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났는데 그냥 스터디를 가고 싶지 않았다. 돈이 아깝지만 어쨌든 벌금을 내고 오늘 스터디는 빠진다고 카톡을 보냈다. 이렇게 카톡 하나면 아무 이유 없이 결석할 수 있는 관계, 만약 스터디를 그만 둔다고 해도 카톡 하나면 되는 그런 관계, 그게 지금 내가 맺고 있는 모든 관계들이다. 지난번 직장에서 퇴사할 때처럼 한 달도 전에 알려주고도 욕을 먹어가며 온갖 서류를 작성할 필요라고는 하나도 없다.
백수답게 아침부터 영화를 한 편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IPTV에서 무료로 풀린 영화다. 얼토당토않은 좀비 영화일 것 같아서 엄마에게는 함께 보자고 말하지 못했다. <라이프 애프터 베스>라는 영화였는데 내가 보기에는 코미디와 멜로의 B급 감성을 잘 살린 좋은 작품이었다. 하지만 즐겨 찾는 영화 앱에 들어가 보니 막상 사람들 평이 안 좋아서 놀랐다. 5점으로 생각했던 나의 별점을 4.5점으로 은근슬쩍 내렸다. 나와 영화 감독의 감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화가 났고, 그에 또 어설프게 맞춰주는 내가 싫었다. 이도 저도 아닌 나, 그런 나의 삶.
막상 스터디를 빠지고 영화를 보고 나니 마음이 편하지 않다.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이러려고 직장을 그만 뒀나? 그래, 그러려고 그만 뒀지. 아니, 이러려고 그만 두지 않았는데? 머릿속에 골룸처럼 두 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켈록, 켈록, 마이 프레셔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배가 고프다. 인간은 결국 동물이고, 먹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스터디 벌금 때문에 돈을 썼으니까 오늘 점심은 내가 좋아하는 떡볶이를 사먹지 않고 집에 있는 짜파게티를 먹기로 한다. 짜왕이라는 제품인데 꽤 맛있다. 냉장고를 부탁해를 보며 짜왕을 먹는다. 다 먹고 나니 왠지 졸리다. 날도 추워지고, 방에 들어왔다. 따끈한 전기 장판을 켜놓은 침대 속에 들어가 눕는다.
시정아, 넌 정말 잘못됐어. 아니, 난 잘못되지 않았어. 또 골룸이 대화를 나눈다. 골룸 목소리가 듣기 싫어서 컴퓨터를 켠다. 오늘은 브런치를 시작해 보기로 했었지. 평소에 SNS라고는 전혀 하지 않는 나다. 나 자신에게 자신이 없기 때문에. 온통 잘나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주눅 들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피해왔다.
하지만 괜찮겠지? 글 쓰는 정도는. 나 같은 백수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기분이 좋았는지 아니면 하루 종일 우울했는지, 미래에 대한 희망에 부풀었다가 머리에 닿을 듯 낮은 회색빛 하늘 아래 다시 작아져 버려도, 그래도 말이야. 괜찮잖아, 글 쓰는 정도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