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찾는 워킹맘의 두번 째 스무살
두 번째 스무살이라고들 하는 마흔. 나는 이 말이 정말 낯간지러웠다. 그러나 이상하게 30대에는 보이지 않았던 나의 20대의 빛나는 순간들이 요사이 자꾸 생각이 난다. 아마 내가 50대가 되면, 지금 내가 지나온 30대의 후회되는 지점들이 또다른 의미로 다가오지 않을까.
나는 먹고 사느라 바빴다. 사람은 불안하면 중간점으로 귀결된다고 했던가. 안정된 수입원을 찾아 적당히 나 자신과 타협했다. 그러나 먹고 사는 것은 그 어느 것도 쉬운 것은 없었다. 안정감과 맞바꾼 내 삶의 언저리에는 항상 20대에 나를 가슴 뛰게했던 그 무언가가 얼굴을 바꿔 언제든 드러낼 준비를 하고 대기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30대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나 마흔 언저리가 되고, 30대의 문턱을 넘을 때. 비로소 나는 내 20대를 용서할 수 있게 되었다. 과거는 미화된다고 했던가. 그 시기의 불안과 우울을 비난하기 보다는 격려하고 응원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아마 그렇게 되기 위해 30대를 통과한 나, 즉 1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나보다.
삼십대 후반 즈음부터 우연히 [나크작]이란 글쓰기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매일 글감을 올리고 그에 따라 즉흥적으로 혹은 계획적으로 글을 썼다. 그러면서 나는 점점 내 글이 창작의 형태에 가까워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어느 날엔가 나는 단편 시나리오를 쓰게 되었다.
[삶은 계란]이라는 제목의 시나리오였는데, 삶은 계란만을 먹어야 사는 여자에 관한 내용이었다. ‘시나리오를 써야지.‘ 하고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써진 글이라 매우 의아했지만, 쓰는 내내 시나리오 형태의 무엇을 만들려고 노력했던 내 20대의 꿈들이 생각나 신기했다.
오랜만에 써본 시나리오는 내 안의 창작욕에 더욱 불을 지폈다. 써 내려가는 동안 바로 이거지! 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글쓰기 모임 동지들은 감사하게도 내 졸작의 독자가 되어 주었다. 행복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그래 시나리오를 좀 더 써보자. 거창한 목적은 없었다. 그냥 이것이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는 확신만 있었을 뿐. 그러나 마흔 언저리의 나는 이런 확신은 자주 오지 않는다는 것을 직감했다.
행동이 굼뜬 내가 한국방송작가협회 교육원의 극본가 과정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5살이고 한창 코시국 때인지라 줌으로 모든 것이 진행된다면 좋겠지만, 극본 과정은 대부분이 대면수업이었다. 첫 번째 난관이었다. 경기도민이라 서울 한복판에서 진행되는 수업을 들으려면, 퇴근 후 운전만 편도로 최소 2시간은 해야 한다.
게다가 아이를 맡겨야 하는 어려움도 생겼다. 남편은 거의 매일 야근을 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고민이 됐다. 글쓰기 모임의 동지들에게 이야기를 했다.모두들 나의 도전을 응원해주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 채 나는 덜컥 드라마작가 기초반에 등록하고자 면접 에세이를 쓰게 된다. 이 길이 맞다면, 나머지 일들은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다소 무책임한 생각을 가지고 말이다.
예상대로, 내 결심을 밝히자 나를 제외한 모든 가족 구성원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마흔이라 좋은 점. 나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시간은 나를 더 이상 기다려주지 않는다, 정말 원하는 것에 미련 없이 도전을 할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나를 튼튼한 밧줄처럼 잡아주었다.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아이의 하원부터 남편의 퇴근 시간까지 엄마가 두 세시간 정도 아이를 봐 주시기로 했기 때문이다. '여의치 않으면 시터의 도움을 빌리자.'라는 생각으로 그렇게 나는 마흔에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