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부터 글을 잘 썼다. 작가가 될 정도는 아니었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했다. SKY에 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나는 일본어를 잘하지만 한문을 못 읽고 요리를 잘 하지만 칼질을 잘 못한다. 책과 영화를 사랑하지만 만들 창의력도 분석할 예리함도 가지지 못했다.
찾아보면 내가 잘하는 일은 많지만 남들보다 잘하냐 물으면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희귀한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다. 풍부한 감수성과 남다른 감성은 먹고사는데 하등 도움이 안 된다.
이 애매한 재능이 때론 무능함보다 더 절망적이다.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하는데 진짜 잘하는 건 없다는 절망.
그럴 때마다 나는 내 인생은 미로 찾기가 아니라 한 점 그리기라고 믿는다. 의미 없는 점들을 이으면 꽃도 되고 집도 되는 한 점 그리기 놀이 중일뿐이라고 믿는다.
무의미하게 흩뿌려진 물감이 잭슨 폴록의 손에서는 명화가 되듯 내 인생에 무의미하게 찍힌 점들을 이어나가는 건 내 몫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