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스왈로우즈 공식 브런치를 통해서 발행된 글입니다. 이곳을 통해서 재발행합니다.
얼마 전 화제가 되었던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셰프의 레스토랑에 가 볼 기회가 있었다. 모든 요리가 맛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야채로 만든 “베지테리언 사시미”였다. 맛과 비싼 재료만으로 따지자면 더 뛰어난 수준의 메뉴들이 많았지만, 맛뿐 아니라 신기하고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 다는 면에서 '베지테리언 사시미'가 단연 최고였다.
"베지테리언 사시미"는 아보카도와 비트를 김에 싸서 간장에 찍어 먹는 메뉴인데, 눈을 감고 맛보라는 안내를 받는다. 참치회를 떠올리게 하는 색과 모양의 비트조각, 신선한 아보카도를 젓가락으로 천천히 집는 순간부터 입에 넣기까지의 몇 초간 호기심과 기대감은 커져가고, 머릿속에는 이미 참치회의 맛이 떠오른다. 입에 넣으면서도 정말 그런 맛이 날까 하며 궁금해하며 맛을 보는 순간, 정말 내 입과 뇌에서 참치회 맛을 느꼈다. 그때 내가 먹은 건 비트와 아보카도가 아니라 셰프의 창의성과 실력이 만들어 낸 새롭고 유일무이한 경험이었다.
유명한 셰프의 맛집이나 카페가 아니더라도 내가 아끼고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카페나 레스토랑을 떠올려 보자. 메뉴의 맛뿐 아니라, 분위기와 냄새, 제공하는 방식, 서비스의 온도에 이르기까지 느껴지는 특별하고 매력적인 경험이 있는 곳일 것이다.
물론 50년, 100년 된 노포는 맛만으로 사랑받고 있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노포 또한 맛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 먹을 수 없는 유일성과 오랜 시간의 명성, 그리고 켜켜이 쌓인 사람들의 추천평으로 어우러진 기대감과 특별한 분위기가 그 맛을 살린다. 또 그런 것들이 그 시간을 더 가치 있는 경험으로 확장시켜 주는 게 아닐까.
제품이 아닌 경험을 구매하는 시대다. 하워드 슐츠가 스타벅스에서 커피 이상의 경험을 제공하는 제3의 공간을 표방했고 소비자들은 정말 커피만을 위해 스타벅스에 가지 않는다. 사랑받고 오래가는 브랜드는 커피 한 잔, 소금빵 하나, 국수 한 그릇을 제공할 때도 미각이 아닌 다른 요소를 결합해서 그 미각을 더 특별한 경험으로 느끼게 해주는 장치가 필요하다. 그것은 시각일 수도, 촉감(식감) 일 수도, 후각 또는 청각일 수도 있다.
또한 그 경험은 디테일과 스토리텔링으로도 연결된다.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요소를 찾아내고 색다름을 주려면 더 깊이 고민하고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디테일에 녹여내는 수밖에 없고, 그 자체가 바로 스토리텔링이 된다.
노포의 특별한 맛도 작은 부분에서 다른 집과는 다른 재료 선별법이나 가공방식 또는 제공방식으로 완성이 되는 경우가 많다. 요즘 인기가 높은 베이커리나 디저트 카페도 만든 사람의 정성을 시각으로 구현해 낸 VMD (Visual Merchandising)와 패키지, 제공 방식으로 새로운 경험을 준다.
언젠가 성수동에 들렀다가 길게 늘어선 줄에 합류해서 먹어본 “자연도 소금빵”은 진열 방식과 제공 방식(패키지), 직원들의 유니폼 하나에서도 소금빵 하나에 진심을 다한다는 느낌이 전해졌다. 30분이 넘는 웨이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빵을 사가는 사람들은 맛있는 소금빵 하나가 아니라 소금빵의 진수를 만나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줄을 선 것이라 생각한다. 내 제품, 내 요리의 자부심, 자신감을 나타내는 다양한 표현이 소비자에게는 특별한 경험으로 전달된다.
중요한 것은 새롭고 특별한 경험의 원천은 ‘실력’과 ‘진정성’이어야 하고 그것이 '유효'하게 전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재료와 맛을 제대로 다루고 그 위에 디테일을 색다르게 구현해내야 한다. ‘새롭고 신기한’ 경험에만 초점을 맞추어 제품의 비주얼과 눈에 띄는 인테리어 등의 겉포장을 입히는 데 집중한다면, 그 가벼움에 한 번 재미로 찾고 마는, 반짝 뜨고 지는 SNS 맛집이 되기 쉬울 것이다. 또한 반대로 재료와 맛에 대한 자부심만으로, 디테일에 소홀해진다면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경험이 아닌, 나만 아는 '몰래 쏟은 정성'이 되고 소비자의 선택조차 받기 어려울 것이다.
눈을 감고, 내가 만들고 싶은 카페, 레스토랑, 브랜드를 떠올려 보자. 소비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경험은 어떤 것일까. 실력과 진정성 그리고 디테일이 따라올 때 그 경험이 완성될 것이다.
필자 : 최승희
스왈로우즈 부스터스
워커힐호텔, 썬앳푸드, CJ푸드빌, 공차코리아 마케터를 거쳐 아티제와 쿠차라를 운영 중인 보나비 CMO로 일하고 있습니다. 먹고 마시는 게 좋아서 덕업일치 24년 차인 F&B 마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