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라스의 말’을 읽으며
요사이
뒤돌아보고 싶진 않지만 자꾸만 얼마 남지 않은
나의 30대를 복기하게 된다.
20대는 가운데가 빈 도넛처럼
기억이 잘 나지 않아 복기에 실패했지만(아마 싸이월드가 내 20대를 더 잘 기억해준 것 같다.)
30대는 촘촘하게 전혀 다른 수백 개의 내가 담긴
포토카드가 세로로 잘 세워진 느낌으로,
뭉텅이를 쑥 들면 우두두두 카드들이 사방으로 떨어져
어떤 게 어느 시절 내 모습이었던가
순서대로 다시 배열할 수 없을 것 같다.
어떤 모습은 몹시 미운 채로 남아있으며,
어떤 모습은 위로를 건네고 싶은 모습이고
어떤 모습은 다시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멋짐이 함께 하기도 한다.
어디까지나 다 나의 모습들이다.
나는 이제 한 아이의 엄마로서,
노동자로서,
40대 여성으로서,
어떤 목소리를 내고 어떤 표정을 하고서 살아가야만
10년 후의 내가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일까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내가 열렬하게 찬양하던 계절
‘여름’에 대해서도 점점 무덤덤해지는 것도
여름이 가진 젊은 싱그러운 것들이 주는 징그러움을 조금 느껴서 인 것도 같다.
요사이 몸이 아팠다.
마음이 먼저 아픈 것인지
몸이 앞서 피로감이 누적되어 왔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몸이 아프니 마음도 같이 한 배를 타고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과거 어느 한순간의 내가
그토록, 참으로 하고 싶었던 어떤 것들과
지금의 나의 모습으로 도달하게 될 미래의 내가
영원히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했기에
내 마음이 더욱 복잡했던 것 같다.
그리고 실로 오랜만에 구입한 책.
‘뒤라스의 말’을 오늘 열었다.
열자마자 보이는 문구.
‘인간 존재는 그저 단절된 충동들의 한 묶음일 뿐이에요.
문학은 그 상태 그대로를 복원해야 하죠.’
단절된 충동들의 한 묶음.
그래 단절된 충동 들일뿐인데,
나는 어떤 연속성을 바라고 애쓴단 말인가.
이 언니의 말,
첫 장부터 나를 사로잡는다.
그리고 페이지를 조금 더 넘기자
커다란 돋보기를 쓰고 손가락마다 멋진 반지를 끼고
무심히 턱을 괸 채
짧은 머리에 미간에 많은 주름을 달고
웃으며 카메라를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순간적으로 받은 위안.
그래 나도 이렇게 멋지게 나이 들어야지.
자기 자신의 감정과 충동과 열정에
솔직한 사람은 항상 총기가 감도는 것 같다.
사진에서도 그녀의 따뜻하지만 강렬한
삶에 대한 열정이 느껴진다.
그녀의 글을 조금 더 살펴보자.
책은 태어나고 밖으로 나오기를 두려워하는 비정형의 무엇이에요.
우리 안에 간직된 채 피로와 침묵과 느림과 고독을 한탄하는 존재라고 할까요.
하지만 일단 세상에 나오면…(중략) 글의 감옥에서 책을 해방시켜야 하죠.
그래서 살아가도록. 여기저기로 순환하며 사람들에게 꿈을 꾸게 하도록.
망각과 구멍이야말로 진정한 기억이죠. (중략)..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잊어요.
우리가 볼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은 우리가 경험한 것들의 표면, 외피에 불과해요.
내 20대를 스스로 용서할 수 있을까.
나는 항상 생각해왔다.
망각. 단절된 부분으로서 존재하는 그 시절에 대해서 말이다.
그렇지만 만약 정제되고 삭제된 그 기억들이야 말로
글쓰기에서 필요로 하는 그 무엇이라면,
나는 나를 조금 너그럽게 바라봐줄 수 있을 것 같다.
내 안에도
이야기되고 밖으로 꺼내기 힘든 것들이
틈새를 단단히 노리는 아이러니한 일들이 계속 일어난다.
나보다 훨씬 앞서서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 해 나간 사람이
이토록 멋있을 수 있으므로
나는 오늘 충분히 위로받았다.
결론?
계속 뭐든 쓰자. 완성이 아닌 완료로서.
아무튼.
1일 1 마감 완료.
#뒤라스의말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