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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kwell Jan 15. 2023

푸른밤은 열린 문

<소소한 모험을 계속하자>를 읽고

<푸른밤, 옥상달빛입니다>(이하 '푸른밤')의 수요일 코너 '노동의 밤, 야간작업'은 청취자들과의 직접적인 소통으로 진행되는 시간이다. 다양한 직종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의 육성을 듣는 건 즐거운 일이라서 주간 코너 중 가장 좋아한다. 팬데믹이 도래한 이후 어딘가에서 제대로 된 일을 한 적이 없고 제대로 된 돈도 벌어본 적이 없는 나는 옥택연("옥상달빛을 택한 인연"의 줄임말, 청취자 애칭)들의 노동 사연을 들으며 반성을 하기도 하고, 낙관에 빠져 새로운 희망을 품어보기도 한다. 옥디스크(김윤주)와 달쟈키(박세진)는 옥택연들에게 항상 이렇게 묻는다. "당신에게 푸른밤이란?" 당황해 머뭇거리다 겨우 답하는 옥택연들도 있고 준비된 듯한 답을 내놓은 옥택연들도 있다.

지난가을, 푸른밤은 4주년을 맞이해 공개방송을 했다. 이름하여 '가을밤의 세레머니'에 다녀온 이후 나에게 푸른밤이란, 열린 문이 되었다... 아무도 묻지 않겠지만 이런 정의를 내리게 된 이유는 그날이 내가 집 밖에서 만끽한 그해 첫 번째 가을밤이었기 때문이다. 한동안 돈 되는 일, 그러니까 아르바이트가 아니면 외출 자체를 하지 못했었다. 산책도 힘들었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여름을 보냈던 터라 아무렇지 않게 깨끗한 얼굴로 찾아온 가을 하늘이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종일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라디오를 들으면서 소리 내 웃었을 때는 지켜보는 사람도 없는데 어색해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 4주년 공개방송을 앞두고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옥상달빛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왠지 실재하는 푸른밤이 보고 싶어졌다. 방 안에서 혼자 맴돌다 맞이하는 탁한 밤이 아니라 푸른밤을 듣는 수많은 사람들과 상쾌한 가을밤을 맞이하고 싶다는 욕구가 전에 없이 강해졌다. 나 아닌 다른 옥택연들을 실제로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모두를 반갑게 맞이할 옥상달빛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기도 했다. 특별한 신청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오로지 내 의지만 있으면 됐다. 심지어 상암 MBC는 내 방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기도 했다. 따릉이를 타고 이르게도 늦지도 않게 도착한 나는 비록 두 DJ가 옥택연들을 위해 준비한 커피와 추로스는 먹지 못했지만, 준비해 간 돗자리로 마음에 드는 자리를 잡을 수 있었고 근처 맥도날드에서 커피와 감자튀김을 포장해 맛있게 먹었다. 난생처음 경험한 라디오 공개방송은 "오길 잘했어..."를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는지 모를 만큼 즐거웠다. 귀갓길에는 갑자기 생각난 친구에게 용기를 내 문자를 남겼고 그 친구는 답장 대신 전화를 걸어 오랜만에 서로의 목소리를 주고받았다. 누군가는 얕보거나 비웃겠지만,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2022년 나의 첫 번째 모험이다.

옥상달빛의  번째 에세이 <소소한 모험을 계속하자> 그런 나의 소소한 모험을 적극적으로 응원해  친구와도 같다. 책을 읽으며 오랜만에 재생한 옥상달빛의 초창기 음반은 한동안 소원하게 지냈던 친구와 다시 만나 그간 쌓인 각자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기분마저 들게 했다. 옥상달빛을 처음 접했던 이십  초반으로부터 너무 멀어져 살고 있는 현재, 눈앞에 놓인 커져만 가는 현실에 그들의 맑고 깨끗한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 줄은  사실이다. 어쩌면 그 시간은 줄어만 가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옥상달빛에 대한 사소한 마음 하나 정도는 지키며 살아가고 싶다. 기꺼이 해볼 만한 모험이다. 지금으로부터   후일 사십 대에도  사람의 음악과 수다에 마음이 동하는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가 망했어도 괜찮은 하루였다고 위로하기 위해 침대에 눕자마자 푸른밤을 듣는다. 푸른밤이 두 시간 뒤에 끝난다면 그 순간부터 즐겁고 행복한 잠에 빠져들 것이다. 오늘 밤에도 옥상달빛이 바람에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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