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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크어버드 Dec 13. 2020

강릉에서 살까 합니다

두 번째 창업 이야기

지난 글을 통해 다음 매거진의 예비 주제들을 공개했습니다. 앞으로 어떤 주제를 다뤄야 즐겁게 브런치를 운영할 수 있을지 고민 끝에, 이번엔 지난 이야기보다는 앞으로의 이야기를 현재 진행형으로 펼쳐보기로 했습니다.



지난 매거진의 마지막 글

https://brunch.co.kr/@likeabird103/44




제 글을 처음 읽는 분들을 위해 간략히 소개하자면 2017년 봄, 저희 부부는 회사를 떠나 아무 연고 없는 강원도 동해시에서 생애 첫 창업에 도전했습니다. 그곳에서 2년간 게스트하우스와 카페를 운영하다 2019년 봄, 가게를 양도하고 서울 인근인 고양시로 돌아와 전셋집을 얻었습니다. 느린 속도로 살아가는 동해에서의 삶은 선물과도 같은 시간이었는데요, 그런데 왜 다시 돌아왔냐고요?


그렇게 다시 도시로 돌아오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닷가 앞에서의 삶은 너무 좋았지만, 사업에 있어서는 특정한 분야에서 전문성의 필요성을 많이 느끼게 됐습니다. 참고로, 직장인으로서의 전문성과 사업가로서의 전문성은 분명히 다른 개념이라 오늘은 제 이야기를 예시로 들어볼까 합니다.


저는 직장인으로서는 무역 업무에 나름 전문성이 있었습니다. 전공도 국제통상학인 데다 미생의 배경 회사였던 종합상사에서 인턴 경험을 했고, 대한항공에 입사한 뒤로도 수출입 물류, 외자구매(수입) 업무 등을 담당하며 무역 쪽에 일관되게 커리어를 쌓아왔습니다. 대한항공은 아직까지 정년퇴직이 가능한 회사라(앞으로는 잘 모르겠지만요..) 이대로 직장생활을 이어가거나, 혹은 이직을 원한다고 해도 무역 관련 직무로 충분히 이직이 가능해 보였습니다. 이렇게만 들으면 한 분야에 전문성이 있어 보이시나요?


그런데 이게 사업의 영역으로 넘어가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무역이란 개념은 결국 어떤 재화나 서비스를 거래하고 그 안에서 이윤을 남기는 경제행위입니다. 결국 무역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특정한 지역, 국가의 전문가가 되거나 어떤 카테고리의 전문가가 돼야 합니다. 그런데 지역 전문가는 특정 국가에서 오래 생활한 분들 대비 경쟁력이 낮았고, 항공업이라는 카테고리는 나름 전문성은 있었으나 회사에서 독립해서 무언가를 하기엔 너무 규모가 큰 산업이었죠. 종합상사에서도 철강팀에 있었는데 이 역시 개인이 접근하기에는 너무 큰 산업이었고 대부분이 B2B 거래로 이루어집니다.


물론 업계에서 쌓인 인맥을 활용하여 무역 중개사인 에이전트를 할 수는 있었겠지만, IT 기술이 계속 발전하는 앞으로의 시대에 그리 좋은 전망의 직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행을 좋아했던 거지 항공기 자체에 대한 호기심이 많지도 않았고요. 결국, 무역이라는 직무는 아무리 전문가가 되더라도 독립이 쉽지 않아 보여 이직을 통해 직장인으로 고액 연봉을 받는 게 가장 훌륭한 선택지로 보였습니다. 물론, 그게 제가 원하던 삶은 아니었고요.


그럼 소비재는 어떨까요? 전보다 열기가 식긴 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스마트스토어 쇼핑몰 창업 열풍이었습니다. 사실 한국에 있는 물건을 해외에 팔거나 해외에 있는 물건을 한국에서 팔면 그게 무역입니다. 제 주변에도 하는 분들이 더러 있던 터라 해외에서 물건을 소싱하고 수입하는 과정을 물어보면 알려드리곤 했습니다. 소비재는 비교적 쉽게 창업이 가능하고 실무적인 부분도 전공자가 아니어도 어렵지 않게 따라갈 수 있지만, 내가 어떤 아이템을 소싱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그 아이템에 대한 관심사나 전문성이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 시장성도 있어야 하고요.


스마트스토어 관련 강의들이 요새 '부업'이란 타이틀을 달고 나오는 걸 보면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전업'으로 먹고살기에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얘기겠죠. 저도 쇼핑몰 운영을 고민하긴 했었지만 근본적인 질문인 무엇을 팔 것인가? 에 대한 질문에 답하지 못해 옵션에서 지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냥 지금 돈 되는 거 팔면 되지 않겠냐라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성격이 참.. 아예 관심 없는 일은 못하는 성격이라 말이죠. 아무래도 큰 사업가는 못 될 팔자인가 봅니다.


제가 무역분야를 예로 들어서 그렇지 일부 전문직이나 기술직을 제외하고선 사실 대부분 비슷한 상황일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일 vs 잘하는 일에 대해서는 논쟁이 많지만 대부분 잘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라는 의견이 더 우세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직장인으로서는 잘하는 일을 직무로 삼는 게 더 낫지 않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사업을 하고자 한다면 관심 없는 일을 잘하기만 해서는 절대로 지속 가능하지가 않습니다. 개인 능력이 뛰어나 사업이 잘 될 수는 있겠지만, 언젠가 한 번은 위기가 찾아오는 법이고 이번 코로나 19 사태처럼 통제할 수 없는 외부 변수들도 많이 발생합니다.


조금 더 쉽게 예를 한 번 들어볼까요. 만약 내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커피에는 관심이 없고 단순히 앞으로 유망한 업종이라고 해서 시작했다고 해봅시다. 그런데 갑자기 내 힘으로 통제 불가능한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잘 되던 가게에 적자가 나기 시작합니다. 그전엔 관심이 없어도 돈이 되니까 일을 했었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과연 관심 없고 돈도 안 되는 일을 하면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요? 여기서 만약 폐업이라도 하게 되면 초기 시설 투자금을 고스란히 날리게 됩니다.


비록 시장 상황이 힘들긴 하지만 이럴 때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그나마 지치지 않고 계속 커피 일을 할 수 있겠죠? 오프라인 상황이 안 좋아도 내가 커피를 좋아하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니 온라인 배송을 위한 쇼핑몰을 만들고 배송해서 먹을 때 더 맛있는 로스팅 레시피를 개발한다거나 말이죠. 우리 가게의 커피 특색에 더 어울리는 포장지를 위해 디자인을 개선하거나 B2B 시장에 뛰어들 수도 있겠습니다.


결론적으로, 회사를 떠나 나만의 사업체를 꾸리고 싶다면 좋아하는 일 vs 잘하는 일의 정답을 찾을 게 아니라 둘의 적절한 조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카테고리 내에서 사업성이 있는 걸 찾아 잘하는 방식으로 창업을 하는 거죠.


- 1단계: 내가 좋아하는 카테고리(분야)를 찾는다.

- 2단계: 그 카테고리 중에서 다른 소비자들도 좋아할 만한 시장성이 있는 걸 고른다.

- 3단계: 카테고리를 골랐다면 사업의 형태는 내가 가장 잘하는 분야로 정한다.


그런데, 그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게 사실 참 어렵죠? 만약, 1단계에서부터 막혔다면 아직 내가 뭘 좋아하는지를 찾기 위해 조금 더 다양한 경험이 필요해 보입니다. 재미없을 거 같은데 막상 해보니 나와 잘 맞거나, 처음에는 흥미가 없다가 조금씩 디테일로 들어가면서부터 재밌어지는 경우도 있으니 말입니다. 저에게는 와인이 그런 케이스였습니다.


사실, 초중고 정규 교육과정 또는 대학에서 본인의 적성에 맞는 직업, 분야에 대한 탐구가 충분히 이루어지면 좋겠는데, 아직은 그럴 수 없는 환경이다 보니 대다수의 국민들이 좋은 대학에 나와 공무원 또는 대기업에 취업하는 게 가장 큰 목표인 사회 분위기가 형성돼 있습니다. 그렇게 힘든 경쟁에서 살아남아 대기업에 입사했더니 이제 와서 나란 사람이 뭘 좋아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지 모르겠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어느새 회사는 '돈' 때문에 다니고 있으니 스트레스는 받을 대로 받고요. 부끄럽지만 실은 제 얘기입니다. 그래서 30대 초반에 회사를 나와 가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험이란 이름 아래 이런저런 방황을 하고 있는 거죠. 그래도, 10년 뒤에는 해야만 할 고생이라 생각하며 긍정적인 마인드로 도전하고 있습니다.


아마 주변에 이렇게 좋아하는 게 뚜렷한 분들이 있다면 회사를 그리 오래 다니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고 싶은 게 뚜렷한데 도저히 회사에서 시키는 일만 하면서는 못 살겠거든요. 반대로 이야기하면 이 정도로 해보고 싶은 일이 없다면 굳이 무리해서 사업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저희 부부는 서울로 돌아와 각자 하고 싶은 일을 찾는데 많은 시간을 썼고, 다행히 지금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조금씩 전문성을 쌓아나가고 있습니다. 아직 본격적으로 수익이 나는 단계는 아니지만 조금씩 내공이 쌓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4년간 느낀 점을 정리하다 보니 생각보다 글이 많이 길어졌습니다. 앞으로 강릉으로 떠나는 새로운 도전기가 올라올 텐데요, 지난 목요일 강릉에 당일치기로 급! 다녀온 이야기를 시작으로 이제부터 새로운 매거진을 시작해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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