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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준희 Dec 16. 2022

우리에게 왔어

 우리집에 별이가 입양되었을 때가 생각난다. 작은 아이 친구네 집의 고양이가 새끼를 다섯 마리 낳았는데 그 사진을 보고서 나와 작은 아이는 홀려 버렸다. 된장,간장,쌈장, 춘장 그리고 막장이라는 아기 고양이 형제들은 너무나 귀여웠다. 친구는 간장이가 제일 예쁘고 똘똘하다고 키워주면 좋겠다고 했다. 우리는 한 번도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키워본 적이 없었지만 수시로 보내는 사진들을 보며 이미 없으면 안될 것 같은 상태가 되었다. 멀리 오산으로 가서 데려온 별이는 기막히게 작았다. 생후 이개월 된 아기 고양이를 보물단지보다 더 조심스럽게 온가족이 돌봤다. 


 우리 식구들은 이전까지는 각자 자기 방에 문닫고 들어가서 자기 일만 하던 사람들이었는데 별이가 온 후로 거실에 모두 모여서 별이가 하는 모든 행동과 소리에 신기해하며 웃고 떠들게 되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그렇게 모두의 삶이 조금씩 바뀌었다.큰 아이는 매일 녹초가 된 상태로 귀가했다가 잠만 자고 나갔었는데 별이가 온 후로는 밤마다 뛰어다니며 놀아주면서 피로를 풀게 되었다. 아빠는 대부분의 시간을 텔레비젼 스포츠 채널을 보며 지냈었는데 이제는 평생 아무 한테도 해본 적이 없는 아부를 별이에게 보내고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는 이리 와보라는 부탁을 하면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한다.


 무엇보다도 큰 변화는 총집사( 집사는 고양이를 돌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사람을 주인으로 받드는  강아지와는 달리 고양이는 사람의 섬김을 받는다. )인 작은 아이의 일상이었는데 별이와는 서로 같은 종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별이는 자기를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우리 옆에 꼭 한 자리를 차지하려하고 작은 애는 고양이가 되어 버린듯이 고양이 소리를 내고 몸짓을 흉내낸다. 두 존재가 그렇게 서로를 사랑할 수가 있나 싶게 꼭 붙어 있었다.

 별이가 처음 왔을 때 작은 애는 유학 준비와 포트폴리오 준비를 함께 하면서 힘들어 하고 있을 때였다. 책상위에 커다란 오선지 노트를 펴 놓고 씨름을 하고 있으면 아가 별이는 그 위를 걸어다니곤 했다. 작은 언니의 영감을 건드리고 심리적인 안정감도 함께 주었는지 무사히 준비를 잘해서 가고 싶어하던 학교로 갔다. 하지만 그것이 슬픈 이별이 될 줄이야…


 작은 아이는 바쁜 기간이 지나고 연구기간이 되면 별이를 데려가고 싶어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별이는 큰 고양이가 되어 기내탑승이 가능한 몸무게를 넘어서 버렸다. 몸무게가 늘다보니 움직임도 줄어들어서 병원에서는 이대로 두면 기초대사량이 낮아져서 조금만 먹어도 살이 찌게 될거라고 운동을 열심히 시켜야 한다고 당부했다. 어떻게 운동을 시켜야 하나. 그 전엔 거실의 가구에서 식탁으로 뛰어 내리던 시절도 있었다. 또 냉장고 위에 가뿐히 올라 가 있기도 했었다. 하지만 모두 지난 일이 되었다. 작은 언니가 함께 있었더라면 운동을 많이 시켰을텐데…

 운동시킬 방법을 궁리하다가 스승님 댁의 캣휠이 기억났다. 그 댁 고양이는 날씬했기 때문에 우리는 희망을 갖고서 주문을 했지만 별이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래서 온 가족이 별의 별 방법을 다 써가며 애를 써서 두 달 만에 마침내 별이가 한 바퀴를 돌리는데  성공했다. 우리는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고 별이도 성취감 때문인지 흥분한 것이 느껴졌다. 미국에 있는 작은 아이에게 핸드폰으로 생중계를 하면서 온 가족이 월드컵 응원이라도 하는 것 처럼 들떴었다. 별이의 정기검진날에 동물병원 원장님께 캣휠을 돌리는 동영상을 보여드렸더니 감탄하셨다. 이제 근육질 되겠구나 하하.


 이렇게 우리의 온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별이는 내게 아이들을 키울때와는 또 다른 다정함을 느끼게 한다. 몇 년 전 내가 입원했다가 돌아온 후에 삼 일 동안 내 발언저리에서 떠나지 않은 일은 정말 특별한 일이다. 자리를 이동하며 하루를 보내는 고양이들의 습성을 접어두고 온 마음을 다해 엄마를 지키겠다는 별이의 마음은 따뜻한 체온과 함께 내게 전해졌다. 한 생명체가 다른 생명체에게 간절함을  보낸다는 것은 생명을 불어넣는 것과 같다. 


 그리고 밥그릇이 비었을 때나 간식을 먹으려고 할 때 엄마가 해줄 수 있을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고 절대로 보채거나 짜증을 내지 않는다.  별이가 어디 아픈건 아닌지 늘 미리 살펴야 하는 것도 아픈 티를 내지 않고 참기 때문이다. 동물적이라는 말을 사람들이 쓸 때는 참지않고 거칠다는 뜻일테지만 별이에게 그런 점은 없다. 내게 동물적이라는 단어는 감정을 거짓으로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마음을 준다는 의미이다. 또한 하염없이 기다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동물들의 시간과 사람이 느끼는 시간은 다르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별이가 우리집에 온 후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줄 수 있는 대상이 생겼다는 것이 제일 좋은 점이다. 돌려받을 기대를 하지 않고 내가 주고 싶은대로 마음껏 마음을 준다는 것은 우리자신에게 오히려 큰 위로가 된다. 사랑은 아낌없이 줄 때 의미있는 것이니까.

난 사람에게 거는 기대가 없어져 가고  별이와 재미나게 놀 궁리만 한다. 이러다가 어느 달 밝은 밤에 고양이로 변신하게 될지도 모른다. 정말 그러고 싶다. 그래서 별이와 한 달 정도 많은 이야기를 나눈 후 어느 비바람이 몰아치는 밤에 사람으로 다시 돌아오면 좋겠다. 그 후엔 별이를 꼭 닮은 사람이 되어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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