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장을 졸업했다.
퇴사를 했다.
내 삶의 거의 반을 함께한 첫 직장에서.
올해로 서른다섯인 나에게 인생 최대 용기다.
동기와 딱 1년만 버티자고 했던 세월이 벌써 이렇게나 쌓였다. 1년쯤은 뺀질거렸던 것 같고, 대체로는 일에 애정이 있어 진심으로 임했던 것 같다.
운을 믿지 않지만, 운이 좋았다고 밖에 설명할 도리가 없을 만큼 좋은 사람을 참 많이 만났다. 지쳐있다가 친근한 뒤통수만 봐도 맘이 넉넉해졌다. 마주치면 웃는 나에게 가끔 사람들이 기분 좋으냐고 묻곤 했는데, 나는 그저 사람이 좋아서 웃었을 뿐이다.
나를 오래 봐온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내가 이 회사를 다니며 지내는 일상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먹고, 놀고, 일하고, 여행하고 재밌게 잘 살았다. 어쩌면 날 반쯤 사람 만들어 준 시간이다. 많이 배우고 성장했다. 그러나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 없고,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 큰맘 먹고 새로운 길을 개척해 보려고 한다.
더 늦기 전에 안락한 전쟁터를 떠나 더 고생해 보고, 후회도 해보고, 새로운 경험을 해봐야 할 것 같다. 작별하는 기분에 눈물이 차오르고, 불경기에, 풍족해도 암울한 이 시대에 안정적인 직장인 타이틀을 벗기 두려웠지만,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직감에 어렵게 어렵게 결정을 내렸다. 열심히 일하고 주말에 맘 편히 쉬던 직장인일 때보다 한동안 더 바쁠 것 같다. 그래도 난 분명히 잘 지내겠지? 아직은 실감 나지 않는다. 새해라니.. 퇴사라니.. 믿기지 않는 일들 투성이다. 애정 어린 눈빛과 응원, 포옹이 참 따뜻했다. 사람이 너무 많이 그리울 것 같다.
퇴사를 했다고 해서 평일에 늦잠 자고, 놀고먹지 않을 것이다.
최대한 직장인 생활 리듬 유지해서 다양한 경험과 배움으로 뛰어들 것이다.
잠깐 연차 쓰고 곧 출근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이렇게 이어지다가 어느샌가 다른 일상에 스며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