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이야기
-이영-
느껴진다. 내 몸 구석구석 숨어있는 근육들까지 살아있고 싶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것이. 하지만 나는 또 알고 있다. 내 뇌는 그 소리 없는 외침들을 깔끔히 무시할 수 있으며 지금도 여전히 부단히도 애쓰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뇌의 외침을 깡그리 무시했다. 네가 나에게 주는 고통이 에베레스트만큼 클지라도 나는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내 소리 없는 몸부림은 움직이지도 않는 팔을 한껏 뻗어 재껴 침대 옆 사이드 테이블로 옮겼다. 그리고 마침내 오영이 남기고 간 노트를 집어내고야 말았다.
“그래, 아직까진 내가 이겼다.” 너무 기뻐서 기어코 집어낸 노트를 떨어뜨릴 뻔해서 간이 다시 콩알만 해졌다. 순간 심장이 갈비뼈를 헤치고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두근대는 심장 박동을 오롯이 느끼는 기쁨을 만끽하며 오영의 필체가 빼곡히 적혀있는 노트를 펼쳤다.
[만약에 우리가 그날 이스트 우드로 가지 않았다면,
만약에 우리가 길 맞은편에서 서로를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아니, 네가 호주에 오지 않았더라면,
아니, 그보다 더 내가 한국에서 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괜찮았을까?
미안해. 네가 나의 하나뿐인 언니라고, 친자매라고 진작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
우리에게 주어졌던 날들이 이렇게 빛나는 시간이었는지 몰랐어.
차라리 빨리 말하고 너와 자매의 삶을 조금 더 일찍부터 누렸으면 이 후회가 남지 않았을 텐데……
너를 조금 더 일찍 언니라고 불렀으면,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들은 더 신이 나고 눈부셨겠지? 그리고 아마도 너와 나는 서로를 더 깊이 바라볼 수 있지 않았을까?
너를 더 많이 알고 싶었어. 이영.
할 수 있다면 나도 모르는 깊은 내면의 나를 보여주고 싶었어. 네게.
우리에게 그런 날이 과연 허락될 수 있을까?
네가 더 이상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나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아. 내가 기억해 줄게. 내가 네 손을 잡고 한 걸음씩 같이 걸으면서 이야기해 줄게. 너에게 들려주지 못했던 내 지난 시간들, 너와 했으면 좋았을 어쩌면 사라질 꿈들, 어쩌면 아무도 모르는 내 치졸한 속내까지도 말해 줄게.
그러니 약속해. 이영. 부디 천천히 가자. 느릿느릿 이보다도 더 느릴 수 없게 천천히 말이야.]
이제는 눈물도 나지 않는다. 오영이 이미 내 마음을, 내 결정을 알고 있는 걸까?
일 년 전 자동차 사고가 났다. 뇌출혈 때문에 찍었던 CT는 나를 절망의 급행열차에 태워버렸다. 뇌암. 그것도 악성으로 4기가 넘어가고 있다고 했다. 그동안 간혹 있었던 두통밖에는 아무런 증상이 없었기에 내 이야기가 아닌 줄 알았다. 급하게 수술을 잡아서 큰 종양을 떼어 냈지만 내 뇌는 이미 고속도로에 진입한 듯이 빠른 속도로 재발했다. 늘어나는 암세포는 아무리 강력한 항암제라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내 몸이 이렇게 암세포에게 최적화된 몸이라는 사실이 너무 놀랍고 두려웠다.
아직 서른 살 생일도 맞이하지 못했는데…… 이제 슬슬 닉을 닮은 아이들을 낳고 싶어 희망찬 계획을 세우는 중이었는데…… 신은 내 희망을 땅바닥으로 내팽개쳐 짓밟아버렸다.
수술도 항암 치료도 암세포를 무찌르지 못했다. 의사는 내게 몇 달 남지 않았으니 요양원으로 들어가는 것을 제안했지만 나는 환자로 남아 죽고 싶지 않았다. 죽는 날까지 사람처럼 집에서 지내고 싶었다. 하지만 응급실로 오는 횟수가 점점 잦아지는 바람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기억이 더 많이 흐려지기 전에 닉에게 부탁했다. 엔딩 파티를 하고 싶다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내가 한국으로 갈 순 없으니 가족들과 정말 친한 친구 두 명만 나를 보러 비행기를 탔다.
“이영. 그거 알아? 너와 함께 있는 순간마다 삶이 빛났어.”
“네가 떠나도 내가 기억할게. 삶의 한 줄기를 함께 할 수 있어서 고마웠다.”
“신이 너를 평안한 곳으로 인도 할 거야.”
“네가 스쳐 간 모든 순간, 모든 날을 잊지 못할 거야.”
“더 이상 아프지 않길 기도할게. 이영.”
“신의 가호가 있기를……”
“네가 그 매운 하바네로 나초를 먹고 눈물을 줄줄 흘리던 모습. 나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너 천국에서도 매운 거 먹겠다고 무모한 도전 하는 거 아니지?”
카멜론은 내 엔딩 파티에서조차 나를 웃겼다. 그를 만나서 나는 정말 많이 웃었다. 어쩌면 닉보다도 더 나를 깔깔대며 배꼽을 잡게 만드는 사람이 카멜론이었다. 눈을 감는 순간에 카멜론이 생각난다면 나도 모르게 깔깔거리며 집 나간 배꼽을 찾을지도 모르겠다. 이 순간 그가 나와 함께라는 사실이 더없이 감사했다.
엔딩 파티에서 누군가 내게 물었다. 무엇이 가장 아쉽냐고.
무엇이 가장 아쉽냐고? 하……. 이걸 어디서부터 대답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어린 나와 오영을 남겨두고 집을 나가야 했던 친모의 결정이 아쉬울까? 놀랍도록 돈을 벌어오지 못하는 아빠의 재능이 아쉬울까? 닉을 좋아하는 오영의 마음을 모른 척했던 내 과거의 행동은 아쉽나? 진작 발견하지 못한 내 아픈 뇌는 얼마나 아쉬운 걸까? 아직 삶을 마감하기엔 너무나도 아쉬운 나이에 사랑하는 이들과 맞이해야 하는 이별 파티 자체가 아쉬움의 총망라가 아닐까? 이보다 더 무엇이 아쉽다고 나는 얘기할 수 있을까?
나는 대답했다.
“아쉽지 않습니다. 아쉬운 건 하나도 없어요. 그저 삶은 그렇게 흘러갔고, 나는 내가 갈 수 있는 길을 걸었을 뿐이니까요. 해보지 못한, 이루지 못한 바램만 가득할 뿐이죠.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인생을 되돌아보니, 화창했던 날도, 지치고 흐렸던 날도, 지워버리고 싶었던 날들도 모두 내 흔적이 남아 있는 날 들이더라고요. 여러분들께도 제게도 차갑게 식어버린 아쉬움보다는 미지근하고 뭉근하게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날들로 기억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제 삶 속에 들어오시고 또 추억의 한 페이지를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여러분들을 만났던 날 들이어서 아쉬움을 남기지 않고 안녕을 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닉과 함께 엔딩 파티를 준비하면서 결심했다.
내 마지막 날은 내가 결정하겠노라고. 내 몸속에 존재하는 장기들이 서서히 기능을 잃어가기 시작한다면 내 죽음은 분명 되돌릴 수 없는 직행열차를 탄 것이다. 나는 의존하며 버텨야 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지 않았다. 더 나아지지 않을 거라면 아직 나로서 존재하고 있을 때 삶에 안녕을 고하고 싶었다. 문제는 이 결정을 닉과 오영에게 어떻게 해야 내 마음을 그대로 잘 전달할 수 있는가였다.
내 결정을 닉에게 말한 날, 그의 표정에는 수많은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내게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차분히 그리고 지그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내 마음을 이해하고 있다는 그의 마음이 담겨 있음을 나는 알 수 있었다. 눈물이 차올라 반짝거리는 그의 눈빛을 나도 한없이 응시하며 울었다. 그에게 사랑했던 마음만을 남겨 놓고 싶었다. 아픈 모습만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그가 기억하는 마지막 내 모습은 웃고 있는 모습이었으면 했다. 나는 행복했으니 그가 나를 편안히 잘 보내주었으면 했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즐거운 삶을 살아갔으면 했다. 닉은 내 마음을 이해해주었고, 나를 묵묵히 지원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훗날, 내 결정을 인정해 준 그가 한동안 내 죽음에 동조했다는 죄책감 속에서 헤매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닉을 생각하는 마음을 뒤로 하고 지난주에 있었던 엔딩 파티를 생각하니 점점 마음이 차분해졌다. 이제는 오영에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알고 있었다. 더 늦기 전에 그녀에게 알려야만 한다.
[……우리가 자매로 자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어. 물론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인생을 살았을 수도, 아닐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나는 늦게라도 너와 친구로 살 수 있었기에 더 감사했어. 어차피 자신 외에는 모두 타인이잖아. 내가 아는 타인 중에 너와 가장 가까이 삶을 맞대고 있었던 것 같아. 그 시간들은 내게 세상 모든 것과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해. 너를 만나고 나서야 내 인생은 제대로 된 길을 찾아갈 수 있었어. 나는 알아. 네가 함께여서 가능했다는 걸.
고마워. 오영. 나를 찾아줘서 고맙고, 내 인생에 애써 들어와 줘서 고마워.
아쉬움이 남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수많은 모래알 같은 아쉬움을 덮고도 남을 만큼 너로 인해 내 세상은 풍성하고 따뜻했어.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이 있지? 내 마음은 ‘지금이야.’라고 말하고 있어.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기억해줄 때, 그 모습을 남겨두고 떠나고 싶은 거야. 의존하는 삶이 아닌 나로서 살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나는 연명으로 내 삶을 고통 속에 방임하고 싶지 않아. 죽음을 기다리지 않고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있을 때, 내가 스스로 삶에 안녕을 고할 거야. 너무 슬퍼하지만은 않았으면 좋겠어. 어차피 죽음으로 향하는 여정이었고, 그것을 조금 더 내 의식이 있을 때 결정할 뿐이야. 적어도 너만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과연 내 생각이 맞을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말이야.
고마워, 오영. 우리가 다음 생에 만날 수 있다면, 그때는 꼭 다시 자매로 태어나자. 원수처럼 죽일 듯이 치고받고 싸우더라도 너와 함께라면 더없이 재미있을 거야.
우리 꼭 다시 만나자. 오영.]
오영에게 편지를 다 쓰고 나니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창밖에 오렌지빛 노을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마치 나에게 수고했다고 말하는 것처럼 하늘은 내게 환희의 빛을 선물해주고 있었다.
노을의 끝에 그녀가 있었다.
이영이 퇴원하는 날은 날이 화창했다. 얼른 집에 가고 싶은 이영의 마음을 아는지 햇살이 그녀가 머물고 있던 병실 창가에서 문까지 마법 같이 반짝거리는 골든 카펫을 깔았다. 반짝거리는 햇살이 만들어 낸 길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영은 나직이 속삭였다.
“햇살 너무 좋다. 따뜻하고 행복해. 집에 도착해도 여전히 네가 있었으면 좋겠어. 그럼 더 편안할 것 같아.”
닉은 이영을 태울 휠체어를 병실 안으로 넣어 놓으며 그녀를 보았다.
“잠깐 의사 선생님 만나고 올게. 햇볕이 따뜻하니까 그때까지 잠시만 햇살 쬐고 있어.”
이영은 한껏 미소를 짓고 싶었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겨우 입꼬리를 살짝 끌어 올리며 닉을 향해 웃어 보였다.
닉은 병실을 나와 의사가 있는 방으로 가려고 몸을 돌렸다. 이때 저 하얀 복도 끝에서 이영의 담당 의사가 걸어오고 있었다. 닉이 살짝 미소 지으며 인사했다. 어느새 닉 앞에 다다른 의사가 그에게 물었다.
“퇴원 준비는 다 되셨습니까?”
“네. 휠체어는 약속된 날짜에 반납하겠습니다. 양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것 아닙니다. 신경 쓰지 마시고 마음 잘 추스르시고 후에 반납해주셔도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이영씨 동생분은 여전하십니까?”
“아…… 네. 이제는 시간도 얼마 안 남았으니 아내의 마음이 편하다면, 저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이 보고 싶어 했거든요.”
“알고 있습니다. 케어 담당자도 가장 많이 마음 쓰며 걱정했던 부분이었는데 이 상황이 더 아내분을 위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네. 아내가 정말 힘들어했었습니다. 하지만 잘 극복했다고 생각했어요. 자기를 만나러 동생이 왔는데 눈앞에서 동생이 사고를 당했으니까요. 제 소중한 친구였고, 아내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친구이자 잃어버렸다가 찾은 유일한 혈육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아주 힘든 이별이었어요.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을 만큼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머리가 쪼개지는 것 같은 두통이 있다고 해서 며칠 동안 진통제를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였군요.”
“네. 아내가 그때부터 죽은 동생이 보인다고 했습니다. 동생이 살아 돌아온 것이 아니라, 그 사고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하고 행동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오게 되셨고요.”
“네. 그때 검사를 하고 선생님께서 발견해 주신 겁니다. 그리고 결국…… 이렇게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너무 슬퍼하거나 걱정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NSW주에서 자발적 안락사가 시행된 후로 정말 많은 환자들이 고통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결국에는 슬퍼하거나 반대하던 가족들도 빠르게 평안을 찾았습니다. 무엇보다 이영씨 스스로가 내린 결정이니까요. 매일매일 희망없이 펼쳐지는 지옥에서 이영씨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모르핀 같은 진통제도 고통을 아주 살짝만 낮출 뿐 지옥을 벗어나게 하지는 못하니까요.”
“네……. 알지만 지켜보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이영을 위해 온 가족들이 조금이라도 더 담담해지려 애쓰고 있습니다.”
“잘하고 계십니다. 이 봉투에 넣은 약에 대한 사용법은 안에 모두 정리되어 들어 있습니다. 집에 도착하시고 마음의 준비가 되면 이영씨에게 전해주세요. 이영씨가 약을 먹길 원치 않으면 언제든지 중단하셔도 됩니다. 주의하실 사항은 이 약을 NSW주 밖으로 가지고 나가시거나, 이영씨가 NSW 밖에서 복용하셔도 안 됩니다. 언제든 어디서든 가능하지만, 반드시 NSW주 안에 계셔야 합니다. 이영씨가 이 약을 먹은 후에 우리 병원으로 연락해 주시면 다음 절차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닉은 묵묵히 담당 의사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후 병실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그곳에 이영이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 휠체어에 앉은 채로 등을 돌리고 창밖에 햇살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윈 이영의 몸 위로 반짝거리는 따뜻한 햇살들이 마치 웬디가 뿌리는 요정 가루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닉은 생각했다. 이영이 이대로 훨훨 네버랜드로 날아가 피터팬을 만나고 벌써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오영을 만나지는 않을까?
이영은 잠이 든 것 같았다. 닉은 조심스레 이영을 향해 걸어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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