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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동현 Jan 15. 2020

배용균, 「참선, 배용균의 작품세계」

한국영화사를 위한 비망록


아래 글은 잡지 『영화세계』 1990년 4월호에 실린 영화감독 배용균의 인터뷰다. 쓸 일이 있을 것 같아 복사해뒀지만, 이 글을 다시 읽을 일은 없을 것 같다. 어느 날 종적을 감춘 소위, ‘전설’의 감독인 바 누군가에게는 흥미로운 인터뷰라 생각하여 디지털 파일로 옮겼다. 띄어쓰기·표기법은 수정하지 않았으나, 습관적 수정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본문의 주註 또한 내가 넣은 게 아니다. 그러나 혹시 이 글을 전문적으로 활용할 생각이 있다면 필히 원본 문서를 확인하길 바란다. 


배용균 감독





「외지기자와의 인터뷰 - 參禪(Mediations) 배용균의 作品世界」, 『영화세계』, 1990.04




인터뷰어 – 아루나 바수데브(cineyama 편집장) / 李珍洙 譯


1981년 배용균 감독은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원작 시나리오를 구상하였으나 1989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영화로 완성시킬 수 있었다이 영화의 원 상영시간은 세시간이나 2시간 30분으로 줄여져서 칸느의 주목할만한 영화(역주:Un Certain Regard) 부분에서 처녀 상영된다그후 이 영화는 로라클노 영화제에서 황금 사자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한국의 도시 대구에서 1951년에 태어난 배용균 감독은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으나 현재는 대구에 있는 한 대학에서 서양학과 교수로서 재직 중에 있다아직까지 영화제작의 정식 훈련을 받아 본 적이 없는 그는 이 때문에 오히려 영화에 아주 새롭고도 개인적인 접근을 했다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에 대하여 어떻게 이야기되는가이 영화는 (Zen)에 대한 영화라기보다는 영화 자체가 이다라고 말하여지기도 한다.



당신은 화가로서 출발했고 지금도 서영화과 교수라고 알고 있는데 당신이 영화를 제작하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배 거의 청년시절 이후 저는 계속 영화를 사랑해 왔고 언젠가는 영화를 한편 제작하게 될 것임을 확신했었습니다. 어렸을 때에도 예술은 제 인생에서 가장 귀중한 것이었습니다. 언젠가는 어떤 사람이 제가 대통령이 될 마음이 있는지 제게 물었습니다. 그때의 제 대답은 단연코 아닙니다. 였지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예술가가 되고 싶다는 점에서는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  그렇다면 당신은 화가만으로서는 만족할 수 없었습니까?


배 제게 있어서 영화와 그림은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화가로서의 한 면의 기질이 있다면 영화감독으로서의 다른 한 면의 기질이 있습니다. 샤티야트 레기(Satyajit Ray)나 브레송, 구로자와 아끼라 같은 많은 영화 감독들 역시 화가 였습니다.


*  당신은 그림같은 영상철학으로서의 영상인달마를 제작하는데 여러 해가 걸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이 영화의 개념이나 구성은 어떻게 진척되어 갔는지요?


배 저는 어렸을 때 심각한 고뇌를 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 고뇌는, 삶과 죽음에 대한 인식이 커지면서 시작되었는데, 삶과 죽음의 이중성(dualitiy)은 제게는 모순처럼 느껴졌지요. 저는 사회적인 관습에 의하여 부여되는 적법성이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허무주의(Nihilism)에 빠졌습니다. 저는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철학에 의한 종교적인 질문과 믿음에 매력을 느낍니다. 제 개인적인 삶과 죽음에 대한 인식은 삶과 죽음에 대한 일반적인 문제로 확장되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이 영화를 제작하게끔 된 영감(inspiration)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데 실로 매우 단순하고 기본적인 생각에서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나는 영화를 감독하겠다는 생각을 벌써부터 해왔었습니다. 나는 오랜 기간동안 이것을 준비하여 왔고 카메라, 조명 등도 사들여 왔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국의 영화 산업에 뛰어 들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제가 그 세계에 들어가면 즉시 어떤 압력을 받게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제가 관심이 있어하는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게 되지요.


왜 당신은 카메라의 조작부터 편집까지 혼자서 모든 일을 했습니까또 왜 당신은 전문가와 같이 일하지 않았습니까사실 이러한 일들은 숙련된 기술이 필요한데요.


배 저는 대학 시절에 유현목 감독 밑에서 조감독으로 영화 일을 해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몇 개월 동안 저는 기존의 영화 산업 내에서 일을 하는 것이 제게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체제는 상업적인 영화에서는 좋지만 작가로서의 영화에는 좋지 않은 것 같더군요. 저는 그 세계일은 관계하지 않을 것을 결심했습니다. 제가 원한 것은 작업실 내에서 바깥세계와는 동 떨어져 있는 화가와 같이 혼자서 고독하게 자신의 세계의 주인으로서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동시에 이러한 고독을 통하여서 사람들은 서로 의사소통(communication)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술은 일 개인에 의하여 만들어지지만 그것은 보편성을 띨 수 있습니다.

진정한 자유와 완벽한 통제(control)를 위해서 제가 필요로 하는 것은 영화 제작의 기술적 측면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술에 관한 책을 공부했고 제가 어디에 가든 카메라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전문적인 기술인들과 같이 작업을 하려고 했습니다만 곧 공동 작업이 제게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일하기에는 제가 요구하는 것이 너무 많으니까요.


아마도 편집 부분에서도 똑 같았으리라 생각됩니다당신은 (편집기술도 배워야 했습니까?


배 그렇습니다. 제 영화의 리듬은 다른 영화와는 다르지요. 한국의 편집자들은 제가 거부하는 양식으로 편집을 합니다. 미국 영화의 영향 때문에 마치 TV의 광고처럼 빠른 리듬의 영화를 만듭니다. 이런 방식의 편집은 주제하고 상관없이 제 나름의 스타일을 갖게 되지요. 저는 보다 동양적이고 제 영화 속의 삶이라는 리듬에 더욱 잘 어울리는 리듬에 도달하고 싶었습니다.


*  현재 이 영화는 35mm인데 저는 당신이 16mm로 편집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이 점에 관하여 말씀하여 주십시오


배 그렇습니다. (원래) 35mm로 찍었는데 제가 사는 대구에는 이용가능한 편집 시설이 없어서 프로젝터를 이용하여 편집, 16mm 프린트로 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16mm프로젝터를 가지고 있어서 제 방의 벽에 영상을 투사하였습니다.

영상이 너무 흔들려서 저는 신경이 예민해지고 날카로와졌습니다. 그래서 편집하는데 일년 반이라는 시간이 걸렸지요.


원래 3시간 상영의 영화인데 2시간 반으로 줄여야만 됐다고 알고 있습니다왜 당신은 필름을 줄였으며 그것에 동의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배 첫 번째 이유는 칸느영화제에서 원필름이 상영된 이후에 조금 줄였으면 한다는 그들의 바램 때문이었습니다. 제 영화가 너무 길어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많다고 그 이유를 설명하더군요. 그들은 필름길이를 줄이면 상영시간을 조직화하는 것이 용이해지리라고 말했습니다.


어느 부분을 줄였습니까?


배 : 전 부분에 걸쳐 조금씩 줄였습니다.


물속에서 한 어린이(혜진)를 다른 아이들이 익사시키려는 시퀀스에서 당신이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배 저는 인생의 향(香)을 붙잡아내려고 했습니다. 우리의 삶에는 어떤 힘, 즉 의식적이지는 않지만 죽이거나 파괴하고 싶은 단순한 욕망에서 기인하는 폭력이 있습니다. 그 어린 소년은 새의 죽음에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새를 죽이려고 하지는 않았지요. 새에 돌을 던질 때 그는 단지 놀이중이었지요. 그것이 삶속에서 폭력이 발생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폭력을 향한 충동이란 우리 인간들의 본성입니다. 전쟁이 발생하는 이유도 단지 몇 사람의 정치가가 결정했기 때문은 아닙니다. 전쟁이 일어난 좀더 진실하고 심층적인 이유는 인간의 영혼속에 존재하지요.


젊은 승(기봉)이 그의 스승을 화장시킬 때 그 불을 오랫동안 응시하는 장면에서 당신은 參禪(mediation)에 대한 생각을 강조하고 싶었습니까?


배 : 저는 인간은 살아가면서 깨달음(illumination)을 경험하는 순간이 온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인도 철학이기도 하고 또한 불교 철학이기도 합니다.

空卽是色입니다. (직역 : 비어있는 것은 형을 갖습니다) 영화는 환상(illusion)-마야-인데 또 영화는 실재(reality)이기도 합니다. 제 영화에서는 불이란 空(the spirit of emptiness)을 상징합니다. 이 생각은 모든 삼라만상의 공허함(emptiness)을 알 때 우리들은 존재의 본질에 다다를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것이 참선입니다.


영화 제작자와 재정 지원가가 익숙해 있는 영화와는 다른 영화를 제작하면서 어디서 자금을 얻을 수 있었습니까?


배 저 혼자 힘으로 했습니다. 처음부터 저는 예술로서의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기술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자본까지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지요. 상업적인 압력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 저는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 저는 제게 재정적인 보증과 충분한 시간을 줄 전문직을 찾았습니다. 저는 서양학과 교수가 되었고 제가 가까스로 저축한 모든 돈을 영화에 투자해서 영화를 거의 제가 원했던 방식으로 제작하게 되었지요. 매우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당신의 부인은 당신이 모든 자금을 영화에 투자한 것에 대하여 어떻게 느끼시는지요?


배 제 부인은 그 점에 대해서는 저보다 더 철저합니다. 그녀는 제 시간을 빼앗긴다고 교수조차 그만두기를 원했습니다. 영화제작자로서의 자신에 몰두하기 위해서는 화가를 그만두라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으로는 제가 영화 제작으로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면 저는 돈의 노예가 될 것 같았습니다. 여러분은 희생을 해야만하고 가난을 초월해야만 합니다. 위대한 영화인이 되려면 여러분도 여러분의 운명을 지배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당신이 수상했다는 사실과 그에 따른 갈채 때문에 당신의 차기 작품을 재정지원하기를 원하는 제작자가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그런 경우에 당신은 어느정도 자유를 얻게되고 당신이 예전에 겪은 가난을 겪을 필요가 없게될 수도 있습니다.


배 지금은 잠깐의 휴식시간이고 이 휴식은 제가 다음 작품을 만드는 것을 도와줄 수 있기에 제게는 매우 소중한 시간입니다.


앞으로의 작품은 어떤 것입니까?


배 예술가는 자신이 구출하여 놓은 것을 파괴할 준비를 항상 하고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집착(attachment)과 반복(repetation)에 빠집니다. 우리 개개의 인간에게는 각각의 세계가 있고 그 우주는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개척해야 합니다. 저는 저 자신을 어떤 ᅟ극정 범주(category)안에 한정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개방해서 저의 내부의 세계를 바견하고, 듣고, 발아들이고 싶습니다.


어떤 구체적인 구상이 있으십니까?


배 상당히 구체적이기도 하고 또 아니기도 합니다. 저는 너무 이 구상에 가까이 있기 때문에 그 생각에 대하여 상세히 이야기해 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도시 속에서 일어난 이 시대의 선율을 띤 현대의 삶에 과련된 것입니다. 이 생각은 제 머릿속에서는 명백하게 구조화되었지만 아직 종이에 적지는 않았습니다.


그림의 경우는 어떻습니까그만두셨습니까?


배 아닙니다. 저는 그림을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저는 영화를 만들 때조차도 계속 그림을 그렸습니다. 저는 제 영혼을 때로는 추상적으로 때로는 조형물로 매우 자유스럽게 쫓아갑니다. 저는 대부분 유화를 그리지요.


당신에게 영향을 준특별히 좋아하는 영화감독은 없는지요?


배 : 저는 청년시절부터 열렬한 영화광입니다. 저는 한 영화도 20번 내지 30번 때로는 60번까지 보았습니다. 저는 첫 상영에서부터 마지막 상영까지 극장에서 살았습니다. 저는 상영되는 모든 영화를 보았습니다. 한국에서는 그때까지만 해도 상영되는 모든 영화가 미국 영화였습니다. 그것은 제 경우에는 유럽영화는 보지 못했던 내 삶에 있어서는 어떤 단절이었ㅅ브니다. 그 후에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게되자 저는 블란서 문화원에서 프랑스영화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후 저는 대구에 돌아갔고 유럽영화를 볼 가능성을 상실하였습니다.


지금은 영화에 관하여 간행된 많은 책자가 있습니다영화이론에 관한 책을 읽으신 적이 있는지요.


배 : 저는 제속에서 찾고 싶었지 다른 사람에 의해서 씌여진 책에서 찾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제 나름의 영화이론을 발견해야 합니다. 상상력과 영감이 근본이되는 설명할 수 없는 욕구를 체험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어떤 특정이론으로 출발한다면 저는 그 사람의 생각과 이론들을 공유하는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은 되지만 어떤 심오한 방법으로 사람을 감동시키지는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심오한 방법으로 이야기하면, 인간은 자신의 영혼의 깊이를 파고들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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