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은 매년 1월과 7월에 인사이동이 있다. 누가 승진을 하고 좋은 보직을 받느냐의 문제는 그들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다. 아직 입사한 지 2년 남짓한 나는 승진과는 무관한 데다 소수직렬이라 받을 수 있는 보직도 한정적이다. 하여 매년 이 법석을 팔짱 끼고 발치에서 바라본다.
요즘 공무원 인기가 시들하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특히 MZ세대들의 이탈이 심상치 않다. 특히 3년 이내 퇴사자 비율은 날로 상승 중이다. 막상 들어와 봤더니 생각했던 직업이 아닌 것이다.
나는 그들이 편평한 운동장을 찾아 이곳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기울어진 운동장, 그들만의 리그에서는 승산이 없을 거라 생각하고 과감히 박봉의 삶을, 길고 가는 인생을 선택한 것이다. 공무원이 되면 알게 되겠지만 여기라고 고른 운동장은 아니다. 그곳은 그곳대로, 여기는 여기대로, 저마다의 각도로 기울어져 있을 뿐이다.
때론 지나친 평등이 불공평할 때가 있다. 공직 사회에서는 무위(無爲)가 우위(優位)를 차지한다. 저마다의 개성과 장점, 노력과 능력 위에 연공서열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 것이 이 사회의 공평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자신의 목소리를 숨기고 사는 것이 곧 정치력이자 동아줄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평등이 정의이고 차별이 불의라면, 안타깝게도 MZ들이 꿈꾸는 파랑새는 이곳에도 없다.
의원면직을 한 대다수의 공무원들이 자영업이나 플랫폼 시장에 뛰어든다. 무한한 자유경쟁이야말로 진정한 평등이라는 듯 말이다. 나는 그 조차 순진한 선택이라고 믿는 회의주의자다.
니체는 ‘창조할 수 없는 무력감에서 복수심이 생기고, 복수심이 만들어낸 가치관이 평등과 인권의 사상‘이라고 말했다. 니체는 창조를 최고의 선(善)으로 여겼기 때문에 창조하지 못하는 것을 최고의 악(惡)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사상에서 창조하지 않는 평등은 약하고 선한 것이 아니라, 약해서 악한 것이 된다. 이런 논리에서 보면 분명 공무원 조직은 악하다.
공무원 조직의 생리를 아무리 잘 알아도, 공평과 평등은 언제나 뜨거운 감자다. 다들 안 그런 척해도 매년 승진 내정 명단이 뜨면 시청이 들썩인다. 디케의 저울까지는 아니어도 너무 한쪽으로 기울지는 말자며 끓어오른다.
오늘같이 뒤숭숭한 날은 조용히 사무실을 빠져나가는 게 상책이다. 승진할 사람과 너무 돈독해 보이면 줄을 서는 것 같고 그렇다고 승진에 미끄러진 사람의 푸념을 듣는 일도 유쾌하지는 않다. 이런 비정한 태도마저도 내가 승진과 무관한 사람이기에 가능하다. 막상 내 일이 되면 나 역시 이 경사진 지구를 원망할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