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름타자기 Jul 28. 2024

<장갑을 사러>를 보고

이현주 감독의 단편영화

한 여름에, 한 겨울에 어울릴만한 영화를 보았다.

내가 애정하는 퍼플레이. 그곳에는 여성 감독들이 만든 다양한 영화들이 상영되고 있다.

퍼플레이는 꼭 수상을 해서 유명해진 작품들 뿐 아니라 다양한 영역의 단, 장편 분량의 영화들이 존재한다. 여하간, 나는 사전정보도 없이 <장갑을 사러>라는 제목과 29분이라는 러닝타임에 이끌려 결제를 하고 영화관람을 클릭했다.


이현주 감독 <장갑을 사러>


주인공 조인경은 피아노 학원 교사다. 남자친구는 3개월 후 있을 일본 발령을 앞두고 설레어하고 있지만 인경의 마음은 그렇지 못하다. 인경은 일본어 학원 등록을 한다. 감독의 말처럼 3개월이라는 시간은 무언가에 익숙해지기에도 그러나 전혀 모르기에도 애매한 시간이다. 영화는 갈피를 모르는 사람의 마음의 섬세한 결을 3개월이라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담담하게 따라간다.



영화는 마치 겹겹이 쌓인 크레이프 케이크를 천천히 음미하는 느낌을 준다. 갈등이 밖으로 분출되는 형태는 아니지만 인경의 녹턴 연주 위로 스산하거나 겹겹이 부서지는 그녀의 마음이 잘 배어 나와 인상적이다. 영화 제목 <장갑을 사러>는 동명의 일본 동화책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인간 마을에 가 무사히 장갑을 잘 사고 돌아온 아기 여우는 엄마로부터 인간들이 그럴 리가 없는데라는 말을 듣는다. 어린이 동화책 내용으로는 다소 기이한 내용. 그 이야기가 마음에 남은 감독은 동명의 시나리오 작업에 착수했다.



영화 속에서도 역시 장갑이 등장한다. 인경은 남자친구와 예전 교토 여행에서 장갑 한 짝을 잃어버렸다. 그 사실을 인경은 기억하고 남자는 잘 기억해내지 못한다. 인경의 반쪽 짜리 장갑처럼 그들 둘 사이는 무언가가 빠져있거나 빠져나가는 애매한 시기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애매함의 시간들을 영화는 잘 포착해 내어 우리 앞에 꺼내어 놓고 있다. 특히 조인경 역을 맡은 배우 김정민의 연기는 절제를 하면서도 섬세하게 전진해 나가는 감정의 층위를 설득력 있게 잘 전달한다.


포개어 접기에도, 펼쳐 보이기에도 애매한 시간들 속에 놓인 감정과 관계들을 꺼내어 보여주는 영화 <장갑을 사러>.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을 누군가가 잘 꺼내어 펼쳐 보였을 때 느끼는 안도감과 위로는 내가 영화를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애정하게 된 영화 <장갑을 사러>를 추천한다.


#나크작 #나크작리뷰 #나는크리에이터작가다

#영화리뷰 #영화 #단편영화 #여성감독 #여성영화 #장갑을사러 #이현주감독 #리뷰

(사진출처: 퍼플레이, 영화 스틸컷)

작가의 이전글 <바다에 가자> 0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