씩씩한 당신
61년, 한국은 쿠데타로 군사 정변이 일어났다. 그리고 63년에는 군사 정변을 일으켰던 사람이 정식으로 대통령이 되었다. 항간에는 그도 한 때 남로당원이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먹고살기가 편해졌다는 사람들이 있었고, 이유도 없이 이유가 생겨 뜻하지 않은 죽음을 맞이하거나 그 죽음들을 견뎌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 가운데 남로당원 전력이 있거나 북한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쉬이 잡혀갔고 가족들은 감시와 멸시, 연좌제로 계속 고통받았다.
그러나 재원은 공산당 전력이 있었음에도 구금을 당하지 않고 곧 풀려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대서소 사업도 예전처럼 이어나갔다. 심지어 그의 아들 영철은 공고를 졸업한 후 바로 해양수산부 공무원에 채용되기도 했다. 화영은 그 사실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는 빛바랜 영철의 일기들을 읽어나가며 퍼즐 조각을 맞추어 보려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어스름이 끼는 새벽녘. 득무는 부산 중구 경찰서 앞에 다다랐다. 부산의 겨울은 평택만큼 혹독하지가 않았다. 득무만 외투와 양말도 없이 맨발에 고무신 차림으로 서성이다 보니 사람들은 그녀를 한 번씩 쳐다보고 지나간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만 재원을 빨리 구해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경찰서 마당 한 켠에서는 형사 몇 명이 담배를 태우고 있다. 득무는 어제 만났던 얼굴이 있는지 찬찬히 그들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옷차림은 다 비슷했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다. 득무는 다짜고짜 그들에게 명륜동에서 대서소를 하는 이가 안에 있는데 어떻게 되었는지 아느냐고 소리 질러 묻는다. 그중 나이가 많은 형사가 고개를 돌려 경찰서 울타리 밖 득무에게 고함치듯 말한다.
“아지매예. 날도 찹은데 집에 가시이소. 요새 같은 시상에 함 드가면 언제 나올지 모릅니데이.”
“즈이 집 아저씨는 죄가 없어유. 암것두 몰라유!”
“아이고 마. 좀 기다리시소. 그 메칠 남편 없으면 몬 사는교?”
담배를 피우던 이들이 와하하 웃는다. 그 말에 득무는 입술을 깨물며 혼잣말을 했다. ‘통사정을 모르니까 왔지. 알면 안 온당께!’ 그리고는 씩씩하게 소매 끝으로 코를 훔친다. 더럽고 치사하지만 어쩌나. 형사들에게 식사 값에 보태 쓰라고 찔러 줄 요량으로 허리춤에서 아껴두었던 오백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낸다. 그때였다.
“저기유. 아줌니…”
조용하고 부드러운 목소리. 부산 사투리가 아니다. 말끝이 둥근 정겨운 말투. 고향의 말이었다. 이곳에서 그녀를 그런 목소리와 억양으로 부를 사람은 남편 이외에는 없었다. 돌아본 득무의 눈 앞에 그녀보다 두 배나 되어 보이는 키 큰 청년이 서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다.
“저에유.”
득무는 눈을 의심했다. 그녀의 앞에는 인민위원회로 끌려가 주영과 함께 죽은 줄 알았던 채훈이 멀쩡하게 살아 서 있다. 득무는 입을 떼지 못한다. 눈물이 왈칵 쏟아짐과 동시에 소리를 지르고 싶지만 말이 나오지 않는다.
“어… 어떻게 니가…!”
채훈은 눈에 눈물이 그렁한 채로 말한다.
“그 날밤 재원 아저씨가 몰래 저를 풀어 주셨어유.”
그날이라면, 재원이 주영의 시신을 들춰 업고 온 날을 말하는 것일까. 관도 없이 뒷산에 그 아이를 묻고 내려오며, 대한 청년회로 활동했던 전력이 있었던 채훈은 이미 즉결 처분으로 매장되었겠구나 생각을 했던 득무였다. 채훈의 얼굴에서 그와 꼭 같은 이목구비를 한 주영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래서 그날 재원은 그렇게도 서둘러 평택을 빠져나와야 했구나. 이제야 알겠다. 북에서 오는 트럭을 피하려고 그랬던 게 아니었구나. 득무는 채훈의 손을 놓을 줄을 모른다.
“아짐니랑 아저씨가 부산으로 오실 거라 믿고 꼭 있었어유. 매일 기다리고 있었...”
채훈도 말을 다 잇지 못하고 눈물을 훔친다. 득무 역시 뒷산에 봉분도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묻은 주영이 생각나 다시 울음이 터진다. 한참을 울던 득무는 채훈의 손을 잡고 말한다.
“우리 집에 가자. 밥 해줄게. 그리고 다시 내 여기 오면 되니께.”
“아짐니 아저씨 찾으러 오셨쥬? 여기 잠깐만 계세유! 꼭 계셔야 돼유!"
채훈은 득무의 두 손을 놓고 중부경찰서 앞마당으로 재빨리 뛰어 들어갔다. 경찰서를 마음대로 들어서는 모습에 득무의 어안이 벙벙해진다. 정신을 차려보니 채훈은 벌써 경찰서 유리문 안 쪽으로 사라졌다.
그날 저녁 재원은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이틀간 제대로 밥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고, 씻지도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그에게서는 예전의 하얀 박꽃과 같은 안광과 생기가 그에게 느껴졌다. 득무는 두부를 사다 뜨끈하게 덥혀 주고, 물을 끓여 목욕물을 만들었다. 식구들이 잠에 들고 난 이후 적막이 그들을 감쌌다. 재원이 드디어 입을 뗐다. 그의 말에 따르면 채훈은 피란 이후 대한청년회 활동이 인정되어, 특채로 경찰이 되었다고 했다.
평택 사람 이봉춘 말처럼 오산 사람 윤 씨가 재원을 밀고했다고 했다. 재원이 경찰서로 끌려왔을 때 채훈은 그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의 동료들과 선배 형사들은 어떻게 그가 평택에서 도망쳐 살아남았는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 덕에 재원은 갑자기 빨갱이에서 영웅으로 변모했고, 그의 심문은 곧 끝이 났다.
“… 세상 사 알 수 없네.”
득무는 주영의 까맣게 탄 해사한 얼굴을 떠올렸다. 평택에서의 기억이 전생과도 같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주영과 명자 그리고 고모의 봉분도 세우지 못한 묘. 어서 돌아가 정비를 해주어야 할 텐데. 그 자리를 알아나 볼 수 있으려나.
“쩌기. 평택으로 갈 날이 을매 안 남았을지도 모르것시유?”
득무는 낮게 읊조린다. 그 소리에 재원이 낮게 한숨을 쉰다. 역시 아직 일까. 들리는 얘기에 따르면 재원의 땅을 이미 친척들이 다 차지했다고 한다. 돌아간다고 한들 그 사람들이 재원에게 얼마나 우호적인 말과 행동을 보일 것인가.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고 혀를 끌끌 차는 시모의 말도 생각난다.
“…그럼 우리는 여그 쭉 사는 거 여유?”
득무가 묻자 재원은 스르르 등을 돌려 누웠다. 화물차가 지나갔다. 집이 울렸다. 득무는 자신을 흔드는 것이 화물차인지 제 울음인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득무는 피란 이후 1950년부터 2025년까지 75년간 부산에서 살다 생을 마감했다. 그 기간 동안 간간히 형사들이 재원과 득무를 찾아오긴 하였다. 그러나 그때마다 그들은 채훈과의 인연을 강조했고, 가끔씩 얼마간을 형사들에게 찔러 넣어주며 위기를 무마했다.
결국 재원은 1980년대 초반 대서소를 접고 구두 수선을 시작한다. 그 시기 첫째 형철은 알코올중독이 심해져 건강이 악화되었으나 간간히 공장에서 일을 해 나갔고 영철의 주선으로 결혼까지 해 아들을 얻었다. 영철은 잠시 공무원을 하다 제법 평범한 회사원이 되었고, 창철은 빵공장에서 일하다 기계에 손이 말려 지체 장애인이 되었다. 고명딸 정희는 집이 싫다며 고등학교 졸업 이후 여군에 입대했다 몇 년 뒤 서울로 시집을 갔고, 상철은 조리사로 호텔에 취업했다 노동조합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해고되어 평생 다시 정식으로 직장 생활은 하지 않았다.
재원은 90년대 초반 풍을 겪고는 폐렴이 악화되어 칠십 대 초반에 죽음을 맞이했다. 그보다 더 일찍 세상과 이별한 사람은 형철이었다. 열차로 다리를 하나 잃은 그는 아들과 부인을 남기고 알코올 중독으로 길에서 세상을 마감했다. 고명딸 정희는 득무가 세상을 떠나기 일 년 전 유명을 달리했다.
득무는 평생 고향을 그리워했으나 결국 그곳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자신의 운명을 탓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 앞에 주어진 삶의 우여곡절들을 순전히 받아들였다. 아이들이 전국 각지로 흩어진 이후에도 그녀는 창철과 함께 부산에 남아 하루하루를 씩씩하게 살아냈다.
그녀는 해방 이후 지금 까지 유신 헌법 기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열여섯 번의 대통령 선거에 모두 참여했다. 울적할 때에는 근처 게르마늄 장판을 판매하는 다단계 클럽에서 주최하는 노래 모임에 나가 신나게 음악을 즐기며 사람들을 만났다. 70세가 넘어서 고관절 수술을 받을 때에도 그녀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견뎠다.
자식들은 그녀를 사랑하기도 했고 지독히 미워하기도 했다. 자존심이 강한 정희가 그녀에게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 어렵사리 돈을 빌려달라고 했을 때 “니 일은 니가 알아서 하라.”는 말을 하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기도 했다. 그렇게 그녀는 사랑을 주고받는 방법에 대해 죽는 날까지 능숙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80세가 넘어서도 부산의 낡은 집을 지키고, 창철의 뒷바라지를 할 때에도 그녀는 늘 주어진 삶 안에서 희망을 찾으려 노력했다. 씩씩하게 밥을 하고, 집안을 정돈하고, 주변과 관계를 이어나갔다. 이후 막내 상철이 강제로 그녀를 요양 병원에 입원시켰을 때에도 그녀는 또 한 번 주어진 삶에 적응하려 애썼다. 첫째 며느리 강화는 여전히 그녀를 면회하러 갔을 때의 추억을 떠올린다. 면회 때마다 득무는 우는 소리 한 번을 하지 않고 ‘문제없다. 편하고 좋다.’란 말을 하며 덤덤히 병원 생활을 이어나갔던 것이다.
그렇게 득무는 1928년부터 2025년까지 총 97년의 생을 이어나간 뒤 단단한 인공고관절 조각을 세상에 남긴 채 삶의 끝을 맞이했다. 마지막 순간 그녀는 혼자였으나 씩씩했다.
화영은 천불사 앞마당에 차를 댔다. 작년과 꼭 같이 예쁜 봄꽃이 마당에 예쁘게 피어있었다. 납골당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희미한 향냄새 느껴지고 목탁 소리가 들려온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납골당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꺼?”
지난번 납골당 자리를 팔았던 사람과는 다른 여자 직원이 화영을 맞이한다.
“… 아네. 저기. 저희 할머니 유골함을 가져가고 싶어서요.”
“예?”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싶어 찾아왔어요.”
“아 그래예? 저희가 환불은 안 해드리는 데, 괜찮겠십니꺼?”
“네.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차를 운전하는 화영의 옆자리에 유골함이 보자기에 싸여 놓여있다. 핸드폰이 울린다.
“어 엄마. 응. 잘 모시고 나왔어. 상철 삼촌은 내가 돈을 내면 평택 납골당으로 유골함을 옮기든 집으로 모시든 상관없다나 봐. 응. 지금 서평택 IC 근처야. 응 조금 있다 봐.”
화영의 차가 빠르게 서평택 ic를 빠져나온다. 봄볕의 햇살이 차 안을 따스히 비춘다. 화영은 조용히 유골함 위로 손을 올려본다. 유골함 옆으로 ‘씩씩한 당신’이란 제목으로 묶은 원고 뭉치가 보인다. 그녀는 유골함에 손을 올리며 조용히 혼잣말을 한다.
“할머니 이제 다 왔어요. 할머니 고향.”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