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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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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과인간 Nov 02. 2015

10월 12일 백수의 하루

 아침에 일어났는데 그냥 스터디를 가고 싶지 않았다. 돈이 아깝지만 어쨌든 벌금을 내고 오늘 스터디는 빠진다고 카톡을 보냈다. 이렇게 카톡 하나면 아무 이유 없이 결석할 수 있는 관계, 만약 스터디를 그만 둔다고 해도 카톡 하나면 되는 그런 관계, 그게 지금 내가 맺고 있는 모든 관계들이다. 지난번 직장에서 퇴사할 때처럼 한 달도 전에 알려주고도 욕을 먹어가며 온갖 서류를 작성할 필요라고는 하나도 없다.


 백수답게 아침부터 영화를 한 편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IPTV에서 무료로 풀린 영화다. 얼토당토않은 좀비 영화일 것 같아서 엄마에게는 함께 보자고 말하지 못했다. <라이프 애프터 베스>라는 영화였는데 내가 보기에는 코미디와 멜로의 B급 감성을 잘 살린 좋은 작품이었다. 하지만 즐겨 찾는 영화 앱에 들어가 보니 막상 사람들 평이 안 좋아서 놀랐다. 5점으로 생각했던 나의 별점을 4.5점으로 은근슬쩍 내렸다. 나와 영화 감독의 감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화가 났고, 그에 또 어설프게 맞춰주는 내가 싫었다. 이도 저도 아닌 나, 그런 나의 삶.


 막상 스터디를 빠지고 영화를 보고 나니 마음이 편하지 않다.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이러려고 직장을 그만 뒀나? 그래, 그러려고 그만 뒀지. 아니, 이러려고 그만 두지 않았는데? 머릿속에 골룸처럼 두 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켈록, 켈록, 마이 프레셔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배가 고프다. 인간은 결국 동물이고, 먹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스터디 벌금 때문에 돈을 썼으니까 오늘 점심은 내가 좋아하는 떡볶이를 사먹지 않고 집에 있는 짜파게티를 먹기로 한다. 짜왕이라는 제품인데 꽤 맛있다. 냉장고를 부탁해를 보며 짜왕을 먹는다. 다 먹고 나니 왠지 졸리다. 날도 추워지고, 방에 들어왔다. 따끈한 전기 장판을 켜놓은 침대 속에 들어가 눕는다.


 시정아, 넌 정말 잘못됐어. 아니, 난 잘못되지 않았어. 또 골룸이 대화를 나눈다. 골룸 목소리가 듣기 싫어서 컴퓨터를 켠다. 오늘은 브런치를 시작해 보기로 했었지. 평소에 SNS라고는 전혀 하지 않는 나다. 나 자신에게 자신이 없기 때문에. 온통 잘나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주눅 들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피해왔다.


 하지만 괜찮겠지? 글 쓰는 정도는. 나 같은 백수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기분이 좋았는지 아니면 하루 종일 우울했는지, 미래에 대한 희망에 부풀었다가 머리에 닿을 듯 낮은 회색빛 하늘 아래 다시 작아져 버려도, 그래도 말이야. 괜찮잖아, 글 쓰는 정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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