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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우성 Apr 04. 2021

마지막 경험이 중요한 이유

얼마 전 유명한 커피 로스터리에서 만든 원두를 온라인으로 구매했다. 


3년 전 처음 이곳의 매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날것의 인테리어와 공간이 주는 기운, 두 줄로 길게 세워진 핸드드립 커피들 그리고 커피 한잔의 경험이 매우 좋았다. 이것이 스타벅스 원두만 습관적으로 구매하다가 이 브랜드 원두를 처음 온라인으로 구매한 이유다. 


그리고 며칠 후 주문한 원두를 받았다. 패키지 역시 그곳 답게 좋았고 포장지 한 면에 크게 쓰여 있던 문장들에서도 스타벅스와 다른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안에서 세어 나오는 원두의 향도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브랜드에 대한 로열티가 패키지를 통해서도 쭈욱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아.. 이곳 브랜딩 잘하는구나.


하지만 포장을 뜯는 과정에서 좀 전의 감정은 많이 사그라들었다. 포장이 손쉽게 뜯기지 않았고 이렇게 뜯어보고 저렇게 뜯어보고 하다 결국 어쩔 수 없이 가위로 잘라 개봉을 해야 했다. 차라리 가위로 개봉하라는 표시는 있었으면 이런 불필요한 경험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피크 엔드 법칙(Peak & End's Rule)이란 것이 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가 특정 대상에 대한 경험을 평가할 때 그 대상에 대한 누적된 경험의 총합보다는 그것에 대한 기억(혹은 경험)이 가장 절정을 이루었을 때와 가장 마지막 경험의 평균으로 결정된다는 이론이다. 쉽게 얘기하자면 우리가 어떤 사람에 대해서 평가할 때 그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에 대한 경험의 누적이 그 사람의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이 나에게 가장 인상적이었을 때(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의 경험(혹은 기억)과 그 사람과의 가장 마지막 경험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사용하는 제품이나 브랜드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다시 커피 이야기로 돌아가서.. 


아마도 이 브랜드는 패키지의 메시지와 디자인에 굉장히 공을 들였을 것이다. 이 역시도 중요한 브랜딩 요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나와 같은 고객의 경험은 그곳에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전에 내가 이 브랜드에 느꼈던 감정(Peak)이 100점이었다면 패키지를 뜯는 마지막 경험(End)에서 난 40점 이상을 주지는 못했을 것 같고 결국 이 브랜드에 대한 이전의 멋진 감정은 마지막 경험에 의해 한순간 굉장히 내려갔다. (100점에서 70점으로) 


학계에선 이 피크 앤드 법칙이 맞다 틀리다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보통 우리는 처음만큼 마지막에 신경 쓰지 않는 경향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 경험은 의외로 굉장히 중요하다. 그것에 따라 이전에 잘 만들어 놓았던 이미지에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생각보다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애플이 제품의 디자인뿐 아니라 제품을 박스에서 꺼내는 섬세한 과정의 끝단의 경험까지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가 아마도 이것 때문일 것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브랜드는 고객이 느낄 수 있는 다양한 마지막 경험에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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