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소연 Nov 17. 2022

직장인 자취생에게 요리란 없다.

잠수 탈출기


   




  서른 여름, 자취를 시작했다. 보수적인 부모님 아래 하나뿐인 딸인지라, 삼십 대가 되어서도 통금이 있었다. 친구들과의 술자리나 직장 회식이 있으면 먼저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통금 시간은 자정인 열두 시. 오늘이 끝나기 전에 들어가면 됐다. 그래서 통금 있는 생활이 크게 불편하진 않았다. 다만 시간이 흐를수록 혼자 있는 시간이 절실해졌다. 나를 보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지내고 싶었다.


  부모님은 흔쾌히 독립을 허락해주셨다. 사실 임대주택 신청부터 당첨까지 이미 준비가 끝난 상태였다. 게다가 소득 여건만 맞으면 결혼 후, 큰 평수에 대기자 명단을 올릴 수 있었다. 이 부분에서 부모님이 설득당하신 듯했다. 난생처음으로 직장 근처 은행을 오가며 대출을 받았고, 사전점검도 다녀오고, 계약서도 받았다. 이 과정에서 내 처참한(하지만 최선이었던) 재정 상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다 6평이라는 작은 원룸을 어떻게 꾸밀까 꿈에 부풀었다. 흰색 원형 테이블과 일인용 소파, 직접 만든 샐러드를 담을 보울과 카페에 있을 법한 유리컵을 상상했다. 여기에 아로마 향이 나는 디퓨저는 꼭 있어야 했고, 인테리어 요소로 킨포크 잡지 한 권도 머릿속에 넣었다.


  마주한 현실은 향긋하지 않았다. 우선 일인용 소파를 놓으려면 침대 매트리스를 포기해야 했다. 소파도 되고 매트리스도 되는 걸 사자니, 이도 저도 아닌 느낌이라 매트리스를 선택했다. 잠과 허리 건강은 중요한 문제였다. 인테리어는 머릿속에서 싹 지워졌다. 생활 용품을 쑤셔 넣기 바빴다. 킨포크가 있을 자리엔 각종 고지서와 학원 책이 쌓였다. 아로마 향은 나지 않아도, 사람 냄새는 물씬 풍기는 집이 됐다.


  처음으로 시도한 요리는 집들이 음식으로, 토마토소스를 베이스로 한 뇨끼였다. 감자를 삶아 직접 뇨끼를 만들었다. 이때부터 실감이 났다. 요리는 만드는 과정보다 치우는 과정이 더 귀찮다는 걸. 그래도 의지를 버리지 않았다. 두 달 정도는 밥도 지어먹고, 무생채도 만들어 먹고, 멸치도 볶아서 먹었다. 그때그때 먹고 싶어서 한 음식들인데 이상하게 한두 번 먹고 나면 손이 가지 않았다. 맛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난 반찬은 곰팡이가 피어 음식물 쓰레기가 되었다. 음식물 쓰레기봉투값도 만만치 않았다.


  몇 번의 우여곡절을 겪고, 나는 요리에서 손을 뗐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아침과 밤뿐이니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없었다. 그래서 파나 양파, 양배추처럼 신선 식품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냉동 볶음밥, 냉동 주먹밥, 냉동닭가슴살, 제로콜라, 탄산수, 생수, 단백질 셰이크…. 간편하게 먹고 치울 수 있는 것들로 냉장고를 채웠다. 샐러드 보울도, 식탁도 필요 없었다. 혼자 살다 보며 생긴 의문. ‘왜 냉동실보다 냉장실이 크지?’


작가의 이전글 낙인은 아이에게 너무 큰 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