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이잉~ 지이이잉~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받자마자 지금 걷는 길 이야기를 쏟아놓으신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앞에서 한참을 헤매다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광희문이 어디인지 물어 길에 제대로 들어섰다신다. 지금은 장충단 공원 쪽인데 1시간 반 전, 나와 헤어지고 난 후 4km 넘게 걸으셨다나. 딸래미와 함께 걸을 땐 따라 걷기만 하면 되었는데 지금은 성곽이 보였다 안 보였다 하니 신경 바짝 써서 잘 찾아 걸어야 할 일이다. 관심사도 비슷하니 말동무로도 좋았는데 혼자 걸어 아쉽다신다. "와~ 진짜 좋네! 서울에 딸 살라 할 만하네. 지금 물소리 들리나? 분수가 너무 시원하다!" 수화기 너머 물소리보다 더 큰 흥분이 전해진다.
서울 사는 딸네에 친정부모님이 행차하시는 것은 일년에 한 번 연례행사이다. 매년 9월이 되면 수술 이후 엄마의 뇌가 이쁘게 잘 있는지 혹시나 종양이 커지지는 않았는지 MRI를 찍으러 서울로 올라오신다. 마침 어제 꼭두새벽부터 기차를 타셔서는 진료를 잘 받으시고 우리 집으로 모신 터였다. 한 번 오시면 나흘 정도 계시는데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두 가지이다. 부모님께 맛있는 음식 차려 드리기, 바람 쐬어 드리기! 오늘도 아침에 후다닥 아이들 등교시키고 함께 나서려는데 어제 일정이 고단하셨는지 엄마가 쉬기를 원하신다. 그럼 아빠 혼자 다녀오세요. 저는 엄마 곁을 지킬게요. 하는데 엄마는 쉽게 이해하던 아빠가 나는 포기하지 않으셨다. 한동안 엄마는 주무시기만 할 거라고 궂이 같이 나서기를 권하신다. 엄마를 혼자 두고 가자니 마음이 편치 않는데, 한양순성길을 돌기로 마음 먹으신 아빠가 내내 혼자 걸으시게 하기보다는 잠시라도 길동무하는 것이 좋겠다 싶어 따라 나섰다.
한성대입구역에서 내려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안내센터에서 여정을 시작하였다. 1941년 지어진 이 건물은 오랜기간 서울시장의 거처로 사용되다가 현재 한양도성의 의미를 알리고 시정의 과거를 소개하는 전시관으로 바뀌었다. 목재로 정교하게 쌓아올린 지붕의 골조가 아주 정성스레 지은 집이라는 느낌을 풍긴다. 2층에는 벽 한 쪽이 큰 창이라 투명한 햇살 속 나무들이 꼭 액자 속 그림인 듯 초록초록 한 것이 참 좋다. 한양도성에 관련된 책자들이 있고 앉아서 책을 읽는 공간으로 꾸며 놓아 차만 없을 뿐, 분위기 좋은 북까페 같다.
한양도성. 평균 높이 5~8m, 전체 길이 약18.6km에 이르며 현존하는 세계의 도성 중 가장 오래도록 성의 역할을 다한 건축물이다. 한양도성에는 사대문(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 숙정문)과 사소문(혜화문, 소의문, 광희문, 창의문)이 있었는데 돈의문과 소의문은 없어졌다. 체험학습 온 초등학생들에게 설명하는 해설사님이 이것만 기억하라한다. 태종 때 성곽을 처음 짓고, 세종 때 고쳐 짓고, 임진왜란 이후 숙종이 대대적으로 보수하면서 쌓은 돌의 모양이 다 다르다는 것이다. 태조 때는 큰 메주만한 크기의 자연석을 다듬어 쌓았다. 세종은 보다 네모난 돌을 기본으로 하면서 사이 사이 잔돌을 섞어 쌓았다. 숙종 때에 이르면 돌을 정사각형에 가깝게 규격화하여 튼튼하게 쌓았다. 그래서 성곽의 돌모양을 보고 어느 시대 돌인지 알아맞추며 걸어 보라 권하신다.
안내소를 나서서 어느 방향으로 갈까 하다가 중간에 내려와 집에 가기에 교통이 좋은 2코스 낙산구간으로 방향을 잡았다. 혜화문을 지나 큰 도로를 건너 계단을 올라가면 바로 성곽을 따라 걷게 되어 있다. 설명을 들었다고 이건 어느 시대에 지은 거구나 맞추며 다니는 재미가 쏠쏠하다. 군데군데 돌 위에 글자를 새긴 것이 보이는데 각자성석이라고, 성을 쌓은 지방이나 책임자의 이름 등을 쓴 것이라 한다. 보수를 할 때 구간마다 관리와 석수를 세우고 동원되는 지역도 정했는데, 쌓은 곳이 유실되면 그 곳을 쌓은 지역에서 재보수를 해야 한단다. 책임제라니 정말 대충 못 쌓았겠다. 친구들과 날 잡아 나들이 나섰는지 6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 세 분이 우리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한다. 우리는 표지판을 읽거나 성곽에 대해 이야기하느라 멈춰선다면 여인분들은 성곽 아래 핀 가을 들꽃을 배경삼아 사진을 찍고 한바탕 웃으시느라 멈춰선다.
시원한 바람. 맑은 하늘. 딱 걷기 좋은 가을날 아빠와 성곽길을 걸으며 마음이 조금씩 풀어진다. 사실 아빠의 칠순 잔치를 준비하면서 좀 부대끼는 상황이 있었다. 오는 주말에 친지분들 모시고 식사를 하기로 약속을 잡았는데, 이왕 모인거 순서를 좀 준비해서 의미있게 하면 어떻겠느냐, 옷은 한복을 입는게 어떻겠느냐 이런 저런 의견을 주시는 거다. 지금 적으려 보니 내가 좀생이에 불효녀였네 싶어 민망한데, 이 때만 해도 나는 매끼니 차려 내랴, 잔치 준비와 경주 여행 준비로 충분히 바쁜데 계속 할 일을 보태시는 것 같아 벅차다 싶었다. 그런 중에 '너무 격식 차리지 말고 편하게 하라'는 말씀에 그럼 어쩌란 건가요? 하고 볼멘 소리를^^; 낸 터였다.
이렇게 감정이 안 좋아질 때는 아빠와 이야기하는게 더 힘들어진다. 아빤 귀가 잘 안 들리시고 나는 말소리가 큰 편이 아니다. 아빠와 이야기할 때는 얼굴을 마주보고 눈을 쳐다보면서 목소리 강도도 세게 해야 한다. 또 여러 번 말씀드려야 할 경우도 많은데, 내 마음이 상해 있으면 눈을 마주치기부터 불편한 거다. 목소리를 크게 하기도, 반복해서 말하기도 싫다. 그렇게 자연스레 말수가 줄다보면 부모님도 내 기분을 눈치채신다. 이 조용하고 어색한 분위기 어쩔? 아, 소통이 힘들다.
그런데 오르막길을 따라 걷는 동안 여러 생각이 든다. 아빠는 새벽부터 엄마 모시고 기차 타고 올라와 하루 종일 피곤하셨을 텐데도, 어젯 밤에 한양도성을 걷기로 작정하자마자 관련 책자와 블로그들을 뒤적이며 공부를 하셨다. 아빠는 길을 좋아하고 이야기를 좋아한다. 나도 그렇다. 그리고 글쓰기도 좋아하신다. 재작년까지는 맨발걷기를 하는 일상을 매일을 블로그에 남기셨다. 유튜브에 시쓰기 수업을 찾아 들으시며 누가 시키지 않아도 시를 쓰시고, 작가가 되셨다는 사촌형님 얘기를 몇 번이나 하실 정도로 글쓰기에 관심이 있으시다.
낙산까지는 성곽따라 오르는 길이 꽤 경사가 진 오르막이라 쌕쌕대며 걷는데 옆에서 아빠 숨고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니 생각난다. 두 번 들이쉬고 한 번 길게 내쉬고. 초등학생 때였나 당시 동네 학교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하며 아빠가 가르쳐 준 호흡법이다. 그렇게 숨을 쉬니 뭔가 안정되는 느낌이 들었다. 이후 고등학교에서 4km 달리기를 할 때도, 경주에서 10km 벚꽃 마라톤에 참여했을 때도 나는 그 호흡법을 활용하여 뛰었다. 70분이나 걸렸지만 그래도 한 번도 걷지 않고 뛰어 완주 메달을 받은 것은 90%는 아빠 덕분이다.
인정하기 싫든 좋든 아빠와 나는 닮은 꼴이다. 나는 아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사람은 비슷한 사람에게 너그럽기 마련이다. 정상에 오를 즈음이었나 어느새 나는 아빠의 눈을 마주치는 것이 어색하지 않게 되었고 자연스레 이 말 저 말 하며 걷고 있었다. 한양도성 완주 인증서를 받으려면 사대문 근처에서 4개의 인증 도장을 찍고, 네 군데에서 인증 사진을 찍어야 한다. 인증 사진 장소 중 하나가 낙산 정상이라 시원하게 인증샷 찍어드리고 다시 성곽을 따라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정상 즈음에 이화 벽화마을이 있는데 여기서부터 2코스 도착점인 흥인지문(동대문)까지는 서은 가은과 걸었던 적이 있어 익숙한 길이다.
아빠가 나에게 말을 거신다. 성곽에 쓰인 이 큰 돌을 보렴. 여기까지 이 돌을 나르려면 사람들이 얼마나 힘이 들었겠니. 그 당시 3개월씩 교대하여 남자들을 동원했다는데, 남편이 성곽 쌓으러 떠나면 너는 혼자 아이보며 어떻게 살았겠니? 이렇게 입체적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신다는 게 신기하다. 덕분에 나도 그 시대 사람이 되어 본다. 옆에서 곧 이야~ 감탄사가 들린다. 성곽따라 부는 바람이 아빠의 몸 속까지 다 훑고 나오나 보다. 그 바람은 아빠의 오장육부에 신선한 공기를 집어 넣고 기분 좋은 탄성이 되어 입 밖으로 나온다. 아빠가 기분 좋으신 걸 보니 나도 기분이 좋다. 아빠가 기분 좋은 것에는 나도 한 몫을 했다. 정말 좋은 것을 봤는데 함께 나눌 옆지기가 없을 때의 아쉬움. 그거 다들 아는 기분이지 않는가? 오늘 나는 옆지기의 역할을 나름 잘 했으니 그것만큼은 대견스러워 해도 될 것 같다.
혼자 다니는 게 좋기만 할 사람이 있을까. 평소 아빠는 거의 혼자 다니신다. 엄마가 몸도 정신도 불편하시다 보니 24시간 엄마 옆을 머무시다가, 엄마가 하루 꼬박 깊은 잠이라도 드실 때에는 살그머니 나오셔서 몇시간이고 몇 키로고 걷고 들어가시는 거다. 아빠는 혼자 걷고 혼자 읽고 쓰신다. 혼자 청소를 하고 밥을 짓는다. (물론 돕는 손길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엄마가 화장실 갈 때든 산책을 할 때든 샤워를 하고 옷을 입을 때든 혼자 돌보시고 뒤치닥꺼리를 하신다. 그렇게 부부가 함께 있지만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만 하는 영역을 성실히 살아오고 계신다.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니 어쨌든 아빠와 내가 한 핏줄이라는 연대감에 더하여, 인생을 마주대하며 묵묵히 돌파해 가는 한 인간에 대한 경외감이 든다. 평생 옆지기를 위해 자신의 삶을 내어주는 아빠가 대단하다. 그렇게 다니는 것 좋아하고 활동적이신 아빠가 엄마의 컨디션에 따라 움직이신다. 엄마를 돌보려면 당신이 건강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운동을 하시고, 집에 오래 있는 시간을 활용하여 성경을 읽고 필사를 하신다. 지칠 때면 엄마에게 잔소리도 하고, 아무래도 남자의 두꺼운 손이 하는 요리며 살림이라 엉성한 면도 없지 않겠으나 아빠는 엄마의 옆자리를 지키고 계신다. 그것이 정말 대단한 거다.
곧 한양도성박물관에 가려졌던 흥인지문이 보인다. 인증도장을 찾아 찍고는 벤치에 앉으니 점심시간이다. 깎아간 배와 간단한 요깃거리를 나누며 가방을 가볍게 하고는 작별. 아빠는 완주를 위해 걷던 길을 계속 가시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다행히 주무시고 계시다가 내가 도착하자 일어나셔서 화장실 가는 것을 도와드렸다. 그러고 조금 있다가 아빠께 기분 좋은 전화를 받았다. 시원한 물소리를 전하고 싶었다는 아빠의 생기있는 목소리가 감사하다. 짧은 시간이나마 아빠 따라 나섰다 들어오길 잘 했다 싶다.
덧. 아빠는 그 다음날까지 계속 걸어서 완주에 성공하셨다. 성곽의 흔적이 사라진 도심에서 종종 헤매기도 하시고, 인증도장을 찍기 위해 길을 돌아가기도 하면서 남산, 안중근기념관, 정동과 덕수궁 돌담길, 돈의문 박물관과 경희궁, 백악산과 인왕산까지 돌고 오셨다. 시간이 있으면 덕수궁도 들어가 보고 싶고 공연도 보고 싶었는데 돌아왔다며 아쉬움을 표하신다. 그래도 아빠, 서울 사는 우리도 군데 군데 다녀보았을 뿐인데 아빠는 한 바퀴를 다 돌아보셨군요. 대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