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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준희 Dec 16. 2022

브루크너와 브람스

음악회 리뷰

 놓쳐서는 안되는 음악회였다. 이런 저런 이유로 망설이다가 마침내 기대를 가득 품고 예술의 전당 이층에 앉아서 무대를 내려다보며 귀를 기울였다. 브루크너의 교향곡이 연주되는건 흔치않은 일이다. 게다가 5번이라니. ‘로맨틱’ 이라 불리는 4번 교향곡과 7번 교향곡은 가끔 연주되지만 우리나라에서 5번 교향곡이 연주되는 것은 드문 일이다. 게다가 브루크너의 고향인 린츠에 자리잡은 오케스트라가 한국과 오스트리아의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서 내한공연을 하는 것이라 더욱 의미가 있었다. 오케스트라의 이름도 ‘브루크너 오케스트라 린츠’ 이다. 브루크너 음악을 전문으로 내건 오케스트라의 공연이라 기대가 될 수 밖에 없다.


 린츠 오케스트라는 예상했던 것보다는 작은 편성이었고 무겁고 장중한 사운드라기 보다는 명료하고 단정한 소리를 들려주었다.

 첫 번째 악장의 시작은 더블 베이스와 첼로의 피치카토 (활 대신 손가락으로 줄을 뜯는 주법) 를 나직하게 들려주며 시작되었다. 그렇게 시작했지만 트럼펫과 트롬본, 호른으로 이어지는 금관악기의 빛나는 사운드는 풍성함과 날카로움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그러다가 플루트 두 대가 단순한 리듬으로 선율을 연주하고 현악파트가 받쳐주는 부분에서는 집중의 강도를 높이며 명상의 세계로 이끌었다. 모든 악장은 현악기와 관악기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브루크너 특유의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마지막 4악장의 피날레는 팀파니가 멋지게 마무리했는데 마치 구원되어 천상으로 나아가는듯한 느낌이었다.


브루크너를 이야기 할 때 브람스와 바그너를 빼 놓을 수 없다. 당시 유럽은 브람스 파와 바그너 파로 나뉘어 극심하게 대립되어 있었다. 브람스는 베토벤의 후계자로 자처하며 낭만주의 음악의 시기에 고전적 양식을 지닌 교향곡들을 작곡했다. 반면에 독보적인 음악세계를 가진 바그너는 음악극이라는 특이한 장르를 세상에 내보이며 열렬한 지지자들을 만들어냈다. 여기 사이에 잘못 끼여 브루크너는 양쪽에서 공격을 당하는 불운한 처지가 되어 버렸다.

 린츠에서 공연된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를 보고난 후에 바그너의 추종자가 되기로 한 브루크너는 바그너를 몇 번 만나기는 했지만 별 도움을 받지 못했는데도 브람스파의 음악비평가인 한슬릭의 공격을 평생 받으며 힘들어 했다. 브루크너의 음악은 브람스의 작품과 바그너의 작품들 중 어느 쪽과도 연관되지않는 독특한 화성과 종교적인 분위기로 가득하다.

 그 날의 공연에서 브루크너의 난해한 화성이 하나 하나의 음들을 돋보이게 했다면 브람스의 교향곡을 들을 때는 거미줄같은 화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 하나의 음들이 가는 줄로 존재하지만 동시에 잘 짜여진 하나의 소리를 내는 그런 입체감이 브람스의 분위기 넘치는 사운드를 만들어 내는 것 같다.

 브루크너와 브람스는 빈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브람스는 스무살에 당대의 영향력있는 음악평론가이며 작곡가인 슈만의 호평을 받으며 등장했고 슈만 주변의 음악가들과 친분이 두터웠다. 무뚝뚝한 성격이었음에도 일생동안 높은 인기와 영향력을 누렸으며 바하, 베토벤과 함께 3B 로 칭해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브루크너는 린츠라는 작은 도시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거의 지지를 받지 못한채로 많은 작품들을 쏟아냈다. 즉흥연주에 능했던 오르가니스트이기도 했던 브루크너는 교회음악도 많이 작곡했다. 또한 빈 음악원의 교수로 지내며 화성학과 대위법을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하지만 그는 부족한 사회성과 소심한 성격으로 고독한 삶을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긴 교향곡들의 위대함은 독특하고 개성있는 음악이라는 것을 넘어선 뭔가가 있다. 그의 정신세계는 드높은 곳에 올라가 있는 듯하다. 그래서 그의 교향곡을 듣고 나면 나의 정신은 지상을 벗어나 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브루크너는 작은 도시에서 음악을 공부했고 다른 음악가들과 거의 교류하지 않은채로 작품을 만들어 냈기 때문에 그런 독보적인 음악 세계를 만들어 냈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거부당하고 심지어 비웃음을 받기까지 했어도 그는 독창적인 자기 세계를 포기하지 않았다. 바로 이런 점이 클래식을 오래 들었던 사람들이 마침내 그의 음악에 빠져드는 이유일 것이다. 어디서도 듣지 못했던 고유한 세계는 새로 클래식에 입문하는듯한 생소함을 준다. 그것은 현대음악을 들을때의 생경함과는 달리 중세 음악의 분위기마저 감지하게 되는 그런 낯섬이다. 사실 그는 중세 음악에 관심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의 음악은 지성적이면서도 풍부한 감성을 가졌기에 그의 음악을 듣고난 후에는 그 감동이 그렇게도 오래 남는다. 그는 고귀한 정신을 소유했음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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