씩씩한 당신

8. 목숨

by 여름타자기

8. 목숨




재원이 인민위원회 담벼락에서 소리를 질러대는 주영을 마주했을 때, 인민군들은 이미 그녀를 에워싼 뒤였다.



“오빠아!!!!”




이윽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재원이 당도했을 때, 그는 주영과 눈이 마주쳤다. 주영은 반가운 얼굴이 되어 손을 흔들며 재원에게 반은 애원하고 반은 울며 악을 쓰기 시작했다. 주영과 비슷한 또래의 인민군이 등에 매었던 총을 울타리처럼 만들어 주영에게 들이댄다. 주영은 아랑곳하지 않고 온몸으로 총을 밀며 안으로 밀고 들어오려고 하고, 덕분에 실랑이가 벌어진다.



“저희 오빠 좀 살려주세유! !”



채훈이 잡혀 온 모양이었다. 경찰의 정보원인 대한청년회에 활동한 이력이 있는 채훈이 잡혀왔다면 즉결처분 감이 될 수도 있었다. 총살이었다.



“저희 오빠 그런 사람 아니여유!!! 잘 몰라 그러는거에유!!!”



주영의 애간장이 끓어오르는 소리가 운동장을 울린다. 재원이 고개를 돌려보니 구타를 심하게 당한 채훈이 동리 국민학교 마당 구석에 포박당하여 반동분자들과 함께 모여있다. 그가 생각해도 채훈이 죄가 있다면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어느 편이든 붙어먹고살 길을 잠시 찾아 헤메인 것일 뿐 그들은 반동과 먼 그저 평범하고 불쌍한 인민이었다. 하지만 재원은 목소리를 낼 수가 없다. 주영이 저렇게 온몸을 날려 안으로 들어오려고 해도 상황은 바뀔 수 없음을 재원은 알고 있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걸어 주영을 말리기 위해 그녀 쪽으로 향한다. 일단 진정을 시키자. 그리고 그다음을 생각해 보자. 그때였다.



“이 종간나년이 뭐라는기야. 반동 가족이면 같이 처벌받아야 되는 거 모르네?”



북에서 내려온 어린 인민군 하나가 주영의 머리채를 잡아챈다. 그러나 주영은 아랑곳하지 않고 바락바락 인민위원회 입구 벽을 부여잡고 안으로 들어서려 한다. 군인 몇 사람이 주영을 뒤에서 안다시피 해서 벽에 붙은 주영을 뽑듯 떼어낸다. 주영은 온몸을 벌러덩 뒤집고 손으로 자신을 잡은 군인들을 할퀴고 때린다. 그 바람에 군인 하나가 뒤로 벌렁 자빠진다. 그는 다리를 접질렸는지 일어서서 절뚝인다. 이윽고 군인은 그대로 주영의 머리를 벽에 냅다 꽂아 버린다. 사방이 조용해진다. 주영의 머리가 스르르 벽을 타고 내려온다. 곧 머리가 모래바닥에 쿵 하고 떨어진다. 피가 하얀 회벽을 타고 진득하게 흐른다. 모래 바닥에 진득하고 검은 웅덩이가 고인다. 주영은 눈은 여전히 부릅뜬 채다. 군인들은 주영을 흔들어보지만 미동이 없자 다리와 팔을 들고 재원의 곁을 지나쳐 인민위원회 마당 안으로 사라진다. 재원의 손에 들린 담뱃갑이 툭 바닥으로 떨어진다.







득무는 온몸이 땀에 절어 깨어났다. 머리만 닿으면 자고 포탄이 쏟아져도 깨지 않는 그녀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영 느낌이 좋지 않았다. 옆을 보니 누워있어야 할 재원의 자리가 비어있다. 어디로 간 것일까. 어제는 하루 종일 세간을 정리하고 북으로 갈 준비를 했다. 그러나 여전히 상득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내일이면 북으로 가는 군용 트럭이 올 것이다. 지금이 몇 시일까. 어슴프레 빛이 들어오는 것을 보니 새벽녘인 것 같다. 그때였다. 방문이 열리더니 재원이 뛰쳐 들어섰다.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었다. 밖에 비가 온 것처럼 그의 온몸이 다 젖어있다. 득무는 놀라 그에게 묻는다.




“평양 가는 트럭이 벌써 왔시유?”




재원은 대답 없이 득무의 손을 이끌고 마당 위에 멍석을 들춘다. 득무는 손으로 입을 가린다. 재원은 말없이 광에서 수레를 꺼낸다. 득무가 끅끅 거리며 울기 시작한다. 멍석 아래에 놓인 것은 퉁퉁 부은 주영이 시신이었다. 그들은 주영을 명자와 득무의 고모가 묻힌 그들의 집 뒤의 산에 묻는다. 비석도 없고 봉분도 없는 초라한 묘. 산을 내려서며 득무는 눈물을 뚝뚝 흘린다. 재원은 말없이 득무의 손을 잡는다.




“채훈이는…”

“…”



재원은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명자의 죽음에도 실감이 나지 않았던 전쟁이 비로소 득무의 전신을 뒤집어 놓는다. 그때 재원이 입을 떼었다.



“지금 당장 떠나야 하오.”



재원의 단호한 말과 함께 그의 손에 힘이 실린다. 득무는 재원을 쳐다본다.

재원이 입을 떼었다.


“여기 있음 다 죽소. 남쪽으로. 지금 당장.”


재원과 득무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뛰어 집안으로 들어선다. 득무는 형철을 둘러업고 재원은 시모와 상득을 앞세워 뒷길로 마을을 빠져나간다. 두 시간 뒤 그들은 대구로 가는 화물칸 안에 타고 있었다. 나고 자란 충청도의 정겨운 풍경이 활동사진처럼 그들 앞에서 빠르게 사라졌다. 득무의 눈에서 눈물이 툭툭 떨어졌다. 형철은 흔들리는 화물칸 안에서 득무에게 안기어 잠을 자고 있다. 세간살이를 다 챙기지도 못하고 몸뚱이와 얼마간의 재산만을 가지고 피란길에 오른 그들. 득무는 멀어져 가는 산등성이를 바라보며 꼭 다시 돌아오리라 다짐한다. 명자와 고모 그리고 주영이 묻힌 곳에 소담하고 예쁜 묘석을 세우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 득무는 다시는 자신의 고향인 충청도에 돌아오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