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한계까지 달려 본 적 있나요?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해본 적이 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완주 메달 여러 개쯤 소장한 중급 마라토너 정도 연상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으나, 안타깝게도 ‘도전’이라는 문자 그대로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은 경험으로만 남았다. 아주 혹독한 경험이었다.
그날은 2014년 9월 13일 일요일이었는데,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오늘이 2023년 9월 13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지금으로부터 9년 전 오늘, 나는 한강에서 아침 7시부터 예정인 마라톤에 참가하기 위해 캄캄한 새벽에 집을 나와 수원역에서 잠이 덜 깬 상태로 지하철 첫차에 탑승했던 것이다. 휴일인데도 적지 않은 인파에 놀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부지런히 사는 사람 참 많구나 생각했다.
이른 아침 한강시민공원, 바다의 날 마라톤 현장에는 ‘잊지 말자 세월호’라는 문구가 쓰인 현수막이 높이 걸려 있었다. 나는 자그마치 42.195km 거리인 마라톤 풀코스를 신청했다. 완주를 목표로 한 시도는 아니었다. 나의 한계치까지 달려보고 싶다는 무모하고 치기 어린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도전이었다.
출발을 알리는 총성과 함께 사람들이 앞으로 우르르 내달리기 시작했다. 나도 그 틈 어딘가에서 초가을 아침의 맑고 서늘한 공기를 가르며 힘껏 달렸다. 좋아하는 음악을 배경 삼아 한강 둔치를 달리는 기분이 좋았다. 성인이 되고 줄곧 달리기를 좋아했기에 처음 10km까지는 기분 좋게 달릴 수 있었다.
그러나 감상에 젖을 만큼 여유로웠던 시간은 15km 지점에 이르기도 전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다리 근육이 수축되는 듯한 저릿함이 반복적으로 느껴지다 점점 아파져 쓰러질 것처럼 비틀비틀 뛰게 되었다.
“힘들어요?”
중년의 남자가 나를 추월하려다 말고 다가와 물었다. 그분은 마라톤을 매우 좋아해서 1년에 몇 차례나 풀코스를 뛰는 베테랑이셨다. 옆에서 끝까지 함께해 줄 테니 완주할 수 있다는 목표를 가지고 뛰어보라고 하셨다. 나는 응원에 힘입어 조금 더 달려 보려고 노력했지만 18km 지점에서 완전한 한계에 다다르고 말았다. 보다 못한 그는 다음 기회를 권유했다. 지금부터 왔던 길을 되돌아가도 하프보다 먼 거리가 되는 셈이니 이만하면 잘 뛰었다는 격려의 말도 해주었다. 나 역시 점점 무감각해져 가는 다리를 통제할 수 없을 것 같아 겁이 났기에 꾸벅 인사를 하고 왔던 길을 털레털레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이는 ‘마라톤은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한 마디 말을 흘리며 나를 지나 쳤다. 참가자 중에는 연로하거나, 시각장애인이거나, 외팔인 분도 계셨다. 시종일관 여유로운 자세로 페이스를 유지하고 달리는 그들을 보며 큰 감동과 격려를 받았다.
아무 생각 없이 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한계를 넘어서자 온몸이 고단해져 가장 힘들었던 날의 기억들이 더 실감 나게 떠올라서 괴로웠다. 난 대체 이걸 왜 하고 있는 거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고생을 자초한 건 나다. 길바닥에 드러눕고 싶다. 택시 타고 가버릴까. 이렇게 힘든데 왜 이렇게 내 두 발로 좀 더 가고 싶지. 몸과 마음이 고되고 서러워 유유히 소풍을 즐기는 행복한 사람들 사이를 울면서 달렸다. 온몸에서 열이 났다.
가도 가도 멀게만 느껴지던 종착지까지의 거리가 1km쯤으로 좁혀졌을 무렵, 훤칠하고 비쩍 마른 할아버지가 다가와 속도를 맞춰 뛰며 물으셨다.
“풀 코스 뛰셨나요?”
연세가 꽤 지긋해 보이셨는데, 숨이 차게 뛰는 와중에 건넨 말 한마디마다 교양이 깊게 베어 있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대답했다.
“네. 근데 신체적 한계를 느껴서 18km 지점까지 갔다가 되돌아와버렸어요. 이번 대회는 완주가 목표인 건 아니었어요. 최대의 거리에서 제가 얼마큼 뛸 수 있는지 무모하지만 한계를 시험해 보고 싶어서 도전했어요. 근데 너무 힘들어요. 할아버지 정말 멋지세요.”
“나는 다리에 쥐가 나서 한 3분은 앰뷸런스를 타고 왔어요. 젊은 시기에 도전한다는 건 아름다운 거예요. 멋지네요. 그리고 처음 도전한 것치고는 많이 뛰었네요.”
잠시 후 그와 나란히 결승선을 통과했다. 마지막 참가자를 기다리던 사람들의 격렬한 포옹 같은 환호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여기까지 잘 왔다’고 격하게 등 두드려주듯 날아온 함성들. 결승선을 넘어가자마자 정신없이 완주 메달을 받아 목에 걸고, 완주 기념상품인 멸치 한 박스를 받고, 옷을 갈아입고 나와 정리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결 여유로운 마음이 들자 그제서야 나는 완주 못했는데.. 이런 거 받아도 되는 걸까. 잠시 생각했지만 이미 한참 늦은 때였다.
경기가 끝난 직후 친한 언니 둘을 만났다. 풀코스를 뛴다며 진짜로 한강에 출몰한 내 생사를 확인하러 수원에서 친히 대중교통을 타고 서울까지 와준 것이다. 두 사람은 너무나 찐 친답게도, 내 몰골을 보자마자 안쓰러워하는 기색 하나 없이 쓰러지며 웃었다. 그 와중에 나는 사지를 부들부들 떨며 방울방울 눈물을 쏟아냈다. 그때 내 얼굴은 몇 대 맞은 사람처럼 팅팅 부어 있었고(울어서), 다리를 제어하지 못해 술 취한 사람 같아 매우 웃겼다고 했다. 온몸이 두드려 맞은 것처럼 아파 앓았던 기억이 난다.
꽤 긴 여정이었다. 같이 뛰어준 사람, 인생의 어떤 화두를 던지고 간 사람, 이름 모를 수많은 환대를 만나 귀중한 여운을 남긴 경험이었다.
도전과 성취와 극복. 짧은 시간에 이런 걸 몸소 겪어 보려고 나는 마라톤을 신청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내 기준에서는 대성공이었다. 뼈와 살이 타는듯한 극한의 고통을 경험했고, 오랜 시간이 지나 그때의 고통이 가물해진 지금, 난 또 마라톤을 검색하고 있다. 물론 하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