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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과인간 Oct 14. 2016

별 것 아닌 이별

  남자가 어두운 표정으로 앉아 있다. 팔짱을 끼고 시선은 테이블에 고정시킨 채다. 그 앞에 앉아 있는 여자는 큰 눈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다. 그렇게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마침내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여자는 애처로운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지만 계속 울기만 할 뿐 별다른 행동이나 말을 하지는 않는다. 남자는 여자를 쳐다보지 않고 몸을 돌려 자리를 뜬다. 남자가 카페 문을 나서고 나서도 여자는 자리에 앉아 눈물방울만 떨어뜨린다.


  "저것 봐, 헤어지는 거 별거 아니네."

  그 모습을 처음부터 지켜본 친구가 말한다.


  그래,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별것 아닐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 모든 과정이 채 20분을 넘기지 않았다. 2년을 함께 했어도 남이 되는 데는 20분도 걸리지 않는 것, 그게 이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생각에 둘의 이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2년 동안 쌓아왔던 게 20분 만에 끝이 날 리가 없다.


  재미있는 영화가 개봉하면, 그 사람을 떠올리겠지. 물론 친구와 같이 보러 가거나 혼자 가게 되겠지만, 그래도 그 사람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맛있는 걸 먹거나, 먹고 싶은 음식이 생기면 그 사람을 떠올리겠지. 당연하다. 늘 같이 먹어 왔으니까. 학교 시험을 망쳤거나, 회사에서 힘든 하루를 보내면 또 그 사람을 떠올릴 거다,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술을 많이 마신 날도, 친구와 다툰 날도, 기다리는 버스가 한참이나 오지 않을 때도, 창밖에 보이는 경치가 너무 예쁠 때도, 뛰어노는 아이들이 귀여워보일 때도, 그 사람을 떠올리겠지. 그 시간 모두가 이별의 과정이다.


  그리고 더 이상 무슨 일이 생겨도 그 사람을 떠올리지 않게 될 때, 아니 그렇게 될 리는 없다. 그러니까, 아주 잠깐씩만 그 사람을 떠올리게 될 때. 둘이 함께했던 거리를 걸을 때, 둘이 자주 듣던 음악을 들을 때, 둘 다 좋아했던 음식을 먹을 때, 그렇게 가끔씩만 그 사람이 생각난다면. 잘 지내는지 궁금하기는 하지만 이내 에이, 잘 지내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된다면. 그 사람을 떠올릴 때 더 이상 가슴이 아프지 않다면.


  그제야 진짜로 이별한 게 아닐까.

  그런데도 이게 별 거 아니라고, 그렇게 말할 수 있겠니?


  하지만 "와, 이렇게 이별이 쉬우면 나도 연애 좀 할까 봐."라고 말하며 신이 난 친구에게 차마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어차피 너도 느끼게 되겠지. 이 세상에 별 것 아닌 이별이란 없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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