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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동우 Feb 05. 2021

아직은 설명할 수 없는, 인간적인 행동

2009년 일본, 도쿄, 신오쿠보역에서

사람은 악한가 아니면 선한가? 성악설과 성선설은 옛날부터 지속하고 있는 해결되지 못한 논쟁거리다. 이 질문에 답을 내리기 어려운 이유는, 인간은 어떤 순간에서는 한없이 선하지만 어떤 순간에는 한없이 악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전부터 사람은 왜 선한 행동을, 타인을 위한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 악한 행동을 하는 사람의 의도는 뻔히 보이지만 선한 행동의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기도 하거니와 때로는 전혀 짐작할 수 없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악한 행동과 달리 선한 행동은 반드시 자신에게 이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때로는 선한 행동을 하다 곤란에 빠지기도 하고 심하면 목숨을 잃기도 한다. 자칫하면 자신도 피해를 볼 수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스스럼없이 타인을 위해 나설 수 있는 것일까?


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공부한 것이 진화심리학이었다. 진화심리학에서는 인간 행동의 원인을 사람의 본능에서 찾는다. 인간이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자신도 모르게 몸에 새겨져 있는 본능으로 인해 나의 행동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에서 말하는 인간의 이타심은 상당히 현실적인 이유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혈연관계가 가까울수록 이타적인 행동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들과 조카가 물에 빠져 위험한 상황에 처했고, 오직 한 사람만 구할 수 있다면 조카보다는 자기 아들을 구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혈연관계가 아닌 사람에게 발현되는 이타심은 무의식적으로 내가 하는 행동으로 인해 나중에 돌아올 보상을 기대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곤경에 처했을 때 내가 도와줬던 친구가 막상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 그 상황을 외면한다면 관계가 깨질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은 누구나 쉽게 인정한다.


진화심리학에서 말하는 이타심에 대한 이론은 이해가 갔다. 근거도 있었고 실제 일상에서도 쉽게 느낄 수 있는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이론에 들어맞지 않은 사례가 하나 있다.




2009년, 인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스탑오버로 일본을 들렀다. 인도를 여행한 후 들린 일본은 새로운 세계에 온 것 같았다. 더는 코를 풀 때 검은색 콧물이 나오지 않았고 길거리에는 똥이 없었다. 도로에는 횡단보도와 신호등이 있었고 사람들은 신호등을 보고 길을 건넜다.


여행 둘째 날 들른 신오쿠보역은 아주 작은 역이었다. 일본에서 가장 큰 거리 중 하나인 신주쿠에서 바로 한 정거장 거리에 있었지만, 신주쿠역과는 크기부터가 대조적이었다. 역 밖으로 나가는 출구는 하나밖에 없었고 그마저도 크지 않았다. 우리나라로 치면 남영역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신오쿠보에 숙소를 잡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신주쿠 근처에 있으면서도 나름 그 당시에는 저렴한, 1박에 7만 원 정도 하는 숙소가 있기 때문이었다. 개찰구를 지나 역 밖으로 나가자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빠찡코 가게와 대형 오락실들이 보였다. 한 블록을 지나 골목에 들어서자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대형 중고 악기 상점과 옷가게들이 보였다. 숙소는 고가도로 아래를 지나 도보로 5분 정도 걸어가면 나오는, 오로지 일본어밖에 하지 못하는 예의 바른 여사님이 운영하는 호텔이었다.


먼저 숙소에 짐을 풀고 다시 신오쿠보역으로 향했다. 그날은 하라주쿠를 구경하기로 한 날이었다. 자동판매기에서 티켓을 사서 개찰구를 통과해 들어갔을 때, 역을 나올 땐 보지 못했던, 하지만 역 안으로 들어갈 땐 위치상 꼭 볼 수밖에 없는 곳에 한글로 쓰인 현판이 있었다. 현판은 지하철을 타기 위해 올라가야 하는 계단으로 가는 벽 중앙에 붙어 있었다. 일본의 전철역 한가운데 한글로 되어 있는 현판이라니. 호기심 반, 의아함 반의 마음을 가지고 천천히 다가가 글을 읽어 보았다.



한국인 유학생 이 수현씨, 카메라맨

세키네 시로씨는 2001년 1월 26일

오후 7시 15분경, 신오오꾸보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발견하고 자신

들의 위험을 무릅쓴 채 용감히 선로에

뛰어들어 인명을 구하려다 고귀한 목숨

을바쳤습니다.

두 분의 숭고한 정신과 용감한 행동을

영원히 기리고자 여기에 이 글을 남깁니다.


동일본 여객철도 주식회사



2001년, 청년 이수현은 25세의 유학생이었다. 그는 전철을 기다리는 중 신오쿠보역에서 선로 위로 떨어진 취객을 보았다. 멀리서 플랫폼으로 전철이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전철은 멈추지 못했고 그들은 목숨을 잃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뉴스에서 이 소식을 접했다. 당시에는 안타까운 사건이라고만 생각했었다.  머릿속 한구석에 희미하게 남아 있던 당시의 기억이, 현판을 보는 순간 선명하게 떠올랐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여행지에서 그를 만났다. 바로 이곳이었구나. 계단 위 플랫폼으로 전철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다음 차를 타기로 했다. 나는 잠시 말없이 현판을 바라보았다. 무엇이 그를 이끌었을까? 어떻게 멀리서 열차가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망설임 없이 뛰어들었을까?




사람들은 인간에 대해 많은 탐구를 했고 심리학이라는 학문을 만들었다. 하지만 아직 심리학은 인간을 완벽하게 설명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는 외지에서, 혈연관계도 아닌 외국 사람을 구하기 위해 누구보다 먼저 나섰다. 그리고 전철이 눈앞에 다가오는 짧은 순간에 그가 충분히 손익을 계산하고 움직였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아직 어떤 이론도 그의 행동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가 없다. 아마 이런 설명할 수 없는 이타적인 행동을, 우리는 인간답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1월 26일은 그의 기일이다. 매년 그의 기일에 일본의 신오쿠보역에서는 추도식이 열린다. 올해, 2021년에는 20주기 추도식이 진행되었다고 한다. 그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사람들에게 남긴 마음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토록 긴 시간 동안 사람들이 그를 잊지 않고 매년 추모를 이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그의 행동이 사람이 보일 수 있는 가장 순수한 이타심이었으며 그 마음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그는 스물다섯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지만 그의 마음은 그의 나이를 훌쩍 넘어 오랫동안 전해질 것이다.


부디 그곳에서는 항상 평온하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사진출처

표지 사진, Pistachio Maplewood, CC BY-SA

본문 사진, Endlessrailroad at Korean Wikipedia, CC BY-SA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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