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달 첫째 주 수요일엔 순교성지 성당에서 미사반주를 한다. 관성적으로 가는 동네 성당과는 달리 마음먹고 성지 순례를 온 신자들이라 간절한 마음으로 미사를 보는 것 같다. 오르간 소리가 성당에 가득 찬 순간은 내 마음도 좋은 기운으로 충만해진다.
목요일엔 헴넷을 보았다. 상영관이 줄어가는 시점이어서 오전에 보고 왔는데 먹먹해진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다. 셰익스피어가 가족들과 지내지 않았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이야기이다. 그가 가족들과 화목한 시간을 보낸 헌신적인 가장이었다면 그의 수많은 작품들이 남겨질 수 있었을까. 그는 뼛속까지 고독하게 살았을 것 같다. 영화 헴넷은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시린 감동을 주는 영화였다. 삶은 예측한 대로 흘러가지 않고 곳곳에서 비극을 만난다. 사람들은 처절하게 찢긴 마음을 간신히 부여잡고 잊은 척 살아간다.
금요일에 또 순교성지로 미사 반주를 하러 갔다. 금요일 반주를 맡은 분이 노로 바이러스에 걸려서 고생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평소에 다른 반주자에게 사정이 생길 때 자주 대신 해주던 분이었는데 이제 본인이 갑자기 병이 나서 급하게 부탁하는 글을 단톡방에 올렸다. 내가 하겠다고 나섰다. 평소보다 연습시간이 부족했지만 다행히 잘해서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성당을 나섰다. 그때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혹시 수도회에서 하는 외국인을 위한 영어미사 반주를 일요일에 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내 반주 소리가 참 좋았다고 여기 반주하러 오는 날이 언제냐고도 물었다. 나를 알아봐 주는 누군가가 있는 건 기쁜 일이다. 미사 시간이 이른 아침이어서 선뜻하겠다고 나서지를 못했다. 생각을 좀 해봐야 할 것 같다. 뭔가 좋은 일을 하면 비슷한 일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좋은 일은 좋은 인연을 부른다.
일요일 아침에 마켓 컬리로 새벽에 배송받은 꽃 두 다발이 집안을 화사하게 바꾸어 놓았다. 연핑크 스토크와 캐모마일이 야리야리하면서도 화사하다. 한결같은 모습으로 베란다를 차지하고 있는 화분들도 늘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