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서울시립미술관 <서도호와 아이들: 아트랜드> 전시회
클레이를 싫어하는 아이들이 있을까? 조물딱 조물딱 손 안에 부드럽게 뭉쳐지는 느낌이 좋은데다 이 색 저 색 살짝 섞으면 오로라 같은 층층의 색이 이쁘다. 조금 더 주무르면 완전히 새로운 색이 만들어 지고 한층 다양하게 원하는 모양을 만들 수 있다. 집에서 20분 남짓 거리의 미술관에 바로 클레이를 이용한 어린이 전시가 시작되었다. 참여형 전시라 클레이를 받아서 직접 만들 수 있고 원하면 두고 와 전시가 되니 아이들을 잡아끌 수 밖에. 우리는 전시가 시작된 후 이미 네 번이나 다녀온 터였다.
오늘은 특히 선생님과 함께 하는 <아트랜드, 너는 누구니?> 수업이 있는 날이다. 지난 전시였던 <먼길 이야기>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후, 수업이 있을 때마다 미술관에서 소식을 보내주어 이번에도 신청을 할 수 있었다. 1시간 20여분 정도 어린이들만 활동을 하고, 이후 어떤 과정으로 수업했는지 부모님에게 피드백을 해 준다. 덕분에 바삐 데려오느라 턱까지 차오른 숨을 내쉬고 우아한 미술관 까페에서 차 한 잔과 빵조각으로 허기를 달랠 수 있었다.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서도호씨(1962~)는 외국에서 더 많이 알려진, 유명한 설치미술가라 한다. 어린 시절부터 이곳 저곳을 옮겨가며 살아 유목민의 삶과 정체성이 작품에 깔려 있단다. 잉글랜드의 두 건물 사이에 어린 시절 살았던 한옥을 끼워 배치한 [Bridging Home]과 이전에 살았던 공간들을 투명한 푸른 천으로 옮길 수 있도록 만들어 연결해 놓은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사진을 보여주는데 인상적이다. 7월 26일부터 23년 3월 12일까지 여는 이번 어린이 전시에는 사실 작가가 서도호씨의 자녀인 서아미, 서오미양이다. 7년동안 만들어 온 클레이를 모아 아트랜드를 만들었는데 이를 시작으로 많은 아이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전시로 꾸몄다고 한다.
클레이, 색종이 등 아이들이 생산해대는 온갖 작품의 양은 생각보다 많다. 벽에도 붙여보고 책장에도 전시를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처치 곤란한 상황. 아이들이 없을 때 살짝 눈에 띄지 않게 버리는 것이 기술이라 할 수 있다. 아미, 오미양과 그 아버지는 그렇게 대부분 버려지는 클레이 작품들을 7년간 모아 스토리가 있는 나라를 만든 것이다.
예를 들면, 이 나라에는 인간이 아니라 슬라임이라는 귀엽게 생긴 생명체가 사는데 머리 사이에서 알을 낳아 번식하며 아주 민주적이라 서로 의논을 하여 결정을 한다. 그래서 방사능을 발산하는 스포키 트리도 그저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라, 회의를 한 후 무인도에 스포키 트리를 옮겨 그 곳에서만 자라도록 했다고 한다. 굵은 면발을 여러 번 감아 놓은 듯한 누들그라스는 밟으면 독이 나오고 파리지옥처럼 다른 생물을 잡아먹기에 조심해야 한다. 아트랜드 정글 위를 그물처럼 덮고 있는 팔찌 모양의 크고 작은 연결체는 '우마'라는 덩굴식물인데 요리와 치료, 마법약으로 사용할 수 있다. 보비공이라는 열매, 탱이웜과 퐁용 등, 생소한 용어들 하나하나에 의미가 있고 그들이 모여 스토리가 있는 나라를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나라 위로 서은 가은 같은 지역에 사는 아이들이 와서 마음껏 만든 온갖 캐릭터들이 자리를 잡았다. 아트랜드는 다양한 생물체를 품고 더욱 다채로워지고 있으며 갈 때마다 그 땅을 넓히고 있다. 아이들의 작품은 무작정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이름, 제목을 써서 올려두면 건조된 후에 서도호 작가가 큰 맥락을 잡아주기도 하고 그 의도에 맞게 전시를 돕는 분들이 의도적으로 배치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수업을 통해 작가의 의도를 안내하고 공간을 꾸미는데 아이들도 참여하도록 하였다.
이번 수업에는 3명이 참여했는데 구조물을 만들기 위해 어떤 모양이 좋을까? 위에서 내려오는 공간이니 미끄럼틀 모양으로 만들어 볼까? 그럼 가져온 재활용품 중 어떤 물건을 이용해서 만들면 될까? 선생님이 생각을 돕는 질문을 하면 마치 아트랜드의 슬라임처럼 함께 의견을 내고 결정하여 만들었다 한다. 서은이가 챙겨간 계란용기 두 개를 이어 길쭉한 미끄럼틀을 삼았고 클레이를 넓게 펴서 그 위를 덮을 색깔도 파스텔톤으로 정했다.
그리고 이 아트랜드에 사는 캐릭터도 창조하였다. 서은이는 귀가 세 개, 다리가 세 개인 생명체와 애완동물을 만들었다. 새인데 다리가 4개이다. 맨 처음에 만들라고 하니 머뭇거려서 '현재 살아있는 생물들이 이 곳에 가면 어떻게 변할 것 같은지 상상해 보라'고 생각의 징검다리를 놓아주니 이런 작품들이 나왔다고 한다. 서은이 친구는 생명력이 있는 크레파스를 만들었는데 사람들이 쓰면 자신이 닳기 때문에 눈에 띄지 않게 죽은 척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꾸몄다.
마음껏 상상력을 펼치고 이야기를 만들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어느 새인가 나는 정확한 사실을 추구하고, 뭔가 허구같고 현실적이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터부시하는 실용주의 노선을 타고 있는 듯 하다. 서은이가 손이 빨라 뚝딱 만들긴 하는데 생각은 정리가 안 되어 처음에 머뭇거렸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맘껏 상상해 보도록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창의성을 키우는 발문과 활동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내년에 복직을 하여 학교에 가면 이 아트랜드 수업을 미술시간에 사용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창조는 모방에서 나오지 않는가. 막상 클레이를 주고 만들어봐~ 하면 뭐 만들지? 고민하는 친구들이 많다. 그럴 때 여러 색을 섞어 보며 색의 변화를 경험해 보고 동글 동글 다양한 크기로 빚어 탑 쌓듯 쌓아보는 거다. "이게 바로 달콤하고 영양가 있는 식물인 탱이웜이야." (이를 납작하게 눌러 팬케이크 모양을 만들고) "이건 퐁용라고 해. 슬라임이 먹는 과일이란다." 상상력이 더해진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들은 탱이웜과 퐁용을 그리고 그 사이를 거니는 새로운 창조물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서은이가 머리 세 개 다리 세 개의 생명체를 만든 것처럼.
아트랜드 개국 7년째가 되니 이렇게 이웃과 공유하고 감동과 자극을 줄 만한 무언가가 짜잔! 하고 나왔다. 수업 중 선생님이 '너희들은 꾸준히 해 온 게 뭐가 있냐?'고 물었는데 서은이는 자기가 학교를 꾸준히 다녔다. 그리고 얼마 전에 시작한 태권도를 꾸준히 해 보고 싶다고 했단다. 그래~ 꾸준히 해 보렴. 일기쓰기와 피아노도 지금처럼 꾸준히 가보자^^ 그러면서 나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져본다. 나는 무엇을 꾸준히 하고 있는가? 무엇을 꾸준히 하고 싶은가? 이건 아주 인생의 중장기 프로젝트를 묻는 묵직한 질문같다. 일단은 지금처럼 글쓰기모임을 힘입어 꾸준히 글을 써 볼까 한다.
수업이 아닌 작품의 관람과 체험 참여는 이제 현장에서 바로 예약하여 이용할 수 있다. 온라인 사전예약이 필요했던 9월보다 참여의 폭이 더 넓어졌다. 미술관을 나서며 서은이가 또 오자고 한다. 클레이 생각이 날 때 또 채근하겠지. 그래, 또 오지 뭐! 이번에 아트랜드를 속속들이 알았으니 다음에는 서은이도 나도 더 즐겁게 참여할 듯 하다. 하늘색과 연보라 미끄럼틀 위에 세 발 달린 서은이의 창조물이 전시되었다. 머리 윗 쪽 색색의 우마도 서은이 작품이다. 다음에 오면 이 공간도 확인해 보며 뿌듯해 할 것 같다.
오늘 수업은 서은이가 했는데 10분 동안의 피드백을 들으며 나 또한 배웠다. 창조물은 생각을 넓히는 창조적인 생각과 꾸준함에서 나온다는 것을. 따라해 볼 수 있는 아이디어와 자극을 주어 이번 전시가 참 고맙다. 다른 방의 전시도 보고, 미술관 앞 잔디밭에서 놀기도 하고 미술관은 언제 와도 놀 만한 곳이다. 특히 이번에는 이제껏 어린이 전시 중 가장 참여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전시회라 더 반갑고 이런 수업의 기회를 누리게 되어 엄마로서도 너무 뿌듯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