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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글 Jul 20. 2023

거창하지 않지만, 기록하는 사람

기록의 이유


나의 출근길은 집에서 나와 이어폰을 장착하고 걸으면서 시작된다. 이동하며 플레이리스트를 훑는다. 왠지 팟캐스트가 당기는 아침이다.


맨 처음은 영어 팟캐스트인 ‘BBC WORLD’를 15분 정도 듣는다. (영어와 친해지기 위해 예의상 에피소드 한 가지씩이라도 들으려고 노력 중이다.) 버스 정류장까지 약 10분 정도 소요되므로 정류장에 도착해서 좀 기다리다 버스가 도착할 때쯤 다른 프로그램을 듣는다.


부지런히 나온 덕분에 버스 안은 한적하다. 좋아하는 맨 앞 좌석에 폴짝 올라가 앉는다. 오르내리기가 좀 걸리적거리긴 해도 다리가 짧은 나에게 좀 더 편안한 승차감을 주기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좌석이다. 물론 어르신이 타시면 양보해드려야 한다.


‘BBC WORLD’ 다음 순서는 ’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이라는 강연 프로그램이다. 뜻하지 않게 요즘 내가 주력하고 있는 ’ 글쓰기’에 관련된 주제가 나와서, 나는 휴대폰 액정화면으로 다시 한번 연사와 주제를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회학자 노명우 님의 ‘당신의 인생을 글로 써야 하는 이유’가 강연의 제목이었다. 연사는 사회학자가 아닌 누군가의 ‘아들’이라는 자격으로 이야기한다며 강연을 시작했다.


그의 아버지는 2014년도에 돌아가셨고, 1년 2개월 후인 2016년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어머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어머니의 인생에 대해서 여쭤보기 시작했고, 어머니에게 묻고 들었던 구술자료를 가지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인생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어머니께 살아생전 당신의 인생이 이랬다고 완성된 글을 보여드리고자 힘썼지만, 결국 글이 완성되기 전에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연이은 부모의 죽음으로 떠오른 일이 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기억할 수 있는 방법으로 부모의 인생을 기록하는 일을 계속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부모님의 인생을 기록하기 위해 시작했던 그 글이 완성되었을 땐, 부모님과 같은 시대에 태어났던 무수히 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되어 있기도 했다.


그는 이 글을 쓰면서 기록이 얼마나 위대하고, 기록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를 절실히 느끼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하면서 말했다.


‘역사는 보통 위대한 사람들의 이야기만 기록되어 있다. 그 이유는 평범한 사람들이 우리 각자의 이야기를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의 인생은 기록할 가치가 있으며, 평범한 사람들의 인생이 기록되는 한 우리 모두는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매일 글을 쓰기로 마음먹기 시작하니, 예기치 못한 시점에서까지 많은 영감을 얻게 되는 것 같다.

서점 글쓰기 클럽에서 시작한 매일 글쓰기, 강연에서, 책 속 한 줄에서, 출근길 무심코 들었던 팟캐스트에서까지 말이다.


인생의 기억할 만한 가치 있는 것들을 기록하는 것은 분명 위대한 일인 것이다.


사실 나는 어려서부터 쭉 쓰는 걸 좋아해 왔던 것 같다. 아주 어릴 적 쓰던 일기장이나 독후감, 이메일, 싸이월드 등 여기저기 남겨 둔 흔적들을 보면 난 쭉 쓰고 싶어 왔구나 싶다.


왜 이렇게 기록을 좋아하나 생각을 해보니


1. 오래도록 잊지 않고 기억하고 싶어서

2. 복잡한 마음을 쓰면 정돈되면서 적당히 휘발되는 느낌

3. 쓰는 행위를 거듭할수록 내면이 단단해지는 것 같다.

나이테처럼 나를 지탱해 주는 근육이 생기는 것만 같다.


내 마음의 건강과 풍요를 위해 열심히 기록해 보기로 하자.

거창하지 않아도, 나는 기록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기억하고 싶은 순간과 새로운 경험들을,

살아가다 마주하는 크고 작은 가치들을,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쓸 것이다.


그렇게 되새기고, 이제 나의 풍요 한 자락을 타인에게도 공유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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