씩씩한 당신 (11)

시간의 계절

by 여름타자기

11. 시간의 계절


득무는 52년부터 56년까지 영철, 창철, 정희 그리고 막내 상철까지 네 명의 자식을 부산에서 연년생으로 낳았다. 그들은 이복 형인 형철과 잘 지냈다. 형철은 지독하게 득무를 사랑하고 또 증오했다. 내리사랑을 받아본 적 없는 득무는 형철이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어느 겨울날 득무는 시장에서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갑자기 기찻길 쪽에서 사람들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보니 기찻길에서 아이 하나가 혼자 놀다 화물차에 다리가 잘렸다고 했다.







“우리 형이 제대로 된 목발을 스물여섯인가에 겨우 했어.”


회한에 잠긴 표정의 영철이 화영이 주는 딸기를 받아먹으며 말한다. 화영은 한 손에는 영철의 오래된 일기장을 들고 계속해서 질문을 한다.


“왜?”

“그때는 돈도 없고, 제대로 된 목발 집도 없고. 전쟁 중에 그런 걸 어데서 구하노.”

“큰아버지도 큰 아버지지만… 할머니가 너무 놀라셨겠다.”

“뭐 어무이는 씩씩하시니까 티는 많이 안 냈어. 근데 형이 늦게 오고 그러면 골목에 맨날 가서 서 있었지. 오르막이었으니까. 내가 군대 가서 월급 탄 거 한 푼도 안 쓰고 다 모아서 휴가 때 제일 첫 번으로 한 일이 형님 제대로 된 목발 맞춰준 거라.”


영철은 잠시 말을 멈추고 물을 마신다. 그리고는 한숨을 내쉰다.


“나는 형님을 참 사랑했어.”

“... 어떻게 돌아가셨어?”

“불쌍하게. 길에서. 술 먹고. 결국엔 알코올 중독으로 돌아가셨지.”







득무는 내달렸다. 형철을 업고 병원까지 어떻게 당도해 수술을 했는지 당최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리를 다친 후 형철은 엇나가기 시작했다. 말은 더더욱 없어졌다. 형철은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공장에 나갔는데 늘 술에 진탕 취해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 형철을 보고 재원은 혀를 차면서도 차마 잔소리를 하지 못했다. 그런 형철에게 등짝이라도 때릴 수 있는 것은 득무였다.


“제대로 살아야지. 뭐하는거여. 시방!!!”


한국 전쟁이 끝나고 재원은 부둣가 일을 접었다. 전쟁 직후 나라에선 남로당원을 눈에 불을 켜고 색출해 내는 통에 동네 사람들 몇몇은 벌써 감옥행을 당했다. 부둣가에서는 고향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재원은 이름을 김용택으로 바꾸고 살았지만 이미 평택에서 온 사람들은 재원의 과거를 다 알고 눈을 감아주고 있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자신의 존재가 발각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함이 재원을 괴롭혔다. 대서소에서 일을 마치고 나면 재원은 막걸리 집에 틀어박혀 동료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것이 버릇이 되었고 그렇게 시름을 잊으려 노력했다. 때로는 형철을 만나 같이 술이 거나하게 취해 들어올 때도 있었다. 예전 사상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열띤 토론을 하던 맑은 눈의 선비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도 재원은 성실히 일하려 노력했고 작게나마 가게 터를 얻어 동사무소 근처에 자신의 대서소를 차렸다. 처음에는 장사도 잘 되었다. 기분이 좋았던 재원은 어느 날 저녁 득무에게 더 이상 시장에 장사를 하러 나가러 갈 필요가 없다고 선포했다. 평택에서 만큼 부자로 만들어주겠다고 술에 취해 큰 소리를 쳤는데 그때 득무는 그럼 평생을 부산에서 살아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허공을 향해 마구 떠들던 재원이 순간 조용해졌다. 득무도 알고 있었다. 지금 정권 하에서 평택에 돌아간다는 것은 자폭행위라는 것을 말이다. 그곳에는 재원의 과거 행적을 증명해 줄 너무나 많은 증거들이 있었다.


64년 겨울, 상득은 명륜동 방 아랫목에서 숨을 거두었다.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도 그는 평택 동리의 산과 들 그리고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논과 밭을 그리워했다. 득무는 상득의 장례를 정성껏 지냈다. 그녀 역시 충남 버들골과 동리가 그리웠다. 많던 재산이 아쉽지는 않았다. 다만 나고 자란 고향 산천으로 가 어머니와 언니들과 함께 평범한 하루를 보낼 일이 이제는 영영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슬펐다.


그러나 삶은 계속되었다. 부산의 바닷바람에 맞서 그녀는 씩씩한 걸음으로 생선을 짝으로 떼어다 시장에 팔았고 점심때마다 따뜻한 밥을 지어 재원의 대서소로 날랐다. 시장에서도 아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 부산은 얼기설기 조각보를 이어 만든 이불처럼 각지에서 사연을 안고 모여 사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어 그런지 사람들 간에 정이 끈끈하고 두터웠다. 겉과 속이 같은 사람들이 매일 자신의 속을 뒤집어가며 하루 살 힘을 벌어 매일매일 버티며 살아가는 전쟁터 아닌 전쟁터. 그러나 어떤 곳보다 생명력이 넘치는 곳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상득의 친척인 이봉춘이 득무의 좌판을 찾았다. 그는 재원의 친척으로 재원의 당원 전력이 무서워 득무에게 말조차 걸지 말라고 했던 사람이다.



“지금 얼른 재원이한테 전햐. 저짝에서 피엑스 물건 파는 윤 씨 알지? 오산사람아녀. 그치가 공산당원이었댜. 지금 막 끌려갔시야. 그 사람이 재원이를 모를 리 없을 텐데. 느그 불면 끝이여 끝!”



빠른 걸음으로 봉춘은 사라졌다. 득무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팔던 생선을 옆 사람에게 넘기고 정신없이 빠른 걸음으로 명륜동 재원의 대서소로 향했다. 가게 문은 열려있었다. 그러나 재원은 없었다. 가게 밖으로 나와 장기를 두고 있는 어르신들에게 재원의 행방을 물으니 남자 둘과 방금 어디론가 같이 나갔다고 했다. 아찔해진 득무는 근처 경찰서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혼잣말을 저도 모르게 읊조렸다.



“사나 죽으나 죽으나 사나.”



득무는 사람으로 가득한 경찰서 앞마당에서 재원의 실루엣을 찾아 헤맸다. 울고 있는 여자가 보이고 소리를 지르는 형사, 매연을 내뿜는 경찰차들로 정신이 없었다. 득무는 수첩을 끼고 지나가는 짧은 머리를 한 중년의 사내를 붙잡고 무작정 늘어진다.



“혹시…김 용택이라고… 쩌기….키가 크고 얼굴이 하얗고…명륜동에서 대서소..”



득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형사는 그녀를 아래위로 내려다보더니 건조하게 말한다.



“아. 대서소? 지금 심문 중인 거 같던데?”



그리고는 서 안으로 무리들과 함께 사라진다. 득무는 입술을 꽉 깨문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한국전쟁이 끝나고 근 십 년 동안 부산에서 정체를 감추고 살면서 하루도 맘 편할 날이 없었는데 이렇게 되어 버리는구나. 차라리 결판이 나서 빨리 얼굴 들고 편안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든다.








“얼굴을 들긴 무신 얼굴을 들어. 아범이 그냥 빨갱이도 아니고 그때 즉결 처분된 평택사람이 몇인데.”



득무의 시모 김씨는 목소리에 힘이 있고 기운이 좋던 평택 동리 시절과는 많이 달라졌다. 작년 겨울 창철은 일하던 빵공장에서 기계에 손이 말려 손 일부를 절단했다. 창철이 공부에 크게 취미가 없으니 집안 가계에 보탬이라도 되게 빵공장에라도 다니게 하라고 한 건 다름 아닌 시모였다. 창철의 사고 이후 시모 김선자의 체력은 급격하게 약해졌다. 비관적이고 우울한 말을 습관처럼 많이 하게 된 것도 사고 이후였다.



“그렇다고 해서 애들 아빠가 여기 와서 남 해코지 한 적도 없고요. 내일 경찰서에 갈꺼에유.”



시모는 자리에 돌아 눕는다. 끙 하는 소리와 함께 깊은 한숨이 방 안 전체에 퍼진다. 득무는 그런 시모를 바라보다 이불을 그녀의 어깨까지 덮어 준 후, 상을 들고 부엌으로 나온다. 마당으로 나오니 찬 공기에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떠있다. 피란길과 주영의 집으로 향하던 밤길에 보았던 꼭 같은 밝은 별들이 하늘에 반짝이고 있었다.



“꼭. 집에 돌아올겨. 그렇게 만들겨.”



득무는 씩씩하게 방 안으로 들어서 아이들에게 이불을 끌어다 덮어준다. 그리고 불을 끄고는 그녀도 잠을 청한다.









“그러면 서득무 할머니가 신문에서 할아버지 이름을 봤어?”

“그렇지. 아부지 이름이 신문에는 김 모 씨로 나왔어.”



점심으로 비빔국수를 먹는 영철의 기억력과 발음이 선명하다. 이럴 때 많이 물어야 한다는 것을 직감한 화영은 영철의 일기를 펼쳐 보이곤 한쪽을 가리키며 묻는다.



“아빠. 여기에 형사들이 집에 찾아왔다고 돼있네?”


“그래. 형사들이 자주 왔지. 한 달에 한 번은 왔어.”


“그럼 할아버지 결국 감옥 간 거야?”


“아니 이 멀쩡 하게 일하고 잘 사셨지.”


“근데 여기에 보면 할머니가 할아버지 경찰서에 찾으러 다녔다고 돼 있잖아.

아빠도 할아버지 이름 신문에서 봤다고 했고.”


“그기… 하하 참내. 기적같이 살아있었던기라.


“기적? 누가?”


“응? 뭐가?”



화영의 말에 영철은 곧 다른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화영은 영철의 일기장을 더 들여다 볼 수밖에 없다. 이제 남은 일기는 몇 장 되지 않는다. 워낙 띄엄띄엄 쓰인 일기다. 게다가 종이가 오래되어 군데군데 글을 알아볼 수 없는 곳도 있어서 이야기를 꿰어 맞추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화영은 득무의 마지막을 떠올리며 조금 더 힘을 내어보기로 한다. 그녀의 고단하고 어려웠던 그러나 씩씩하고 당당했던 삶. 무엇으로 건 간에 득무의 인생의 퍼즐을 맞춰보고 싶고 그녀의 삶을 더 알아보고 싶다. 그래서 죽음으로 끝난 한 사람의 이야기를 일기 속에, 그저 기억 속에 두고만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