씩씩한 당신 9.

2025, 봄

by 여름타자기

9. 2025, 봄



득무를 화장한 후 상철과 영철을 비롯한 식솔들은 영구차에 올라탔다. 막내 상철의 친한 장례지도사의 소개로 천불사에 유해를 안치하기로 결정이 되었다. 둘째 아들 영철의 표정은 좋지 않다. 영구차는 봄꽃이 만개한 절 마당으로 들어선다. 납골당 가운데에는 엄청난 크기의 황동 불상이 서 있다. 득무의 첫째 며느리 강화는 그 모습을 보고 뒷골이 땅긴다. 득무에게 천주교식 약식 세례인 대세 그리고 마리아라는 세례명을 준 것도 그녀다. 영구차에서 유해를 모시고 내리자마자 영철이 소리를 지른다.



“영락공원에 아버지 옆에 어머니 자리도 다 있는데, 지금 이 불상하고 목탁 소리하고 다 무슨 짓이고!”



영철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 득무의 장례식에서도 자꾸만 어머니의 죽음을 잊어 주변 사람들에게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다. 그런데 지금 기억이 어느 때보다도 또렷하게 돌아온 것 같다.



상철은 친구에게서 사례금을 나누어 받고 득무를 이곳에 안치하기로 밀어붙였기에 속이 답답해진다. 형이 지금 정신을 차릴 줄이야. 그 모습을 본 장례지도사는 천불사 입구에서 담배를 뻑뻑 피운다.



득무의 첫째 손녀 화영은 심호흡을 크게 하고는 제 아빠인 영철을 다독이기 시작한다. 영철은 흥분하여 딸마저 밀어내고 상철에게 소리를 계속 지른다. 감정적으로 흥분하면 알츠하이머의 진행 속도가 빨라지기 때문에 강화는 남편을 진정시키려 노력한다.



“이미 화장한 유골은 영락 공원에서 안 받아줘 여보. 어쩔 수 없어.”



영철의 가족이 도착하기 전 상철은 유해를 화장하기로 단단히 결심을 한 상태였다.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있는 이는 없었다. 막내인 창철은 득무의 장례식에 올 수 없는 상황이고, 유일한 득무의 딸인 영숙은 작년 세상을 떠났다. 영철마저 기억력이 성치 않다. 강화는 이곳이 천주교 납골당이라면 그나마 득무가 가는 길이 편하겠다고 생각한다. 영락공원에 묻히기 위해서는 이미 득무를 화장했기에 아버지 묘 역시 파묘하여 화장해야 한다. 추가로 이천만 원을 내서 사리탑을 사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득무의 첫 손녀딸인 화영은 기억을 잃어가는 영철이 안쓰럽다. 현실적으로 납골당에 득무의 유해를 안치하는 것 이외에 도리가 없기에, 그들은 최선을 다해 영철이 흥분을 가라앉히고 마음을 바꾸도록 노력한다. 봄 햇살이 천불사 앞마당을 예쁘게 비추고 있다. 하얀 배추흰나비가 꽃 위에 앉고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온다. 참 좋은 날이라고 강화는 생각한다. 그녀의 시어머니인 득무는 그녀의 속을 많이 썩이기도, 서운하게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삶이 어떤 혹독한 겨울을 주더라도 견디어 내고 기어이 죽음마저 언젠가는 돌아올 봄날 같은 계절로 맞이한 득무는 참 씩씩했다.



결국 영철은 고집을 꺾었다. 그들은 염불을 외우는 스님에게 절을 하고는 일제히 가이드를 따라 유해 납골당 안으로 들어선다. 아래서에서부터 천장까지 투명한 유리의 사물함같이 생긴 납골함들이 미로처럼 구획을 지어있다.



“ 눈높이에…그러니까 가장 접근성이 좋은 곳이 가격대가 있고예 구석이나 맨 아래쪽은 오셔서 고개를 숙이셔야 돼서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안 좋은 곳은 가격대가 좀 더 저렴합니더.”



마치 자동차 세일즈맨처럼 납골 자리 가격을 설명하는 가이드 뒤로 저마다의 표정을 한 상철, 강화, 영철과 그들의 두 딸 화영, 수영 그리고 상철의 두 아들 진호, 윤호가 따라간다. 화영은 그래도 할머니를 납골당에서만큼은 좋은 곳에 모셔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상철의 생각은 달랐다.



“ 뭐, 어무이가 여기에 진짜로 살아서 눕어 계신 것도 아이고, 형식적인 건데 우리가 몇 백씩 낼 돈도 없고예. 맨 아래 어떻십니꺼?”



화영의 눈에 각각의 납골함 속에 사람들의 사연이 들어선다. 어린아이의 유해가 담긴 곳에는 자동차며, 인형이 놓여있다. 천불사라 하더라도 세례명이며 묵주를 담은 납골함도 보인다. 각자의 애달픈 사연. 득무의 장례식에 온 사람들이 한 말들이 떠오른다. 구십 칠 세면 호상고. 과연 우리는 할머니를 보러 부산의 외곽 천불사까지 얼마나 자주 올 수 있을까.



짧은 가족회의 끝에 그들은 납골당 자리에는 큰돈을 쓰지 않기로 했다. 대신 소파 옆 맨 아랫자리를 선택해 방문했을 때 앉아서 할머니를 바라보기 좋은 쪽의 장소를 골랐다. 장례지도사는 아까와는 달리 싱글벙글하며 점심으로 자신이 잘 아는 중국집에 가자고 일행을 이끈다.









“엄마. 할머니 고향이 부산이야?”



득무의 짐을 정리하며 화영은 강화에게 묻는다. 강화는 득무의 말투가 부산 말씨가 아니지 않냐며 벌써 할머니 목소리를 잊은 거냐고 말한다. 화영은 득무의 목소리에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가 섞여 있다는 것을 떠올린다.



“그러네. 맞다. 할머니 육이오 때 피란 와서 부산 쭉 사신거지…”

“그렇지.”

“근데 왜 전쟁 끝나고 고향으로 안 가신 거야?”

“글쎄.”



득무가 살던 전셋집은 아직 빼지 않은 상태다. 막내 창철이 예전 이곳에 살때 쌓아둔 물건 때문에 집은 말 그대로 쓰레기 산이다. 강화는 아픈 다리를 문지르며 도저히 이 집을 딸 둘, 알츠하이머를 앓는 남편과 깨끗하게는 치울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업체를 부르기로 그들은 결정한다.



화영은 득무의 집을 돌아보며 백 년에서 딱 삼 년을 모자라게 살고 세상을 떠난 그녀의 삶 자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럽다. 사고사나 병사가 아닌 노화로 인한 죽음이기에 가족들의 충격은 덜했다. 하지만 마지막 생을 요양병원에서 혼자 죽음을 맞이한 할머니에게 자꾸만 미안한 감정이 든다. 득무의 유해를 화장하고 난 뒤 남은 그녀의 철제 인공고관절이 내었던 둔탁한 소리도 귓전에서 계속 맴돈다. 이런 게 인생일까.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 없다.



“아빠 그럼 할머니는 부산에 처음 피란 가셔서 뭘로 먹고 사셨어? 판잣집에 사신 거야? 돈은 어떻게 버셨대?”



근처 주꾸미 집에서 밥을 먹으며 화영은 영철에게 묻는다.



“한 번에 한 가지씩만 질문드려.”



강화는 화영에게 눈치를 준다. 영철은 희미해지는 기억을 비집고 예전 일을 끄집어 내려 하지만 이제는 할 말이 둥둥 떠나닐 뿐 자신의 언어로 원활하게 송출이 되지 않는다. 양쪽 모두 답답해진다. 강화가 끼어든다.



“할아버지 처음에는 대서소 하시다가, 나중에는 구두수선공 하신 건 너도 알잖아.”



모녀의 대화를 듣던 영철이 말한다.


“니 이거 봐봐라.”


그는 옆에 놓인 쇼핑백을 화영에게 건넨다.


“이거 할머니 전셋집 관련 서류 아니야?”

“내 일기다.”

“뭐?”

“남아 있데.”

“에?”



강화는 놀라 쇼핑백을 열어본다. 낡은 갱지가 묶여 만든 공책에 영철의 글이 빼곡히 쓰여있다.



“어머! 세상에.”

“여보. 근데 여기 어디지? 우리 왜 여기 와있노?”



영철은 다시 기억을 잃은 상태가 되고 만다. 강화는 영철을 안심시키고 화영은 쇼핑백 안을 들여다본다. 공책은 두어 권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나마 낡고 헤어진 부분이 많았고 글씨를 알아보기 힘든 부분도 있다. 하지만 이 낡은 일기가 할머니의 삶을 들여다볼 타임머신이 될 것만 같다. 화영은 쇼핑백을 끌어안는다. 그날 이후로 화영은 영철과 계속 득무의 삶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치즈 구멍처럼 공백이 있는 부분이 더 많았지만 영철의 희미한 기억과 불완전한 말속에서 화영은 할머니의 삶의 퍼즐을 맞추어 나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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