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오오오 그것은 인생!
내 인생을 매일매일 기념일로 만들겠다고 선포한 것이 바로 어제였다.(https://brunch.co.kr/@likeslow/123) 마침 아이폰 미니의 작은 화면으로 어렵게 읽고 있던 에밀리 헨리의 로맨스 소설 Happy Face를 큰 맘먹고 쿠팡에서 페이퍼백으로 주문을 한 터였다. 아침에 소영 선생님과(위아소영) 운동을 가볍게 하고, 오늘 하루를 핑크 핑크하게 로맨스 소설의 날로 만들 마음의 준비를 하며 현관문을 연다.
떡하니 예쁘게 놓여있는 택배상자가 나를 반긴다. 양장본도 아니고 가벼운 페이퍼백인데 상자에까지 넣어 배송을 해 주다니. 상자를 드는데 약간 묵직하다.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밖이 추워 얼른 상자를 들고 안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상자를 열었다. 진한 핑크빛 표지의 HAPPY PLACE 제목이 보여야 할 곳에 이상한 양념통 세 개가 나란히 누워있다.
아, 역시나 인생은 계획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인생은 부메랑 같은 것이 아니어서 부르는 대로, 던지는 대로, 기대대로 딱 그만큼 돌아오는 일은 없나 보다. 가끔 배달이 늦게 오거나, 품절이 되어 물품을 구매할 수 없는 상황이 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전혀 엉뚱한 물건이 담겨온 일은 처음이다. 그런데 하필 호기롭게 내가 오늘을 '로맨틱 소설의 날'로 명명한 날에 양념통이 그것도 세 개나 도착하는 일이 벌어지다니 무슨 장난인가 싶다.
종이로 된 소설을 손끝으로 느끼며 읽어갈 시간을 고대하고 있었던 터라 실망감 썰물처럼 덮쳐온다. 오늘을 위해 영어 단어를 정리할 작은 공책까지 새로 마련했기에 아쉬움은 더 컸다.
그리고 이어진 하루. 종일 계속해서 계획은 어긋나고 틀어졌다. 아이 학원, 돌봄 교실, 회사, 마트, 길거리를 얼마나 왔다 갔다 했는지 모르겠다. 그 사이 진은 빠졌다. 핑크빛이어야 할 오늘 하루였는데, 내 기분은 정 반대의 길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를 비웃듯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것들을 마구 투척하는 내 인생. 마치 운석이 우주 공간 사이로 빠르게 지나가며 여러 변화구들을 던져내고 나는 그 사이를 피해 어떻게든 목적지에 도착해야 하는 기분이 되었다.
그런데 인생에 목적지라는 게 있기는 있을까. 매일의 삶의 변화를 파도 타듯 유연하게 넘기는 것도 잘하지 못하면서, 거창하게 목적지를 논할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종래에는 우리 모두 다 같은 곳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찡긋.)
그러니 피하지 말고 잘 받아내 볼까. 아이가 애지중지하던 가짜 플라스틱 보석들이 생각난다. 아이는 이 플라스틱 조각들이 정말 진귀한 보물이라도 된 듯 대하고 있다. 귀한 보물이라도 발견하길 기대한 내 인생, 실상 나에게 날아오는 것들이 때로는 가짜 플라스틱 조각 같은 것이더라도, 아이처럼 귀하고 예쁘게 기분 좋게 보석함에 넣어둬 볼까.
잘못 도착한 양념통에 반품 버튼을 누르고, 다른 서점 앱에 들어가 HAPPY PLACE 제목을 쳐 본다. 아침 7시 전에 받아볼 수 있으며 게다가 쿠폰과 적립금까지 쓸 수 있어서, 실 결제금액은 만원도 되지 않는다. 오잉? 어제 주문할 때는 만 삼천 원이 조금 넘는 금액이었는데! 아싸!
아까의 아쉬움과 실망감이 다시금 약간의 러키비키의 순간으로, 오히려 좋아~! 의 기분으로 변해버린다. 아, 참 습자지 같이 간사한 사람의 마음. 다르게 말하자면, 다가오는 변화구를 어떻게 받아내느냐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바꿔볼 수 있는 내 인생. 오늘을 로맨틱 소설의 날이라고 부르기는 뭐 하지만, 적어도 오늘은 HAPPY PLACE의 날이라고는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20250210)
ps: 내일은 따뜻한 물의 날이었던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일어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