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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동우 Jan 20. 2021

마흔 즈음에 다시 들은 서른 즈음에

2012년 그리고 2021년, 혼자 방 안에 앉아

오랜만에, 마흔 즈음의 나이에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들었다. 내 기억으로 서른한 살 이후에는 이 노래를 찾아 들은 적이 없었다. 아마 제목 때문일 것이다. 서른이 넘으면 뭔가 많이 변할 줄 알았는데, 실제로 그다지 변한 것은 없었다. 한 가지, 추간판 탈출증(椎間板脫出症, Herniated intervertebral disc)을 겪은 후 허리 통증이 고질병이 되어 있다는 것 정도일 뿐… 그렇게 서른을 넘겨 살다 보니 어느새 서른을 잊게 되었다.




‘서른 즈음에’를 가장 열심히 불렀던 나이는 스물아홉이었다. 당시 나는 대학교 전공이었던 컴퓨터 공학을 그만두고 음악치료사로 진로를 바꾸기 위해 대학원에 갓 입학했을 때였다. 그 당시에는 공모전을 준비했던 기간까지, 도합 5년간을 바친 나의 대학 생활을 뒤집어 버린 데 대한 불안감이 가득했다. 과연 내가 진로를 바꿔도 잘 살 수 있을까? 지금까지 내가 보낸 시간은 헛된 것이 아니었을까? 더는 젊은 나이가 아닌데 이제 돌아갈 곳이 없는 나이인데… 김광석의 노래 가사처럼,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나의 젊은 날은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보낸 시간은 되돌릴 수 없었다. 그런 나에게 나보다 먼저 서른을 넘긴 김광석은 대단해 보였다. 그 허무함과 막막함을 이겨내고 서른을 넘은  그의 뒷모습에서 어른을 느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났다. 나는 대학원을 무사히 졸업하고 음악치료사 자격을 얻었다. 나이도 들어 어느새 서른보다는 마흔에 더 가까운 나이가 되었다. 그날은 경찰분들과 함께 음악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날이었다. 함께 부른 노래는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 이었다. 한참 노래를 부른 후 누군가가 말했다.


“근데 김광석은 너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 같아요.”


그랬다. 김광석이 세상을 떠난 것은 31세였다. 그는 여전히 젊은 청년으로 남아 있었고 나는 나이를 훌쩍 먹은 아저씨가 되어 버렸다. 서른 한 살 때의 나는 대학원을 갓 졸업하고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철없는 사회 초년생이었다. 지금 뒤돌아보면 서류 하나 제대로 작성하지 못해 끙끙대기가 일쑤였고 직장에서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도 힘들어했던, 어린아이 같은 나이었다. 그런데 시간의 흐름은 생각보다 훨씬 빨랐나 보다. 나는 어느새 그의 나이를 훌쩍 넘겨 세상을 살고 있었다.




올해 나이 서른아홉. 벌써 그 시절부터 10년이 지났다. 상황은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1년 넘게 지속되는 코로나 때문에 지금 하는 일을 지속할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는, 장래가 밝다고만은 할 수 없는 시기이다. 하지만 이미 스물에서 서른으로 변하는 과정을 경험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나이란 것은 결국 세상이 규정한 의미 없는 경계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까? 서른과는 달리 마흔을 앞둔 지금은 오히려 다가오는 세월이 담담하게 받아들여진다.


김광석 덕분에 서른 즈음에 많은 추억을 남겼다. 지나가는 세월에 대한 아쉬움, 삶에 대한 고찰, 조금씩 가라앉아 가는 사랑에 대한 상실감을 느꼈다. 뒤돌아보면 그때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감정이었다. 아직 남아있던 순수함과 사회의 때가 절반씩 묻어 있는 그런 시절, 나의 마음속에 온전히 빠질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아마 끌어 올릴 감정도 없이 생각만 남아 글을 쓰는 것도 노래를 만드는 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을 테지.


김광석은 마흔이 되었을 때 어떤 노래를 남겼을까? 문득 그가 그리워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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