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보니, 쓸 만해졌습니다>를 읽고
어릴 적 나는 스스로의 쓸모를 잘 알지 못한 채 살았다. 늘 부족했고, 미래는 상상조차 되지 않을 만큼 아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숙제라서 꾸역꾸역 써 내려간 일기, 방학 숙제 계획표, 친구와의 교환 편지, 미술 시간에 그렸던 그림 같은 것들은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다. 애써 기록했던 그 순간들이 오랫동안 내 안에서 반짝이고 있었다는 걸, 이제는 안다.
사회에 던져지고 나서도 기록의 힘은 여전했다. 일을 배우며 꼼꼼히 정리했던 메모는 자산이 되었고, 후에 신뢰로 이어졌다.
‘그때도 지금처럼 알고 있었다면, 좀 더 많이 써두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위한솔 작가의 『쓰다 보니, 쓸만해졌습니다』
이 책은 다정하게 알려준다. 기록은 나를 갈고닦는 과정이며, 결국 미래의 나를 섬세하게 완성해 나가는 일이라고. 거창한 철학도, 화려한 노하우도 아니다.
그저 '나만의 이야기를 꾸준히 쓰다 보면, 언젠가 쓸 만한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고 ‘ 말해준다. 지금 당장 쉽게 시작할 수 있는 방법도 함께 건네준다.
그렇게 쌓아온 문장과 마음이, 언젠가 어떤 소속 없이도 나 자신을 설명해 줄 수 있도록.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오늘 자 신문이 내일이면 쓸모없는 신문지가 되어버리듯, 순간의 가치에만 너무 집중하면 우리도 결국 다른 것들과 묶여 한 번에 버려지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순간의 가치도 중요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의미를 잃지 않는 존재로 살아가고 싶다. “
기록의 본질은 어쩌면 신문과 닮아 있다. 그 순간엔 귀하지만, 영원히 가치 있지 않은 것을 구별하고, 오래 남길만한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책장을 넘기며, 잊고 있던 친구를 다시 만난 것처럼 위로받았다.
”나를 담고 있는 그릇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 있는 본질이 더 중요하다. “
이 문장을 읽고 한참을 생각했다. 내가 늘 마음에 품고 있던 화두이기 때문이다.
삶의 진정한 효율을 알고 싶다면, 미루기 지쳐 이제 뭐라도 시작하고 싶다면, 일상에서 흔히 맞닥뜨리는 사소한 순간부터 놓치지 않고 기록한 이야기들이 따뜻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출판사의 제안으로 시작했지만, 덕분에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 시간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