며 테스트하는 기간을 가졌는데 이게 정말 연구를 위한 시간이었는지 우리의 게으름이었는지는.. (아마도 후자가 확실하다) 그래도 처음엔 게스트하우스에 과련 카페까지 할 수 있을까 걱정이었는데 사람은 역시 닥치면 다 하게 돼있나 보다.


(2017년) 약 2주간의 카페 가오픈 기간을 끝내고, 여름내 지친 몸과 정신을 달래기 위해 3박 4일간의 짧은 휴가를 다녀왔다. 가까운 일본 도쿄에 다녀왔는데 휴식도 취하고 본격적인 카페 영업을 위한 시장조사의 목적도 있었다. 게스트하우스는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져(때마침 비수기에 돌입) 루틴 한 업무를 제외하고는 크게 시간 투자할만한 일은 없었다. 누군가는 같은 공간을 활용해서 영업하는 거니 문 열고 그냥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같은 공간에 있다고 해도 업종 자체의 성격이 달라 공간의 운영뿐만 아니라 영업전략도 달라야 했기에 휴식인지 출장인지 모를(?)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왔다.


똥손으로 그린 공간배치를 보고 아내가 엄청 비웃었다 -_-;;  똥손 남편에게 금손 아내를 선물해준 하늘에 감사를

공간에 대한 준비가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자 사업적인 부분과 메뉴 개발에 고민하는 날이 이어졌다. 2017년 기준으로(2020년 현재도 마찬가지다) 동해시 전체를 통틀어도 게스트하우스 경쟁업체는 몇 군데 없었지만 카페 같은 경우엔 그렇지 않았다. 가게 바로 위에 동해시에서 자랑하는 논골카페가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묵호등대 근처로도 제법 유명한 카페들이 있었다. 이 밖에 숨겨진 곳곳에 전망 좋은 카페가 많아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었고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들도 바닷가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는 그 틈새에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직접 만든 디저트에 집중하기로 했는데, 아내가 나름 열심히 베이킹을 배워 두었기에 맛 자체에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영업 목적으로 누군가에게 돈을 받고 판매하기엔 약간의 두려움도 있었던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래도 이를 통해 또 한 뼘 성장할 거라 믿으며 다양한 디저트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카페 영업 초반에는 메뉴가 확정된 게 아니라 그날그날 아내가 만들어보고 싶었던 것들을 선보이고 고객의 반응을 살피며 보완하는 시스템으로 이루어졌다.


(열심히 개발중인 디저트 메뉴) 가족이라서가 아니라 진짜로 예쁘고 맛있다 !

개발을 거듭할수록 디저트 메뉴는 조금씩 케이크 중심으로 변해갔는데 거기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우선, 빵을 만들기에 주방 공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았고 장비도 들어오기 어려운 시골길이었다. 하루에 손님이 얼마나 올지도 모르는 관계로 사실상 수요 예측도 불가했다. 그렇다 보니 보관 측면에서도 하루만 지나면 맛이 떨어지는 빵보다 가격은 더 높지만 2~3일 정도는 냉장 보관이 가능한 케이크가 훨씬 더 효율적이었다. 다만, 케이크로만 디저트를 구성하기엔 조금 아쉬운 측면이 있어 마들렌, 쿠키, 바닐라 크루아상 같은 디저트로 그때그때 구색을 맞추기로 했다.


메인 디저트가 될 케이크는 생크림 케이크부터 파운드케이크, 브라우니, 당근 케이크 등 몇 가지 메뉴를 돌아가며 선보였는데 시간이 지나자 한 번 오신 손님께서 케이크를 드시러 재방문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카페 전망이 좋은 데다 비주얼도 예뼈 손님들의 사진이 블로그와 SNS에도 많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온라인상에 콘텐츠가 쌓이고 노출 빈도가 높아지자 손님이 자연스럽게 늘기 시작했다. 여행 코스에서 맛집과 예쁜 카페는 빼놓을 수 없었기에 여행객들 사이에서 어느새 가게 이름이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SNS 해시태그에 #동해핫플 #동해맛집 #동해카페 같은 게 달리기 시작했는데 언제부턴가 손님들이 친구를 데리고 오며 요새 이곳이 핫플이라며 가게를 소개하고 그중에서도 당근 케이크를 찾는 경우가 많아졌다.


우리는 아직 다양한 메뉴를 시도하고 있던 터라 당근 케이크 같은 경우는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었는데, 나중에는 손님들의 요구에 따라 카페의 고정 메뉴이자 시그니처 메뉴로 선보였다. 당근 케이크 맛집으로 소문이 나기 시작하자 관광객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분들도 카페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예전엔 우리가 핫플레이스를 찾아다니곤 했는데 갑자기 우리를 보며 핫플 사장님이라고 하니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기분이 묘했다.


카페가 금방 소문을 타게 된 건 지방의 작은 중소도시의 특성도 한몫했다. 서울이야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가게가 생기고 개성 있는 곳들이 넘쳐나지만, 인구 10만이 채 안 되는 중소도시들은 대부분 큰 변화가 없는 경우가 많아 무언가 새로운 곳이 생기면 소비자들의 반응이 굉장히 빨리 오는 편이었다. 우리도 이런 지역 특성에 따라 금방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묵호항 가파른 언덕길에 서울에서 이주한 젊은 부부가 당근을 갈고 케이크를 만든다는 소문이 나며 블로그에 소개되는 일도 많아졌다. 오래도록 동네의 어르신들께서만 살던 시골 마을에 어느 날 웬 젊은 부부가 나타나 당근을 갈고 커피를 내리고 있으니 그 자체만으로도 신기하고 재밌는 스토리였나 보다. 마치 나의 로망을 대신 실현해주고 있는 듯한 대리만족을 느껴서 찾아오신다고 하는 분들도 있었으니 말이다. 작은 규모였지만 그렇게 카페는 빠르게 자리를 잡았고 한 달 만에 대기줄이 생기는 등 나름 빠르게 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다.


시그니처 메뉴인 '당근 케이크'와 '초코 브라우니'

(사실 당근 갈기 엄청 귀찮았는데 너무 좋아 보인대서 행복한 척 웃으며 간 적도 많다 ^^;; 훌륭한 사장님이 되려면 가끔은 연기도 해야 하는 법이지!)


카페 영업은 전반적으로 잘 되었지만 평일과 주말의 차이가 제법 컸다. 주말엔 손님이 너무 몰려 기다리거나 빈자리가 없어 돌아가는 손님들이 많았는데, 평일엔 정작 아메리카노 한 잔밖에 못 파는 날도 있었으니 말이다. 게스트하우스 같은 경우에도 주말 손님이 더 많긴 하지만 평일에도 손님이 꽤 있었던 것에 비하면 너무 대조적이었다. SNS 핫플이 되고 줄을 설 정도로 장사가 잘 된다고 소문이 났는데 막상 평일 하루에 커피 한 잔밖에 못 파는 날엔 맥이 탁 풀리곤 했다. 이를 통해 남들은 모르는 장사의 어려움을 몸으로 체감했는데, 조금이라도 더 매출을 늘리기 위해 사람들이 몰리는 주말에 케이크 수량을 조금 더 늘려보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양을 늘리니 다 못 팔고 재고가 남기 시작했다. 가게가 작아 6~7 테이블밖에 없는 데다 영업시간도 게스트하우스와 겹치지 않게 11시부터 6시 정도만 운영하다 보니 수용할 수 있는 인원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일 거다. 영업시간을 늘리는 방안도 고려해 봤지만, 토요일 만실인 경우 게스트하우스 손님들만 이용하기에도 공간이 부족했고 주로 조용히 쉬러 오시는 분들이 많다 보니 그분들께 최대한 쾌적한 공간을 제공해 드리고 싶었다. 결국, 디저트 같은 경우 재고가 남아서 버리느니 전처럼 조금 모자란 듯 만드는 방식으로 다시 변경했고 가끔 못 드시고 가시는 분들이 생기긴 했지만, 오히려 살짝 부족한 듯한 수량이 인기를 유지해주는 마케팅 수단이 되기도 했다. (일찍 안 가면 못 먹는 곳으로)


카페를 운영하며 느꼈던 솔직한 심정은 장사가 잘 되니 기쁘면서도 약간의 부담도 느꼈던 게 사실이다. 연예인들이 하루아침에 인기를 얻으면 그런 비슷한 공포(?)를 느낀다는데 우리는 연예인도 아니지만 그냥 취미로 했던 베이킹이 갑자기 인기를 끌자 마치 우린 아직 실력이 부족한데 어떡하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실력이 금방 들통나면 어떡하지? 이런 근거 없는 막연한 두려움을 느꼈던 것도 같다. 나보단 케이크를 직접 만드는 아내가 아무래도 더 큰 부담을 느꼈는데 손님들이 맛있다고 하든, 맛없다고 하든 끊임없이 평가받는 상황 자체가 아무래도 부담이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음식도 결국 취향이라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고 영업이 잘되면 뚝심 있게 밀고 나가면 되는 건데 우리는 처음이라 그랬던 건지 갑자기 찾아온 행운을 감당할 만큼의 경험이 부족했던 것 같다. 지금 다시 해보라면 그 기회를 살려 테이크 아웃 메뉴로 상품화해 관광 먹거리로도 팔아보고 다른 카페에 도매로 납품하는 등 사업을 키울 구상을 했겠지만, 당시엔 열심히 만들어서 팔기에도 시간이 부족했고 더 넓게 볼 시야도 부족해 그 정도가 우리가 품을 수 있던 행운의 범위였던 것 같다. 이래서 경험이 중요하고 기회도 준비된 사람에게만 온다는 게 틀린 말이 아닌가 보다. 그래도 이렇게 경험이 조금씩 쌓이다 보면 앞으로 또 다른 기회가 찾아왔을 때는 이게 기회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있는 안목과 전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시킬 실력이 쌓일 거라 믿는다.


카페를 운영하며 여행자들에게 “저도 이런 곳에서 카페 하며 살고 싶어요”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 만약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닌 진심으로 현실로 만들고 싶은 사람이라면 만약 내가 평일에 아메리카노 한 잔만 팔아도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보통 시골의 경치 좋은 곳은 유동 인구가 부족한 경우가 많아 상업적인 활용도는 떨어지는 편이다. 만약 생계형으로 카페를 해야 하는 경우라면 인터넷을 기반으로 손님이 없는 시간을 활용해 추가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일을 도시에서 미리 배워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그래야만 경제적인 압박에서 벗어나 내가 원하는 삶을 이룰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경치라도 온종일 카페에 앉아 있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만약 그게 매출 걱정, 월세 걱정이라면 도시의 삶 보다 나을게 하나도 없고 그 좋은 공간도 온전히 누릴 수 없다. 만약 본인이 소도시에서도 인터넷으로 추가적인 수입을 올릴 수 있는 디지털 노마드족이라면 훨씬 더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여유로운 소도시, 시골 생활이 가능할 것 같다. 우리도 만약에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언젠가 도시 생활이 다시 답답해질 때 시골로 돌아가 또 한 번 작은 카페를 차릴 수도 있겠다. 그때는 아마 전보다 정신적으로 훨씬 더 풍요롭고 행복하게 당근을 갈 수 있지 않을까?


일터에서 매일 이런 노을을 볼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행복이다
"저도 이런 곳에서 카페 하며 살고 싶어요"를 외치게 만든 그 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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