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양이과인간 Dec 04. 2021

내가 밥을 먹는 게 너한테 미안하다

D+1(2021. 12. 23)



  일어나자마자 J 생각이 났다. 너 행복하냐. 좋냐. 사후세계 있냐. 어머니 만났냐. 만나서 맘껏 원망하고, 안겨서 울었냐. 그랬으면 좋겠는데. 어제보다 눈물은 덜 난다.


  죽을 마음이 들 때, 친구 따위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 안다. 나도 예전에 죽고 싶다는 마음이 자주 들었을 무렵, 엄마는 맘에 걸렸지만 친구가 맘에 걸린 적은 없었다. 내가 없어도 모두 잘 살아갈 거라고 생각했다.


  다만 그럼에도 '친구가 있어서 고맙고, 나도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할 수는 있는 건데. 그 역할을 해주지 못했구나. 내가 무언가 했다면 다른 결과가 있었을까. 그래도 결과는 같았을까.



  네게 너무 미안하다. 조금 더 잘해줄 걸. 속 얘기 꺼내게 해 줄 걸. 묻지 않는 게, 떠올리지 않게 하는 게 네가 원하는 걸 거라고 생각했어. 모른 척하고 같이 신나게 노는 대신, 요즘 마음은 어떤지 물어봤더라면 더 나았을까. 어차피 나랑 놀고 있어도 네 맘 깊은 곳은 신나지 않았을 텐데.


  왜 네가 스스로 몸에 상처를 내는데도 나는 그냥 '심리상담 꼭 가라'는 소리밖에 하지 못했을까. 괴로워하는 네 손을 잡고 같이 상담을 받으러 가고, 밖에서 진료 잘 받고 오게 기다려줄 걸.


  그날 취해서 나를 안아주고 집에 돌아가던 너를 강제로라도 우리 집에 데려와서 재울  그랬다. 그럼 적어도 지금  순간엔 살아있었을 텐데. 어느새 마음을 너무 놓아버렸나 .


  내가 어쩔 수 없는 영역이 있었던 건 안다. 하지만 내가 어쩔 수 있는 영역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랬는데 내가 그걸 소홀히 한 건 아닐까. 아파하면서 계속해서 나는 자책과 자기방어를 왔다갔다한다. 자책도, 자기방어도 둘 다 하고 싶지 않은데.



  J야, 너의 여린 마음씨와 귀여운 얼굴, 엉뚱한 개그 코드와 찰진 욕까지 모든 걸 참 좋아했어. 네가 알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리워서 어쩌지. 나는 지금 어쩔 줄 모르겠다. 너를 후회 없이 사랑해 주었으면 좋았을 걸. 어쩜 이렇게 후회가 덕지덕지 붙어있을까.


  아침이랑 점심은 걸렀다. 저녁은 남자친구가 죽을 사다 줘서 먹었어. 식욕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먹으니까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더라. 그러면서도 내가 뭔가 먹는 게 너한테 미안하게 느껴졌어.


  나는 잘살게. 미안해. 나만 잘먹고 잘살아서. 그렇지만 너를 절대 잊지 않을 거야. 내 인생에서 가장 슬펐던 날, 가장 많이 운 날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도, 수능을 망쳐서 재수하게 된 날도 아닌 바로 어제였어.


  J야, 네가 정말 좋아. 살아있을 때 더 많이 말해줄 걸. 네가 평생 함께할 줄 알았지 뭐야. 앞으로는 가까운 사이에서 조금 더 표현해야겠다. 하늘나라 적응중일 텐데, 적응 잘하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