씩씩한 당신

10. 기찻길 옆 작은 집

by 여름타자기

10. 기찻길 옆 작은 집





피란길, 그들이 어렵사리 탄 화물선은 대구에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재원은 지게꾼을 산다. 득무는 형철을 업고 재원은 시모를 업는다. 형철이 자꾸만 보채고 어깨를 누르며 뒤척일 때마다 무릎이 빠지고 힘이 풀린다.



‘너 자꾸 이러면 놓고 간다! 떼 부리지 말어!’



엄포를 놓고는 형철을 바닥에 내려놓는다. 그리고는 손목을 낚아채 거칠게 끌고 간다.



‘은자랑 미자 언니, 엄니도 이제 만날 날이 머지않았응께 힘내자고.’



그렇게 힘든 피란 와중에도 매일 아침 해가 뜰 때마다 득무는 새로 태어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 저녁 무렵 마른 불을 피워놓고 가을걷이가 끝난 논에 볏짚을 베고 덮고 이고 누워 잠을 청할 때에는 살아있다는 그 감각 하나에만 집중해 숙면마저 취할 수 있었다. 그것은 재원도 마찬가지였다. 전쟁이라는 커다란 고통이 목숨을 부지하는 것 이외의 자잘한 생각들은 모두 삼켜버린다. 그들은 때로는 달구지와 트럭을 얻어 타고 때로는 흙 길과 산길을 걸으며 드디어 그 해 가을 부산에 당도했다.



부산은 한자 말 풀이대로 거대한 가마솥을 엎어놓은 모습이었다. 꼬불꼬불한 산길에 다닥다닥 집들이 꼬리를 물고 지어져 있었다. 높은 곳, 낮은 곳, 해가 잘 드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 물을 긷기 쉬운 곳부터 달동네 끝까지 사람들은 대롱에 매달린 꿀벌처럼 들어차 있다.



ImageView.jpg 출처: 부산역사문화대전


그들은 당장 머물 집을 구해야만 했다. 시모는 금가락지와 얼마간의 현금을 내놓았다. 그날 저녁 허름한 방 두 칸의 기찻길 바로 옆 집을 겨우 구했다. 얼기설기 삭은 슬레이트와 곰팡이가 가득 진 벽과 어두침침한 부엌이 딸렸고 열차가 지나갈 때마다 무너질 정도로 흔들리는 집이었다. 그러나 그 마저도 전쟁 중에는 매우 양호한 보금자리였다. 그들 집 양 옆으로는 담도 없이 합판으로 바람만 적당히 막은 판잣집들이 줄지어 있다.



그곳에서 재원은 당장 일을 찾았지만 남로당원이라는 신분이 밝혀지는 순간 모든 것은 물거품으로 되돌아갈 것이었다. 전쟁 중이었고 부산까지 내려온 공산당은 즉결처분감. 부산에 전국각지의 이들이 몰려 누가 언제 재원을 알아보게 될지 몰랐다. 재원 대신 득무가 먼저 손을 걷어붙였다. 집을 구한 다음 날 시모의 쌈짓돈과 상득이 건넨 지폐를 들고 묻고 물어 자갈치 시장까지 꼬박 두 시간을 걸었다.



‘내 아는 친척이 시장에서 크게 장사를 하고 있으니까 내가 여기 왔다고 전하거라. 이봉춘이라는 분이다.’



득무는 상득이 가르쳐준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봉춘은 냉랭했다. 그는 득무에게 팔고 있는 생선 몇 마리를 손질해 건네며 싸늘하게 말했다.



‘재원이 그눔시끼가 내 평택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아는데, 걸리면 우리 가족까지 연좌제여. 이제는 납작 엎드려서 지내야 할 거야. 이제 다신 여기 오지 마쇼. 아는 체도 말고.”



그렇게 그들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부산에서 터전을 잡고 살아나가기 시작했다. 부산은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상점처럼 북적이는 곳이었다. 재원은 이름을 김용택으로 바꾸고 대서소에 취직을 했다. 득무는 낮에는 우물 가에서 물을 긷고 집안일을 한 다음 오후에는 시장에 나가 미군 부대에서 나온 물품을 팔았다. 형철은 집 근처의 기찻길에 나와 놀았다.



언젠가부터인지 형철은 충청도 말 대신 자연스럽게 부산 사투리를 쓰기 시작했다. 여전히 형택은 득무의 말을 잘 듣지 않고 동네 돌격대장 역할을 하며 득무의 속을 썩였다. 시모는 처음에는 평택 생각에 울적해 있었으나 곧 북적한 부산 살이에 적응했다. 다만 상득 만은 여전히 동리의 논과 밭을 떠올렸고 고요하고 적막하지만 단아했던 그들의 집을 죽을 때까지 그리워했다.



득무는 시장에서 일하면서 계속해서 은자와 미자 그리고 어머니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시장에서 봉춘은 늘 그녀를 모른 척했다. 어느 날이었다. 그가 득무에게 쪽지 하나를 쓱 들이밀고 사라졌다. 전화번호였다. 득무는 다방으로 가 전화를 걸었다. 김약국이었다.



“아저씨! 지금 부산에 계셔유?”

“아이고 득무야! 너 살아 있었냐?”



김약국과 득무는 반가움을 숨기지 않았다. 그의 아들 둘은 폭격으로 죽고, 딸과 부인과 함께 겨우 양산에 자리를 잡고 있다고 했다. 득무는 숨을 한번 꼴깍 넘기고는 제일 궁금한 것을 묻는다.



“저기. 우리 언니랑 어무니 어디 계신지…아셔유?”



김약국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다.



“미안하다 득무야. 내 듣기로 은자랑 미자랑 어머니 피란 오다 폭격에 그만…”



득무는 그날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속을 계속 게워낸다. 차라리 북으로 같이 올라갈걸. 강원도 쪽은 괜찮다고 했었는데. 기찻길에서 열차가 지나간다. 땅이 울린다. 재원은 그런 득무 곁에 선다. 득무는 재원을 노려본다.



“이게 다 당신 때문 이유!”

“미안하오…”



재원은 득무를 안으려 한다. 그녀는 재원의 손을 쳐냈다. 다음 날 득무는 일어나서 평소처럼 우물에서 물을 길어 채우고 밥을 하고 오후에는 시장에 좌판을 벌였다. 몸이 부서질 듯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더 놀겠다는 형철의 엉덩짝을 때려가며 끌고 들어와 밥을 먹이고 재웠다. 재원은 대서소 일이 큰돈이 되지 않아 삼일에 하루는 부두 야간작업을 하러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그해 명륜동 기찻길 옆 작은 집에서의 겨울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