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수생이 되었던 건에 대하여

나는 정말로 수능을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by 블루


[첫 번째 입시의 기억]


나는 공부를 곧 잘하는 편이긴 했지만 서울대에 갈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왜 학교건물 옥상으로 기억이 나는지 모르겠지만 고2 혹은 고3 시절, 서울대에 갈 수 있다면 종교학과라도 가고싶다고 친구랑 나눴던 대화가 생각난다. 당시의 나는 서울대 종교학과를 신학과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운이 따른다면 연고대 정도는 갈 수도 있겠지하고 생각했었을 것이다. 그리고 막연히 나는 운이 따르지 않을까 기대했겠지. 논술로 승부를 보는 수시 2차에서 성균관대에도 지원했던 것을 떠올려봐도 서울대는 막연한 꿈 정도의 느낌이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첫 수능을 봤다. 딱히 컨디션이 나빴던 것도 아니고. 그렇게 못 풀었다고 생각했던 것도 아니었다. 채점을 해보니 언어가 3등급이 나와서 SKY에 진학하기 어려운 성적이었다.


결과가 나온 후 부모님은 결과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성균관대 일부 학과들은 지원해볼 성적이었지만 부모님은 성균관대 진학에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그렇다고 성균관대에 꼭 가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기도 해서 요행을 바라는 셈치고 고려대 사범대에 지원했었다. 면접을 망쳐 모의지원보다 훨씬 낮은 예비번호를 받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가군에서 지원한 다른 대학에 합격하고 등록하면서 나의 첫 입시는 그렇게 마무리됐다.



[재수는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수능을 다시 본다 해도 잘 볼 자신이 없었다. 모의고사 결과는 항상 오락가락했었고, 언어를 망치긴 했지만 다른 영역은 준수한 성적이었기 때문에 수능을 다시 본다한들 그만큼 다시 받을 자신도 딱히 없었다.


그리고 나는 특별히 갖고 싶은 직업도, 배우고 싶은 학문도, 꿈이라고 부를만한 특별한 어떤 것도 없는 학생이었다. 학생은 공부를 해야하니까 공부를 했고, 곧 잘 했기때문에 그럭저럭 시간을 투자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무엇을 목표로 수능을 다시 봐서 다른 대학에 진학해야 하는가에 대한 회의가 강했다. 미련이 남는다기보다는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하는 쪽이었다. 피땀을 쏟은 요약노트 같은 자료들도 고민하다 죄다 버린 기억이 난다. 그렇게 나의 대학입학은 가정불화와 함께 겨우 마무리 되는 듯 했다.



[고민 끝에 마음을 바꾼 계기]


나름 꿈을 갖고 입학했지만 학교생활이 별로 재미가 없었고 학교문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수능 이후 하릴없이 쉬면서 어느정도 재충전이 되었고, 맞지않는 대학생활을 경험해보니 수능을 한 번 더 해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SKY를 목표로 했으나 성균관대에 진학한 친구와 자주 연락이 닿아 서로 고민을 나누면서 계획은 점점 구체화됐다.


잠깐 생각한다고 계획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대학생활을 하면서 수능공부를 다시 시작하는 것은 정말 어려웠다. 왕복 2시간 이상의 통학, 어리버리한 신입생 생활도 악조건이었지만 수능 공부를 놓은지 한참이라 많은 지식이 휘발된 점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특히 수리는 한 달 정도 후에 감을 찾긴 했지만 정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반수 계획을 짜보다가도, 사회봉사 같은 곳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볼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수능 공부를 다시 하기가 정말 싫었던 것이다. 아마 수능날 시험장같은 극도의 압박감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같이 준비했던 친구는 내가 완전히 그만둔 것 처럼 보였다고 했었다.


우여곡절 끝에 점차 감을 찾아가는 느낌이 들자 본격적으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전적대학에서의 안 좋은 경험은 좋은 원동력이 되었다. 반면 역설적이게도, 만약 잘 안되더라도 다시 돌아갈 곳이 있다는 점은 굉장한 심리적 위안이 되었다. 아무 버팀목없이 재수를 했다면 두 번째 수능 응시까지의 과정이 엄청 험난하고 힘든 과정이었을 것 같다.



[혼자서 공부하기로 했다]


고민은 오래걸렸지만 결심을 하고나서는 나름대로 열심히 재수생활을 했다. 학기 중에는 학교생활과 병행했기 때문에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야한다는 압박이 있었고, 학기가 끝나고는 상반기를 까먹은 만큼 더 분발해야 한다는 유인이 있었다.


재수를 하면 보통 재수종합반을 많이 등록했기 때문에 나도 등록해야하나 많이 고민했다. 특히 강남대성이 유명했는데, 고민 끝에 독서실에서 공부를 이어나가기로 했다. 반수반 개강일정이 학사일정과 맞지 않았고, 학원이 너무 멀어 통학이 쉽지 않았고, 높은 학비도 부담스러웠다.


결과적으로는 학원에 가지 않은 것이 잘 한 선택이 됐다.


혼자서 조용히 공부를 하다보니 내 페이스에 맞춰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고3 때는 친구들과 함께해서 좋은 점이 많았지만, 학교수업과 개인공부를 병행해야 했고 모의고사 등수가 공개되는 등 경쟁구도 속에 항상 압박감이 있었다.


방해받지 않고, 남과 비교할 것 없이 혼자 공부를 하게 되니, 고3 때보다 안정적인 마음가짐으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비록 휴대폰 게임을 많이 하기는 했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독서실에 출근하고, 중간에 집에서 점심, 저녁을 먹고 밤 늦게까지 공부하고 귀가하는 안정적인 패턴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1/3, 계속)

작가의 이전글브런치에 글을 써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