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올해부터 여자친구가 해외에서 근무를 시작하여 자연스레 국제 장거리 연애를 시작했다. 머지않아 여자친구는 해외생활에 온전히 적응하고 싶다 했고 우리는 연락을 잠시 끊기로 했다. 언제나 그렇지만, 떨어짐으로 인한 공허함과 외로움은 남겨진 이의 몫이다. 첫 한 달간 무기력증에 헤어 나오질 못했고, 연락이 끊기고 나서야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종 심란할 때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곤 한다. <노르웨이 숲>은 9년 만에 다시 꺼내 들었다.
<노르웨이의 숲>뿐만 아니라 <해변의 카프카>, <여자없는 남자들>과 같이 하루키의 소설을 읽다 보면 종종 어릴적부터 긴 연애를 해온 커플이 갑작스러운 이별로 인해 내면이 크게 뒤틀리는 내용을 보곤 한다. 과거에는 이게 뭔 설정인가 싶었는데, 연애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그가 뭘 말하고자 했는지 조금씩 이해가 된다.
9년이란 긴 연애를 했다. 갓 성인이 된 스무 살 때부터 시작한 연애는 어느덧 나의 20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가끔 젠가 게임처럼 나의 자아에서 이 기억을 쑥 빼버린다면 '나'라는 사람은 와르르 무너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스무 살 때까지만 해도 너무나 다른 남녀가 만났기에, 도대체 어떻게 맞춰가야 할지 막막했다. 그런데 지금은 서로를 너무 닮아, 가끔 티격태격하다 보면 나 자신을 보는 것 같아 짜증이 날 때가 있다. 이젠 연인이라기보단 내 몸의 일부로 느껴질 때가 많다.
연애를 한다는 것은 아주 작은 세계를 구축하는 것과 같다. 평생을 다르게 살아온 두 사람이 지지고 볶고 싸우며 나름의 질서를 만들어 나간다. 함께 데이트를 하면서, 여행을 하면서, 함께 살면서 그 질서는 점점 정교해지고 굳건해진다. 마치 시간이 멈춘듯한, 아늑하고 작은 세계는 너무도 평화롭고 사랑스러워 외부세계에 관심을 돌릴 틈이 없다. 그러나 문제는,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고 있고 우리의 연약한 자아는 계속 팽창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루키가 여러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마땅히 감수해야 할 '성장의 고통'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언젠가는 치러야 할 빚과도 같아서, 세상과 단절한 채 그 작은 세계에 숨이 있는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자아는 끊임없이 커지고 있고, 우리는 그에 걸맞은 단단한 껍질을 지녀야 한다. 그 껍질은 고독과 성장의 고통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그녀는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종종 좀 더 독립적이고 강해지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당시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질 못했다. 그러나 이제야 알겠다. 우린 지난 9년 간 우리의 작은 세계에만 지내며 성숙해질 기회가 없었고 사회의 중압감을 견디기엔 너무도 나약했다. 나는 지난 세 달 동안 고작 취업 하나 때문에 너무도 불안했고, 내가 진정 원하던 이 무엇인지도 모르며 지냈다. 불안할수록 우린 서로에게 더 의지했고,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감정은 서로를 더욱 갉아먹었다. 우리에겐 고독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로부터 마땅히 대가를 치르고 단단한 껍질을 얻는 것이 이 사회에서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한 통과의례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