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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글 Jan 02. 2024

얼른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

소중한 사람들이 편안하기를

박진감 넘치게 새해를 맞기 위해 팔달문 거리로 나섰다. 통제된 찻길은 금세 사람들로 가득 찼다. 크고 화려한 전광판은 없지만, 이 시각 떠도는 활기와 기대 같은 것들이 마음을 들뜨게 했다. 2024년 새해를 알리는 몇 번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작은 전광판을 따라 한마음으로 카운트 다운을 세다 해피 뉴 이어! 하고 동시에 외치는 사람들의 경쾌한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이어졌다.


매 년 새해는 애정하는 이들에게 안부 인사하기 바쁜 날이다. 하지만 오늘은 집 나간 정신을 붙잡기 바빠 먼저 인사를 건네지 못한 이들이 더 많았다.






연휴 동안 응급실에 두 번 다녀왔다. 토요일에 정리할 일이 있어 잠시 회사에 가 있던 중 갑작스레 어지러움을 호소하는 엄마의 전화를 받고 놀라 집으로 갔다가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향했다. 도착해서 조치를 하고, 몇 가지 검사를 하는 동안 다행히도 증세가 나아졌다. 어지럼증은 흔한 증세이기도 하고, 검사 결과에도 이상이 없어 마음 놓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일요일 아침 컨디션이 좋아졌다는 엄마의 말에 안심했다. 밖에 나가 새해를 알리는 종소리를 듣고 집에 돌아와 편히 잠들었다.



그리고 오늘은 가족들과 모여 외식하는 날이었다. 식사 도중에 엄마가 약간의 어지러움을 호소하며 손으로 미간을 짚었다. 조짐이 좋지 않아 보였다. 마침 병원 근처라 서둘러 정리하고 또다시 응급실로 향했다. 이틀 전 병원에 갔을 때 피검사와 뇌, 폐, 큰 혈관 MRI 등을 찍었는데 그땐 골든 타임을 우려해 급한 검사부터 했던 거라 추가로 미세 혈관을 확인할 수 있는 MRA검사를 더 해봐야 할 것 같았다. 당일은 해당 검사가 어려워 엄마는 결국 입원 수속을 밟았고 내일 검사를 받게 된다.



미간 쪽이 어지럽고, 약 먹었을 때처럼 몽롱하다는데 워낙 많은 요인이 있다 보니 응급의학과 의사도 쉽사리 진단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 같다. 연휴 내내 포털에서 검색해 본 바로는 이석증이 의심된다. 생각보다 상황이 더 좋지 않다면 뇌혈관 질환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지만 아직은 아무것도 단정 지을 수 없다. 더 이상 불안을 키우지 않기로 한다. 우선 지금 할 수 있는 조치는 했으니 내일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엄마가 제 발로 병원에 간다는 것은 불안하다는 의미나 다름없다.


3일간의 연휴가 끝나간다. 출근전야인데 얼른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매스컴에서, 응급실에서 죽느냐, 사느냐하고 있는 판국에 나 스스로의 정체된 성장을 비관하며 괴로워하던 얼마 전의 내 모습들이 가소롭기만 하다. 모든 걱정은 지금의 상황 앞에서 흔적도 없이 녹아내리고 있다. 차라리 내가 아프면 마음을 차분하게 놓을 수 있다. 그렇지만 가족은 아니다.







언젠가부터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걸 맘껏 먹고 별거 없는 이야기를 하는 시간, 소중한 사람들이 안전하게 존재한다는 감각에서 가장 큰 안정과 행복을 느낀다.



지난해를 돌아보니 어느덧 나는 1년만 버티고 때려치우겠다 맘먹은 첫 직장에서 15년 근속을 했고, 1월에 시작했던 운동 스피닝을 1년간 이어오고 있고, 매주 수요일 저녁마다 동료들과 모여 갖는 자기 계발의 시간을 약 반년 간 지속하고 있으며, 블로그에 하는 매일의 기록 게시글은 70개를 돌파했다. 엄청난 걸 이루지는 못했지만 살면서 이토록 여러 가지를 동시에 오래 착실하게 해 본 경험은 올해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꽤 뜻깊은 한 해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건 사랑하는 사람의 건강과 안전이 보장되었을 때 유효한 가치인 것만 같다. 특별하다 여겼던 모든 일들의 의미가 상실되는 것만 같다.


내일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사실 별 일 아니었다고, 그렇지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맘고생 많았다고 토닥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기를 바라면서 불안을 다독이며 이 글을 쓴다. 어딘가에서 나와 같을 당신이 있다면 여기 그 맘 아는 내가 있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자고 이야기하고 싶다.


새해 모두 건강하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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