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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과인간 Nov 30. 2021

나는 아직도 네가 어떻게 죽었는지 모른다

D-0 (2020. 12. 22)



  "J가 죽었대."



  예감이 좋지 않은 날이었다. 엊그제 15년 지기 고등학교 친구들 J와 R과 셋이서 근사한 곳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연말이라 와인과 케이크도 곁들였고, 예쁜 사진도 찍었다. 기분 좋게 놀고 들어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헤어진 다음부터 J가 잘 연락이 되지 않았다. 집에 들어간 것까지는 확인했는데, 그 다음날 아예 연락을 받지 않았다. R과 내가 몇 번씩 J에게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고, 카톡에도 답이 없었다.


  혹시 내일까지 연락이 없으면 집에 가보자,라고 R과 이야기를 나누고 잠든 그날 밤. 새벽에 드디어 J에게서 답장이 왔다. "ㅇㅇㅇ..." 처럼 초성만 써있는, 뭔가 취한 것 같은 카톡이었지만 그저 '잘 있어서 다행이다. 걱정했네.'라고 생각하며 카톡을 확인하고는 다시 잠이 들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오전이 되어도 J에게선 연락이 없었다. 출근하는 날이었는데도.


  불안한 마음은 다시금 커져갔다. 이제 연락이 올 때가 됐는데. 이상하다. 집에 가봐야 하나? 그러다 오후 1시 30분쯤, R에게서 연락이 왔다. 전화를 받자마자 흐느끼는 R의 목소리가 들렸고,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R은 울며 띄엄띄엄 말했다. "00아... J가... 죽었대."


  '죽었다'는 말이 너무도 차갑게 느껴졌다. 죽었다니, 엊그제만 해도 같이 술을 마시고 웃고 떠들던 내 친구가 죽었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고 되묻자, J의 아버지가 마지막에 전화했던 R에게 연락을 해서 J의 죽음을 알렸다고 했다. 우리에게 카톡을 보내고 난 조금 뒤 새벽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장례식장에서 만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한참 멍을 때리다, 갑자기 현실로 느껴지는 괴로움에 목놓아 울었다. 그러다 다시 멍을 때리고, 현실을 믿지 않다가 다시 엉엉 울었다. 그런 와중에도 검은색 옷을 골라 입고 장례식장으로 향할 정신은 있었다.



  자살자의 장례식장에 간 건 처음이었다. 아니, 사실 두 번째였다. 처음은 그보다 일 년 전에 있었던, J의 어머니 장례식장이었다. 그게 모든 비극의 시작이었다. 아니, 이것도 틀렸다. 그전에 시작된 비극이 J의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아넣었겠지.


  아무도 부르지 않은 듯, 장례식장에는 J의 아버지와 고모만 계셨다. 아버지도 고모도,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지친 안색이었다. 1년 반을 만난 J의 남자친구는 그 자리에 없었다. 그놈, 장례식장에 한 번이라도 얼굴은 비췄을까.


  나와 R은 J의 아버지께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었다. 그렇다고 J가 어떻게 죽은 건지 물을 용기도 없었다. 우리는 그저 친구의 영정사진을 향해 두 번 절을 하고, 소식을 모르고 있을 다른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그게 당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친구들에게 죽음을 알리는 일은 끔찍했다. R, 그리고 J 고등학교  친구라 고등학교  친구들에게는   연락할  있었지만 나머지 다른 친구들에게는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J 인스타그램을 뒤져서 댓글을 많이 남긴 사람에게 연락할 수밖에 없었다. 인스타그램  웃고 있는 J 얼굴을 계속해서 돌려 보며.


  연락이 닿은 친구들에게 해야 할 말은 "J가 죽었어." 였다. 죽었다는 말이 그토록 차가운 단어인 줄, 그날 알았다. 그전까지 내 주위 사람들 중 세상을 떠난 사람은 '돌아가신' 분들 뿐이었다. '죽었다'라는 말은 '돌아가셨다' 라는 말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을 얼릴 수 있는 단어였다.



  연락을 다 돌린 후 자리에서 일어나자 아버지께서 우리를 배웅해주시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착한 애였는데. 지 엄마 따라갔어." 드릴 말씀이 없었다. 다만 '착한 애'라는 말이 가슴에 탁 하고 걸렸다.


  "너희는 빨리 결혼해라." 이게 J 아버지가 우리에게 하신 마지막 말이었다. 대체 왜 그런 이야기를 하신 건지 알 수 없으면서도 알 것 같기도 했다. 전에 J의 결혼이 엎어진 적이 있었다. 그때 결혼했다면 그 애는 지금쯤 살아있었을까. 딱히 좋은 남편감이 아니었기에, 불행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불행하더라도 J가 살아있기를 바랐다. 같이 그 불행을 나누고 덜어줄 수 있기를 바랐다.


  장례식장을 나오며 R이 중얼거렸다. "영정사진, 너무 안 예쁜 사진으로 했다. J는 사진 예쁘게 찍는 거 좋아하는데..." 여기에도 뭐라고 답해야 할지 나는 몰랐다. 하루 종일 단 한 마디도 제대로 뱉지 못했다.


  도저히 혼자 사는 집에 들어갈 수 없는 저녁이었다. 남자친구 집에서 하루 자고 가기로 했다. 장례식장에 가서 영정사진을 보고 나니 정말로 J가 죽었다는 게 실감이 났다. 줄줄 눈물을 흘리며 지하철을 탔다. 사람들이 쳐다봤겠지만, 누구의 시선도 느낄 수 없었다. 시야가 그저 뿌옇기만 했다. 지하철에 내려서 집으로 가는 언덕길을 오르다가 멈춰 서서 소리내 꺼이꺼이 울었다. 그날 밤에는 잠을 자다가도 자주 깼고, 깨면 눈물이 났다.


  나는 아직도 J가 어떻게 죽었는지 모른다. 여전히 그걸 물을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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