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과 오영

아홉번째 이야기

by YJ Anne

-이영-


모두가 이메일과 문자, 또는 메신저로 이런저런 소식을 주고받는 세상이지만, 내 결혼 소식만큼은 손글씨로 카드에 적어서 보내고 싶었다.


‘닉을 향한 너의 마음을 알지만 미안해. 나도 어쩔 수 없었다는 걸 네가 이해해 줄 수 있을까?’


보이지도 않는 내 사과를 손끝에 애써 담았다. 오영에게 말한 적이 없으니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 자신은 오영이 알아채지 못하게 사과라도 해야 마음에 부담이 덜어질 것 같았다.


‘욕심 많고 이기적인 나를 용서해. 오영. 아니,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아. 언젠가 날 이해해 줄 수 있길……’

전할 수 없는 마음은 카드 한쪽 구석에 묻어둔 채로 본래 적어야 하는 내용을 적기 시작했다.

[……결혼식은 크리스마스이브에 할 예정이지만 공식적으로 주례사 앞에서 하는 결혼 선서는 12월 5일에 하기로 했어. 꼭 너와 카멜론이 우리 서약의 증인이 되어주었으면 좋겠어. 오후 1시, 시티 타운홀에 있는 법원에서 만날 수 있을까? 기다리고 있을게. 사랑을 담아 이영]


-오영-


이영과 닉의 결혼 소식은 전화나 이메일, 또는 문자나 메신저로 도착하지 않았다. 전화만 해도 금방 해결될 일을 이영은 늘 시간과 정성을 들였다.


아! 이영답다. 그녀의 한결같은 아날로그 사랑은 삶 여기저기서 엿볼 수 있었다. 간단히 전하면 되는 소식도 어떤 날은 엽서로, 어떤 날은 8장이 넘어가는 기나긴 편지지로, 또 어떤 날은 직접 말린 낙엽 위에 물감으로 적어서 그녀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그녀의 카드가 도착한 날은 유독 날이 화창했다. 일하다 문득 창밖을 바라보다 눈이 빠질 것 같이 뜨거운 태양을 보니 서핑이 절실했다. 갓 입사한 회사에서 업무에 적응하느라 피곤에 녹아내려 빠지려는 눈알을 부여잡고 퇴근하던 어느 날, 우편함에 꽂혀있는 노란 카드 봉투를 보았다. 개나리처럼 샛노란 봉투에는 꿀이 뚝뚝 떨어지는 연인이 되어버린 이영과 닉의 얼굴이 작은 스티커 안에 들어가서 봉투가 개봉되지 않도록 단단히 붙어 있었다.


‘너네는 여기서도 붙어 있니? 아……. 드디어 올 것이 왔네.’


사실 나는 두 사람이 진지하게 만나고 있다고 내게 알려주기 전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심지어 닉은 내 생일파티가 끝나고 이영에게 고백하고 싶은데 괜찮겠냐며 내게 물어보기까지 했으니까. 사실 그날 닉은 이영에게 대차게 거절당했다.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그 이후로 한참을 다시 친구로 지내는 듯했는데 알고 보니 이영이 거절한 후에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닉의 마음을 받아 줬다는 말을 그에게서 들었다. 씁쓸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영이니까. 건강에 좋다는 쓰디쓴 한약을 들이켜는 것처럼 축하하는 마음과 서운하고 쓸쓸한 마음이 공존했다.


‘내가 닉을 오랫동안 좋아한 것은 맞지만 짝사랑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지.’

이제 이영에게 가버린 그에게 미련이 남아있다는 건 내게 사치였다.


이영은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종료되는 시점에 한국으로 돌아가려 했었다. 닉과 만나고 있었지만 비자 문제로 그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려는 이영을 닉이 한사코 붙잡았지만 떠나려는 이영의 마음을 붙잡은 이들은 닉이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를 호주에 남아있고 싶게 만든 건 그의 부모님이었다. 닉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호주에서 태어나고 호주에서 자라셨지만 두 분은 이탈리아에 뿌리를 두고 있어서인지 이탈리아인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하셨다.


두 분은 이영을 정말 아~~~~주 많이 좋아하셨다. 나의 부모님과 워낙 친분이 있어서 한국에 대한 친밀감은 이미 충분하셨다. 닉이 이영을 부모님에게 소개한 날,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영에게 한국어로 인사를 건넸을 뿐만 아니라 식사할 때도 함께 공부하신 한국어를 아낌없이 적용하셨다. 그날뿐만이 아니었다. 거의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늘 이영을 집으로 초대하셨는데 그때마다 두 분은 유튜브에서 보고 따라 했다는 한국 요리를 선보이셨다. 어느 날은 어머니께서 갈비찜을 하셨고, 그해 이영의 생일에는 닉의 아버지가 잡채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생일에 긴 면발을 먹는 풍습이 있다는 사실도 설명하셔서 이영을 놀라게 하셨다. 두 분이 함께 깍두기를 만들어 보았다며 이영에게 선보이시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녀에게 유리병에 꼭꼭 눌러 담아 선물하신 적도 있었다.


두 분은 이영과 함께 시간을 보내시는 동안 한국어 실력이 일취월장하셨다. 두 분의 친구들은 치매 예방에 외국어 공부가 그렇게 좋다던데 어쩜 그렇게 한국어를 잘하게 되었냐며 신기해하셨다. 닉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좋은 선생님을 둬서 그런 거라며 친구들 앞에서 언제나 이영을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셨다. 이영이 좋은 사람이라고, 그녀가 있는 곳에는 기분 좋은 따뜻함이 있다고, 아들 옆에 이영이 있으니 걱정할 건 하나도 없어서 감사하다며 두 분의 입가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언젠가 이영이 나와 와인을 마시며 닉의 부모님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런 말을 했었다.

“나, 부모 복이 정말 지지리도 없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지금은 미뤄뒀던 복을 몰아서 선물 받는 느낌이야. 우리 엄마 아빠가 없었다면 닉의 부모님께서 보여주시는 마음을 이렇게 진심으로 느껴지도 못 했을 거야. 닉은 나를 보호해주고, 마음껏 웃을 수 있게 해주고, 언제나 편안하게 만들어줘. 그리고 닉에게서 나오는 모든 마음이 모두 그의 부모님을 통해서 나오고 있다는 확신이 나를 이 가족에 속하고 싶게 만들어. 마치 피할 수 없는 운명인 것처럼 말이야.”


이영은 이 가족에 속하기를 진심으로 원했다. 그래서 비자 기간이 아직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해가 가기 전에 닉과 결혼하고 싶다고, 두 사람의 결혼 서약식에 내가 증인으로 옆에 있어 줬으면 좋겠다는 부탁이 노란 봉투 속 카드에 적혀 있었다.


‘네 마음이 그렇다면 나는 마음껏 축하해 줘야지. 그게 마땅히 자매가 해야 할 일이지. 안 그래? 너와 내가 자매라는 사실을 너는 모르지만 나는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언니, 네 결혼을 축하해.’


닉과 이영은 결혼했고 우리는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두 사람 결혼하기 몇 달 전 멜번에 있는 로펌에 회계사로 입사해서 적응하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카멜론은 어릴 적부터 한결같이 좋아했던 레고에 미쳐서 소망하고 소망하던 레고 회사에 입사했다. 시드니 시티 중심가에서 근무하는 우리 중에 가장 핫한 인물이 되었다. 세나는 프라이머리 스쿨 선생님이 되었는데 아이들만 보면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그녀에게 이만큼 잘 맞는 직업이 있을 수는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닉은 치과 의사가 되었다. 그것도 어린이 치과 전문의 과정을 더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아이들은 상냥하고 잘생긴 치과 선생님을 잘 따랐다. 치과 트라우마가 있던 아이도 닉과 장난을 치다 보면 치료받는지도 모르고 진료가 끝나버린다며 부모님들의 칭찬에 입소문이 나서 대기 예약자도 넘쳐서 빈자리가 없다고 그가 뿌듯해하며 자랑했었다.

“와! 그걸 네 입으로 말하다니! 너 정말 재수 없는 거 알고 있지?” 나는 농담과 진담이 섞여 있었는데 닉은 그저 배시시 웃었다.


우리는 여전히 이영이 일하는 스시집에서 모였다. 반다나 사장님도, 손맛 이모님도 한결같이 우리를 반겨주셨다. 이 가게에서 오직 달라진 사람은 이영이었다. 이영은 정직원이 됐을 뿐만 아니라 어엿한 주주가 되었다. 반다나 사장님께서는 매년 연말 보너스 대신 회사 지분의 일부분을 이영과 이모님께 양도하셨다. 작은 가게지만 수익 구조가 탄탄한 회사였기에 우리는 이영의 진급을 손에 든 맥주와 함께 축하하며 환호했다.


두 사람이 결혼식을 올리고 2년이 조금 더 지나 부활절이 다가오는 4월이 되었다.

나는 회사에 부활절 연휴 기간에 일주일 연장 휴가를 요청했다. 정기 회계감사로 인해 추가된 엄청나게 많은 업무에 지난 크리스마스 이후로 가족들을 못 만났다. 쉼이 간절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머리를 비우고 싶었다. 더불어 이영의 영주권이 승인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기에 축하하러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오랜만에 카멜론도 세나도 함께 축하하기로 약속했다.


비행기를 타고 시드니 공항에 도착해 닉에게 도착했다고 문자를 했다.

[나 지금 비행기에서 내렸어. 어디야?]

[우리 이스트우드에서 장 보고 있어. 와서 이영 좀 말려봐. 네가 너무 오랜만에 놀러 온다고 맛있는 음식 해줘야 한다며 이미 트롤리가 가득 찼는데도 나갈 생각을 안 해. 나 좀 살려줄래?]


닉의 문자를 확인하면서 택시를 잡았다. 이스트우드라면 공항에서 시티를 바로 벗어날 수 있는 터널 덕분에 30분 정도면 금방 도착할 수 있는 동네였다.


[나 택시 탔어. 30분 정도면 도착. 도착하면 전화할게] 닉에게 답장하고 창밖을 바라보니 멜번과는 또 다른 시드니의 정경이 들어왔다. 날씨도 시드니가 더 푸근해서인지 벌써 낙엽이 지고 있는 멜번에 비해 시드니는 아직 푸르렀다.

정겨운 한글이 적혀있는 간판이 가득한 이스트우드에 도착하니 한창 번창하고 있는 한인타운에 왔다는 실감이 났다. 나는 휴대폰을 들고 닉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영이 어딨는데 네가 그렇게 마음 편히 하소연할 수 있는 거야?”

“휴……. 말도 마. 이제 다 샀나 싶어 차에 실었는데 네가 좋아하는 디저트를 안 사 왔다고 지금 다시 마트로 들어갔어. 나올 때가 됐는데 아직 안 보이네.”

“또 들어갔다고? 휴……. 그럼 내가 데리고 나오면 되겠네. 나 건너편에 있어. 보여?”

“우와~ 벌써 이스트우드에 도착했다고? 이영이 보면 방방 뛰고 난리 나겠다. 어! 너 보여. 네가 있는 곳에서 대각선 건너편에 있는 마트로 들어갔어. 잠시만 기다려봐. 곧 보일 거야.”

“알았어. 내가 가서 네가 지극히도 사.랑.하.는. 와이프 데려올게. 기다리고 있어. 곧 보자.”


나는 이영이 들어간 4층 건물을 바라보았고, 도로를 살핀 후 길을 건너려다 맞은 편에서 나를 보고 환호성을 지르며 머리 위로 손을 휘휘 젓는 이영을 발견했다. 이영의 옷차림은 가벼웠다. 노란 치마에 하늘거리는 연두색 티셔츠가 예뻤다. 이영은 닉을 만난 후 옷차림은 더 촌스러워진 것 같은데 이상하게 시간이 지날수록 눈이 부셨다.

‘칫. 둘이 진짜 너무 질투 나게 사랑하는 거 아냐?’


우리는 손가락으로 서로 있는 곳을 가리키며 움직이지 말고 거기에 있으라고, 자기가 건너가겠다는 손짓을 하며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이때 버스 한 대가 굉음을 내며 우리가 발을 내디딘 도로를 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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