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씩씩한 당신 (1)

1928년 생 당신의 이야기.

by 여름타자기


1. 得無(득무)




득무.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다는 말처럼 득무는 그렇게 재로 돌아갔다. 심드렁한 화장터 유골 담당 직원은 뼛가루를 담은 통을 흔들었다. 곧 철로 된 득무의 인공 고관절이 스텐 통 안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


“어떻게 하실래예?”


관이 화장터 안으로 들어갈 때 잠깐 눈물을 비춘 것 빼고는 내내 시시덕거리며 농담이나 하던 상철은 ‘버려주이소’라고 망설임 없이 답했다.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나며 둔탁한 그녀의 인공 고관절이 휴지통 안으로 떨어졌다. 득무의 몸에 가장 가까이 붙어있던 그녀가 아니던 무엇이 버려졌다. 모든 것은 끝났다.








득무는 1928년에 태어났다. 그녀를 끝으로 더 이상 딸은 얻지 않겠다는 그녀 아버지의 강한 바람이 이름에서 느껴진다. 득무는 뼈가 굵은 충청도의 딸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일찍이 첩과 함께 살림을 차려 나가 버렸고, 득무의 어머니는 따로 세 딸과 살았다.


득무는 보통 학교 이후로 책과 작별을 고하고 집안일이며 밭일, 십 오리를 꼬박 걸어야 닿는 방직 공장 일까지 척척 해냈다. 그때는 모두가 다 그렇게 살았기에 별반 억울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득무가 맹탕처럼 시키는 대로 사는 것만은 아니었다. 그녀의 언니와 엄마도 비슷한 성격으로 세 모녀가 한번 마음으로 결정한 일은 온 동네가 전심으로 막는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특히 아버지의 두 번째 부인과 자식들이 그들 앞을 어슬렁 거리는 날에는 동네가 시끄러울 정도로 난리가 났다.


득무가 방직공작에 다닐 때였다. 그녀의 친구들이 용한 점쟁이가 있어 찾아간다는 말에 그녀도 그들을 따라나섰다. 나름 겁이 없던 그녀였지만 점장이의 눈빛에 왠지 모르게 기가 죽었다. 점을 보지 말까 생각했지만 호기심도 일었다.



"지는 누구랑 결혼해야 되남유?"



술과 여자에 빠져사는 미운 아버지를 생각하며 결혼 따위 하지 않아도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는 득무였다. 그녀의 어머니도 혼기가 다 된 득무의 결혼을 딱히 서두르지 않았다. 그러나 앞서 동무들이 물은 질문이라 저도 그렇게 말이 나와 버렸다. 점장이는 득무를 가만히 쳐다보더니 입술을 실룩거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너는 재가한 사람을 만나는 게 낫겠다. "



재가? 득무의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버지도 두 집 살림해서 우리 속을 새까맣게 태우는데 서방마저 재가한 사람을 만나라니. 득무는 화가 나 복채 이십 전 중 십전만 테이블 위에 소리 나게 내려두고 일어나 점집 밖으로 나와 버렸다. 그리고는 신작로가 있는 곳으로 재빠른 걸음을 걸었다. 공장에서 함께 걸어온 동무들은 어안이 벙벙하여 득무의 뒷모습을 바라만 보고 서 있었다. 득무는 속으로 되뇌었다.


'내 죽어도 재취 자리는 안 갈 거야. 그깟 결혼 안 했으면 안 했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고추잠자리가 그녀의 주변을 맴돌았다. 긴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모양이었다. 득무는 고추잠자리가 포문을 그리며 자유롭게 떠도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해방이 되었어도 여전히 먹고살기는 힘들고 삶의 모양은 달라진 것이 별반 없다. 여전히 아버지는 첩과 그녀의 자식의 집에서 돌아오지 않았고, 세 모녀는 먹고살기 위하여 하루 종일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세상이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 득무는 동무들처럼 돌팔이 점장이에게 하루 일당 이십 전을 몽땅 다 주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득무의 얼굴에 저도 모르게 쓰윽 미소가 감돈다.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이십 리를 걸어 언니들과 엄마가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향한다. 씩씩한 걸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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