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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과인간 Nov 12. 2020

괜찮아마을에서의 일주일

#백수일기 15~20일차_2020년 11월 8일

우리는 결국 괜찮지 아니했다.


  괜찮아마을을 알게 된 건 어떤 멋진 계기가 아닌, 그냥 인스타 광고에서였다. 카피는 ‘일주일 동안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올게.’ 목포에서 청년들이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꾸리며 만든 괜찮아마을. 그곳에서 일주일간 머무를 사람을 모집한다는 글이었다. 상담 시간도 있고, 투어도 있고, 편안하게 쉬어도 된다고 했다. 이왕 여행 가는 거, 혼자 가기보다는 새로운 사람들과 일주일 지내보는 편이 이것저것 배울 게 더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신청하게 되었다. '힐링 좀 해야지.' 하는 편한 마음이었다.


  그렇게 일주일 다녀온 소감은, 우리 기수 사진작가님의 사진전 제목으로 대신 말하겠다. <우리는 결국 괜찮지 아니했다>. 괜찮아마을인데, 괜찮지 않았다. 5박 6일간 거의 모든 것을 불태우고 온 느낌이었다. 매일 4시간, 5시간씩 자면서 내 체력의 끝을 보았다. 내향적인 성향에, 주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던 내게 계속 이어지는 프로그램과 단체생활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얻은 것은 만약 혼자서 여행을 했다면 절대 얻지 못했을 소중한 것들이었다. 모든 일정을 나열하자니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내가 얻어 온 것만 짧게 추리려고 한다.



1. 따뜻함을 배우다


  먼저, 수많은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며 따뜻함이란 무엇인지를 배웠다. 늘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익숙한 나와는 다르게 괜찮아마을 주민들은 진짜로 따뜻했다. 다른 사람을 챙긴다는 게 뭔지, 선을 넘지 않으면서도 상대방에 대해 알아가고 싶다는 뜻으로 던지는 질문은 뭔지,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는 법은 뭔지, 단지 고개만 끄덕일 뿐인 공감이 아니라 진짜 공감이 뭔지를 알게 되었다. 물론 이런 따뜻함은 감정의 영역이기 때문에 내가 바로 기술로써 체화하거나 사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어떠한 일을 할 때 상대방의 생각과 마음을 먼저 물어보고, 조금이나마 긍정적이고 부드럽게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다정함을 내게 알려준 소중한 인연들과 연락을 이어갈 수 있음은 물론이다.



2. 편견을 깨다


  또한 편견 두 가지를 극복하고, 사람들의 다양성을 있는 그대로 존중할 수 있게 되었다. 부끄럽지만 예전의 나에게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스스로 열린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남자인데 딩크족이면 매우 자기중심적인 성향의 사람이다. 아이를 키울 때 아무래도 여자보다 남자의 역할이 훨씬 적은데도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너무도 중요하다는 것이기 때문에. 그동안 내가 만나 온 5~6명의 딩크족 남자사람들은 모두 그랬기에 나도 모르게 확신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이보다 상대방에게 더 집중하고 상대방을 사랑해주고 싶어서 딩크족이 되고 싶다는 사람이 있었다. 생각해보지 못한 관점이었고, 내 짧은 경험으로 남자 딩크족 전체를 편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 것이 부끄러워졌다. 스스로 마치 요즘 여자들 이기적이라 애 안 낳는다! 고 말하는 꼰대 같지 않았던가.


  또 하나 깨진 편견은, ‘채식주의는 영양학적으로는 좋지 않지만 환경과 동물에 대한 사랑으로 하는 것이다.’라는 것이다. 본인의 건강을 위해서 채식을 하는 채식주의자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녀는 <더 게임 체인저스>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추천해주며 채식이 더 몸에 좋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이 다큐를 봤는데, 약간 채식 만능주의로 빠지는 흐름이라 모두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채식을 하는 것에 대한 영양학적 편견은 벗어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채식주의자들을 위해 카페에 가면 두유 옵션이 있는지 한번 더 물어보게 되었다. 옵션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두유 옵션을 들일 날도 빨라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3. 환경을 위하다


  환경을 위한다는 게 생각보다 거창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처음으로 '용기내 프로젝트'를 시도해보았는데,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음식을 포장할 때 이미 가지고 있는 용기를 내밀며 이곳에 담아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가게 사장님들도 일회용품을 줄이기 위한 목적에 어렵지 않게 동참해주셨다. (오히려 음식을 더 담아주신 곳도 있었다) 집에 돌아온 이후로 나는 음식을 포장할 때는 집에 있는 용기를 내밀며 이곳에 담아달라고 요청하고, 배달음식을 시킬 때는 일회용품 받지 않기에 체크한다. 카페에서는 일회용 컵 대신 머그컵에 음료를 담아달라고 요청해 다 마시고 나간다. 환경을 사랑하는 어떤 친구는 텀블러가 없으면 아예 음료를 마시지 않는다고 하던데, 나는 그렇게까지는 할 수 없지만 앞에서 말한 작은 실천들은 어렵지 않게 하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환경오염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다니, 너무 간단한 거 아닌가!



4. 해 먹는 기쁨을 알다


  마지막으로, 음식을 해 먹는 기쁨을 알게 되었다. 회사를 다니고 자취를 하면서 내게 밥은 ‘사 먹는 것’ 혹은 ‘시켜먹는 것’이었다. 시간이 없으니 그냥 사 먹는 게 편했고, 게다가 내가 한 음식은 맛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괜찮아마을에서 피곤한 몸으로 매일 저녁을 해 먹다 보니 (체력이 달려서 사실은 사 먹고 싶었긴 하다) 해 먹는 과정, 그리고 치우는 과정이 밥을 먹기 전의 준비운동과 마무리 운동처럼 느껴졌다. 한 끼를 조금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먹을 수 있게 되었달까. 게다가 내가 먹고 싶은 방식대로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순하게 먹고 싶으면 간을 덜 하고, 좋아하는 재료를 더 넣을 수도 있다.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음식을 직접 해 먹는 과정에서 마음 깊은 곳의 무언가가 충족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경험 덕에 하루 한 끼는 만들어 먹고 있다.     




  위에서 새롭게 깨달았다, 배웠다고 했던 것들이 어쩌면 머릿속으로는 이미 알고 있던 사실들일 수 있다. 하지만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별개의 영역이다. 괜찮아마을에서 나는 이러한 작고 소중한 습관들을 몸에 익혀 왔고, 계속해서 생활 속에서 실천하면서 살아가려 한다. 


  누군가 내게 괜찮아마을 프로그램에 지원하고 싶다고 한다면, 나는 일단은 체력이 좋은지, 일주일간 적게 자면서 단체생활할 자신이 있는지를 물을 것이다. (내 경우에는 체력이 부족해서 다녀온 뒤 하루를 꼬박 잠으로 채웠다) 만약 그 사람이 자신 있다고 한다면, 나 또한 자신 있게 권하겠다. 자기를 돌아보고, 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시간을 다양한 경험과 색채로 채우고 싶은 사람이라면 주간 괜찮아마을을 추천하고 싶다. 내게 괜찮아마을은 쉬러 가는 곳보다는 배우고 깨달으러 가는 곳이었고, 나는 많이 배우고 많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P.S. 혹시 목포 괜찮아마을이 궁금하다면 인스타그램 @dwv_mokpo, 혹은 홈페이지를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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