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잡동사니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ke Crazy Mar 02. 2024

서른, 삶의 새로운 챕터의 시작

캘리포니아에서의 새 시작

서른이 되어서야 깨달은 흥미로운 점은 삶에는 다양한 챕터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지난 20대를 돌아보면, ‘공부’라는 획일적이고 반복적인 작업에서 벗어나 내가 머릿속에서만 상상하던 일들을 실제로 구현한다는 것에 대한 열정과 희열을 마음껏 누리던 시기였다. 그와 동시에, 한 단체를 만들고, 창업을 하고, 대학원에서 연구를 하면서, 나의 거창한 포부를 실현하기에는 나는 능력적으로 너무도 부족한 사람이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던 시간들이었다. 발표, 영업, 소통, 기획, 디자인, 개발, 글쓰기, 영어 등등 누군가에게 기초적인 것들이 그 무엇도 내게는 타고난 것이 없었기에, 최고는 아니더라도 평균이상이라도 되기 위해 닥치는 대로 노력을 하였고 기회가 되는대로 도전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곳에서도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어떠한 뛰어난 성취도 없었고,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신뢰를 주지 못했던 내 20대는 부족함 투성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맞이한 미국에서의 새로운 삶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했다. 미국에서 살기엔 나의 영어 실력은 너무도 부족했고, 언제나 내 생각조차 설명하지 못해 누군가의 짐작과 보충설명에 의존해야 했다. 특히나 물가가 비싼 뉴욕에서 살기엔, 내 박사 생활비는 턱없이 부족해서 박사과정 동안 돈을 모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미국에서 언어적으로나, 학업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그 어느 것도 쉽지 않았고, 그저 거대한 사회에서 보이지도 않는 깊은 바닷속 밑바닥에서 다리가 묶인 채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잠수부처럼 느껴지곤 했다. 다시 취업의 시기는 다가오고 있고, 그 전에 어떻게든 수면 위로 올라가야 한다. 


부족함 뿐이었던 나에게도 만 서른을 기점으로 나의 새로운 챕터가 시작된 듯하다. 지난여름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할 정도로 세계적인 기업에서 연구인턴을 할 기회를 얻었고, 거기서 뜻밖의 훌륭한 연구자, 디자이너들을 만나 기분 좋은 기억들을 남길 수 있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나중에야 확인해 보니 업계에서 굵직한 기록들을 남긴 인물들이었다. 인턴기간 동안 진행했던 프로젝트는 다행히도 컨퍼런스 논문으로 이어졌고, 나의 임팩트 있는 경력으로 남았다. 인턴 구직 중에는 한 대기업으로부터 연락을 받아 기분 좋은 미팅을 하였고, 취업과 연계될 수 있는 펠로우십을 제안받기도 했다. 아쉽게도 지도교수님의 뜻에 따라 제안을 거절하였지만, 나의 기술력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감사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지난 학기에는 지도교수님의 도움 덕에 내 연구 분야의 대가와 미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좋은 인상을 남긴 덕에 캘리포니아 위치한 미국 정부출연연구소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다.


정확히 3년 전 대학원 석사를 마치고 한국에서 취업을 할 때와는 다르게, 현재 다양한 곳에서 나의 연구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무 연고도 없는 이 미국땅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돈이 몰리고 있는 분야를 타깃으로 이 악물고 달려들었고, 2년 반이 지난 지금 다양한 곳에서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반응들이 나타나고 있다. 물론, 이 상태로 박사 졸업을 하고 직장을 구하기엔 내 영어실력도 연구실적도 충분하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말 그대로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조금씩 수면 위를 향해 몸부림치며 올라가고 있다. 그리고, 20대 때와는 다르게 작은 결실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다음 이정표들이 조금이나마 보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올 새해는 캘리포니아에서 맞게 되었다. 캘리포니아 공항에 도착한 지금, 여전히 그 어느 것도 예상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 확실한 것은, 이 새로운 터전에서 나는 여러 면에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을 쌓을 것이고, 이것이 앞으로의 8개월이 내 30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이다. 반드시 쟁취해서 살아남길, 그리고 이번 챕터에서는 부디 새로운 이야기를 써나갈 수 있길 희망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9년 연애 끝에 헤어진 연인과의 시애틀 여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