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수 생활기

두 번째 수능까지의 과정

by 블루


[새로운 변수]


혼자서 차분히 공부하면서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였다는 것 외에 하나의 기회요인은 수능에 EBS 반영비중이 대폭 늘어나는 과도기를 잘 활용했다는 점이다. 당시 EBS 반영비중이 늘어나고는 있었지만, 학교현장에서 EBS 실제 반영률을 예측하기 쉽지 않았고, 기존 교과과정과 병행 또한 쉽지 않았었다.


나는 다른 수업을 병행하는 것도 아니었고, 또 여름 이후로 공부를 시작해서 사실 EBS만 파고들어도 시간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자연스럽게 EBS에 집중해 공부했다. 수능에 반영될 것이라고 공표된 모든 EBS 교재를 구매해서 풀어보기도 하고, 답지를 외워보기도 하고, 그냥 여러 번 읽어보기도 하면서 EBS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결과적으로는 수능이 EBS와 상당부분 연계가 되어서 출제되었고, EBS 중심으로 공부했던 나에게는 장점으로 작용했다.



[새로운 도전]


고3 때에 비해서는 심리적으로 안정적이고, EBS에 집중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지만 여유롭고 순조로운 도전만은 아니었다.


당시 문과기준 많은 대학들은 5개 과목(사회탐구 4과목 + 제2외국어) 중에서 점수가 높은 2개 과목을 고르는 점수체계였다. 그런데 서울대는 5개 과목 전부를 반영하는 점수체계를 고수했었다. 나는 기대는 하지 말아야지 생각하면서도 혹시 서울대를 갈 수 있을지도 모르니 모든 과목을 전부 가져가기로 했다.


그러면서 반 년 정도 되는 짧은 시간에 탐구 1과목과 제2외국어 과목을 새로 공부해 수능을 응시했다.



[탐구 과목을 바꾼 이유]


탐구과목을 바꾸게 된 계기는 서울대 필수과목인 국사 때문이었다.


나는 정말 역사 암기를 싫어함에도 학교 지정과목이라는 이유로 국사를 선택했었는데, 재수 때도 서울대 필수과목이니 할 수 없이 국사를 선택해야만 했다.


문제는 근현대사였다. 원래는 근현대사 과목이 따로 있어 국사에서는 근현대사 문제를 출제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는데 불문율이 깨지고, 국사과목에서 근현대사 비중이 점차 늘어나던 시기였다. 고등학교 선택과목은 근현대사가 아닌 경제였기때문에 서울대를 메인으로 노리는 것도 아닌데 굳이 국사에 출제되는 근현대사 몇 문제를 맞추자고 근현대사를 공부를 하는 것은 엄청난 시간낭비라는 생각이었다.


두 번째 수능에서는 이왕 두 번째 도전하는김에 본격적으로 서울대를 노려보기로 했가. 국사를 제대로 준비해야하는 상황에서 근현대사 공부를 등한시하기에는 애매한 상황이었다. 고민 끝에 첫 해에 응시했던 경제를 버리고 근현대사를 선택했다. 어짜피 국사 때문에 근현대사를 공부해야 한다면, 근현대사 과목도 같이 준비해 시너지를 노리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처음에는 암기가 잘 안돼 꽤나 고생했다. 근현대사는 내용이 엄청나게 방대하고, 서울대 필수과목이라 경쟁이 치열한 국사와 달리 범위가 넓지 않고 대다수의 문과 학생들이 응시하는 인기과목이어서 암기로 무장된 기존 학생들을 당해내기 쉽지 않았다. 6월 평가원에서 처음 근현대사를 응시했었는데 4등급을 받고 이게 정말 옳은 선택일까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제2외국어 과목을 바꾼 이유]


제2외국어는 고등학교 때 일본어를 배웠기때문에 첫 수능에서도 일본어를 응시했었다. 일본어는 매니아층이 있어 항상 표준점수나 백분위가 잘 안나오는 과목이었다. 모의고사를 보면 변별력을 주기 위해 뉘앙스로 풀어내야하는 문제들에서 항상 고전했고, 나름 점수를 잘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등급은 생각보다 잘 나오지 않아 사실 큰 기대는 없었다.


그래서 두 번째 수능에서는 제2외국어도 전략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일본어를 버리고 당시 블루오션이라고 불리던 아랍어를 공부해 응시했다. 당시에는 그런 지렁이 같은 글씨를 어느정도 읽을 줄 안다는 점이 신기하고 재밌었다. 어느정도 감을 잡고나니 점수도 나름 잘 받았었는데 지금은 전혀, 아주 조금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평가원의 경험]


그렇게 독서실에서 혼자 묵묵히 공부하면서 6, 9월 평가원 모의고사를 응시했다. 교육청 모의고사들은 고3만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못 봤고(딱히 볼 시간도 없었다.) 사설학원 모의고사는 학원에 가서 봐야했기때문에 시간투자 대비 효용이 없는 것 같아서 포기했다.


평가원은 학원에서도 응시할 수 있었지만 접수경쟁이 굉장히 치열해 모교로 신청해 응시했다. 졸업 후에 다시 학교에 가서 시험을 신청하는 과정이 조금 민망하기는 했다. 시험은 재수생들만 별도 교실에 모여 응시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응시한 평가원 모의고사 성적이 나쁘지 않아서 나름 자신감을 갖고 공부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9월 평가원에서는 그 전에는 전혀 받아보지 못했던 성적을 받아보기도 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6월 평가원이었나? 점심시간에 과일을 너무 많이 먹어서인지 외국어 시험 도중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갈지 말지 고민하다 불편한 상태로 시험을 봤는데 집중하지 못해 외국어 영역을 말렸던 경험이 있었다.


[두 번째 수능]


보통 이런 경험을 하면 수능 당일 화장실을 더 신경써야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수능 당일에도 점심을 일찍 먹고 화장실에 다녀온 탓인지 외국어 시간 도중에 화장실이 가고 싶었다. 시험 도중에 화장실에 가본적도 없었고 시간이 부족해질 수 도 있고 맥이 끊기는 일이었기 때문에 고민이었다. 그럼에도 평가원에서 고민만 하다가 시험을 제대로 못 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죽도 밥도 안되기보다는 화장실에 갔다오기로 결정했다. 잘 안돼면 어쩔 수 없이 전적학교로 가면 된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막상 화장실에 가겠다고 얘기하니 별다른 소란 없이 복도요원 동행 하에 조용하게 화장실을 다녀올 수 있었고 생각보다 시간 소요도 크지 않았다. 수능날 외국어 독해문제를 풀다가 화장실을 가는 경험을 보통 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게 작은 소동 끝에 두 번째 수능을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고, 두 번째 대입 입시를 치루게 됐다.


(2/3,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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