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이란 세월이 그렇게 빨리 흘렀다...
우울증이 극에 달했을 때, 나는 반려견을 입양하겠다는 단호한 결심을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완강한 저항에 부딪쳤다. 하지만, 나는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했다. 이렇게는 도저히 못 살겠다고 외로울 때면 말할 수 있는 친구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내 반려견 "YuKI(유키)"는 우리 가족이 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1. 비숑프리제, 그런 강아지가 있어??
선배가 원장으로 있던 동물 병원에서 몰티즈 녀석을 입양하려고 했었는데, 그 당시 나의 연인이었던 사람이 문득 동영상 하나를 보여주면서 '이거 봐, 엄청 예쁘지 그리고 엄청 똑똑하대. 거기다가 털도 안 빠진대.'라며 내게 강아지 소개 영상을 보여주었다. 머리가 동글동글하고 다리는 짧아 보이는 녀석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모습에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미 분양을 하기도 전에 "비숑"의 매력에 나는 빠져버렸다. 녀석들과 비슷한 한 친구와 오랜 시간을 함께 할 생각에 가슴이 설레었다. 개털이라고 하면 질색을 하는 엄마를 생각하니, 엄마를 위한 배려라고 생각에 나는 곧 "비숑"에 대해서 조사에 들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비숑" 카페에 가입을 하고, 분양을 위한 절차에 착착 들어갔다.
"비숑"은 몸값이 비싼 견종이었다. "유키"녀석이 분양될 당시만 하더라도 "비숑프리제"라는 견종이 국내에 많이 소개되지 않아서 더 그랬다. 그렇지만 나는 부모님에게는 분양 가격을 거짓말로 하고 "유키"를 분양받았다.
"유키"라는 이름은 내가 좋아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댄스, 댄스, 댄스"의 여주인공 이름이었고, 눈처럼 하얗고 예쁘게 살라는 의미에서 어떤 녀석이 오든지 붙여줄 이름이었다.
2. "유키" 집으로 오다.
"유키"가 대략 젖을 떼고 무른 사료를 먹을 수 있을 때쯤 고민이 생겼다. 이 녀석을 어떻게 데려오냐는 고민이었다. 나는 대전에 살고 있고, "유키"의 고향은 부산이었다. KTX로 가는 것이 가장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는 분양해주시는 분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나는 직접 운전을 해서 부산으로 내려갔다.
혼자 가면 데려오는 아기가 영 불안(??)해 할지도 모른다는 사심 가득 섞인 연인의 말에 함께 부산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유키"가 있는 곳으로 갔더니, 분양을 해주시는 분께서 남아 세 마리를 데리고 나오셨다.
이제 막 발걸음도 잘 떼지 못하는 꼬물이 세 마리가 저마다 어디론가 가겠다고 발버둥을 치는 모습만 보고도 행복해졌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내가 분양자께서 보내주신 사진으로 미리 정했던 꼬물이 녀석이 내게로 오더니, 내 다리 위로 올라오려고 애를 쓰는 것이 아닌가. 분양해주시는 분도 너털웃음을 터뜨리면서.'네가 정말 인연은 인연인가 보다, 정해졌네.'라며 웃으셨다. 그렇게 "유키"는 내가 그 녀석을 선택하고, 그 녀석도 나를 선택함으로써 우리 가족이 되었다.
다시, 4시간이 넘는 길을 올라올 때, 연인의 품에 푹 안겨 잠든 녀석을 보면 마냥 흐뭇했다. 인형의 모습 그 자체였으니까. 그렇게 "유키"는 우리 집에 도착을 해서 자신의 공간(케이지) 안으로 들어갔다.
3. 가족이 된 지 세 시간 만에 대장이 되다.
그렇게 반대를 했던 부모님이셨는데, 유키를 보니 너털웃음을 터뜨리셨다. 유키는 그만큼 치명적인 매력을 갖고 있었다. 철망에 매달려 꺼내 달라고 낑낑거리는 녀석을 보며, 엄마는 "아이고, 이 한심한 녀석아, 여기까지 무엇을 먹으러 왔어."라며 웃으셨고, 아버지는 대뜸 녀석을 꺼내시더니 "요, 예쁜 녀석이 왜 거기 있나. 이리 나와라." 하시며 녀석을 번쩍 들어 올려 배 위에 올려놓으셨다. 그렇게 해서, 집으로 온 단 세 시간 만에 서열이 정해졌다. 유키는 우리 가족의 대장이 되었다. 아니 적어도 나보다는 서열이 높아졌다.
4. 시크하지만, 영악한 녀석
요 녀석은 참 영리했다. 말을 하면 다 알아들었다. 그런데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손이라는 것도, 발이라는 것도 그리고 나머지도 다 알아듣는데, 절대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그리고 눈으로 나를 말똥말똥 쳐다보면서 엎드려 있거나, 집에 온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배를 다 드러내 놓고 잠을 잤다. 동생과 나는 어이가 없어서, "이 녀석 정말 보통 아니네..." 라며 웃었다. 녀석은 정말 시크했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을 때는 철저히 "형(나를 비롯한 동생)"에게 애교를 부리고 꼬리를 흔들어댔다. 가령, 나는 어렸을 때부터 유키의 예방 접종을 위해서 선배의 병원이 있는 곳까지 차에 태워서 다녔다. 그런데 이 녀석이 처음 올 때부터 차멀미도 안 하고 잘 오더니, 예방 접종하러 다닐 때 차 타고 다니는 것마저 흥미를 들였는지, 매일 차를 태워달라고 응석을 부렸다
매일 아침이면 머리맡에 와서 낑낑거리는 것으로 시작을 해서 엄동설한에도 아니면 찜통더위에도 나가지 않으면 하루 종일 녀석의 "하울링"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리고, 유키는 절대 시원한 물이 아니면 마시지를 않았다. 집에 있을 때는 정수기에서 차가운 물을 내리는 것을 봐야 먹었고, 밖에 외출해서는 차가운 생수를 사 와서 자신의 눈앞에서 병뚜껑을 돌려 따서 종이컵에 따르는 것을 봐야만 먹었다. 정말, 내 새끼라고 해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영악한 놈이었다.
5. 가는 곳마다 이목 집중
비숑프리제는 흔한 견종이 아니었다. 그래서 어디를 가던지 "유키"에게 이목이 집중됐다. 더더군다나 "유키"는 결코 덩치가 작지 않았다. 최근에는 "비숑"끼리 개량을 통한 조금 작은 체급의 비숑이 많이 인기가 있다고 하지만, 원래 비숑은 몰티즈나 요크셔테리어처럼 초소형견은 아니다. 그래서 유키의 체급도 그리 작지 않았다. 이 녀석은 둥근 머리와 정말 잘생긴 외모로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그것에 재미를 들인 이 녀석은 사람들이 모인 곳만 가려고 하지, 사람들이 없는 곳에는 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 어느 날이었던가, 산책을 가려고 요 녀석의 목에 목줄을 메고(유키는 목줄 메는 것을 죽는 것보다 싫어한다.) 한가한 곳으로 나왔는데, 갑자기 그 자리에 주저앉는 것이다. 가지 않겠다는 의사를 강력하게 표현한 것이었다. 주차를 한 곳까지 다시 가려면 또 걸어야 하는데
이 녀석은 움직이지 않고 산이 되어버렸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요 녀석을 안고 낑낑 거리며 차까지 걸어왔다.
그리고 차에 타자마자 이 녀석은 다시 소리를 마구 질러대고 꼬리를 흔들며 좋아했다. 도대체 알 수가 없는 녀석이었다.
6. 10년이란 세월은...
유키가 우리 가족이 된 지, 10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이제 유키도 노견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언제부터인가 유키도 조금씩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보인다. 예전보다 털의 윤기도 살짝 덜한 것 같고, 다른 사람은 잘 모르지만 나는 알 수 있는 그런 조그만 변화들이 보이고 있다. 나는 어느새, 유키와의 이별도 미리 준비하고 있다. 그것은 생명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인정할 수밖에 없는 "노화"와 "죽음"이라는 생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내 의지로는 어쩔 수 없는 이별이기에. 유키를 안고 유키가 부서질까 조심해서 외출을 하던 날이 생각난다. 그리고 유키가 내 실내화를 물고 놔주지 않겠다고 온 힘을 다해 버티던 모습도 기억이 나고, 그 모든 순간순간은 내게 다 행복이었다. 유키가 온 뒤로 우리 집에서 큰 다툼이 줄어든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우울증이 심해서 매일 죽겠다며 협박을 했던 나도 유키가 내 옆에서 잠들면 유키를 쓰다듬으면서 잠들 수 있었다.
모두 다 유키가 내게 준 선물이었고, 그 선물은 세상 어느 것보다 소중한 내 재산이었다.
7. 이제는 가슴 아픈 이야기들...
나는 이제 이 사진을 보면 눈물이 난다. 유키는 한 살 때였고, 내 동생은 사고가 나기 전이었으니까. 내 동생은 작년에 사고가 나서 현재는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다. 아직도 이 날, 우리가 산책을 했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유키는 작은 형과 앞서 가면서 자꾸 돌아보면서 나를 보고 빨리 오라고 재촉을 했고, 나는 그 순간순간을 사진에 담느라 바빴다. 그 날의 바람, 그 날의 공기, 그리고 바람 사이를 둥둥 떠다니던 벚꽃비,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유키와 내가 늘 믿고 의지하는 동생. 우리는 그렇게 행복했었다.
동생이 휠체어에 탄 모습을 보면 매일 눈물이 난다. 그것이 분명 나의 탓은 아니지만 나의 탓같아서 힘이 든다. 유키는 동생이 사고를 당한 뒤, 4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병원에 있을 때 예전과 다르게 조금 변했다. 한층 더 성숙해졌지만 분위기가 달라졌다. 10년이란 세월은 너무 빨랐다. 유키가 함께 해서 더 빠르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유키와 사는 매 순간순간이 내게는 축복이었다.
이 녀석은 그런 내 마음을 알지 모르겠다. 사실, 나는 요즘 마음의 감기가 다시 재발을 했다. 내 병을 스스로 다스릴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것은 없겠지만, 약으로도 조절할 수 없을 때면 나는 좌절할 수밖에 없다. 뒤바뀐 밤낮과 몽롱한 상태로 지속되는 삶은 나를 늘 괴롭게 한다. 유키가 그렇게 좋아하던 나와의 드라이브도 그래서 예전처럼 해줄 수 없다. 이렇게 나이가 들어가는 유키를 보며 나는 더 미안하다.
나는 '한낱 동물 따위가 사람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 학교 앞 병아리 할머니에게서 받아온 병아리가 죽었을 때를 어느새 잊고 살았었나 보다. 녀석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크게 내 안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 녀석으로 인해서 나는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더 자부심도 갖게 되었다. 유키는 내게 "행운"이고 "행복"이었다. 10년 내내 단 한순간도 너와 함께 있는 순간은 행복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 행복은 변함이 없다.
2020-09-05
글, 사진 고대윤
내게 와줘서 고맙다.
개강을 했습니다. 비대면 수업으로 강의가 진행이 되지만, 마음이 바빠진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글은 사실 몇 개월 전에 써놓은 글입니다. 최근에는 글을 적을 여유도 그리고 자신도 별로 없어서 글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고 몇 달이 지난 지금, 유키는 "심장비대증"이라는 병의 진단을 받았습니다. 소형견에서 자주 발병하는 질병의 일종으로 호흡이 가빠지고 켁켁거리기를 반복하는 특징을 가진. 앞으로 유키는 약을 먹으면서 살아야합니다. 하지만, 약 먹는 것에 익숙하지 않을 정도로 건강하게 살아온 유키는 약을 강하게 거부하더군요. 그 모습을 보며 "약을 먹어야 형하고 더 오래 같이 살지!!"라고 엉덩이를 때렸습니다만, 그냥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며 헤헤 거리는 녀석의 모습에 가슴이 더 아팠습니다. 아직도 동생은 휠체어에 앉아서 생활을 하고
유키는 나이가 들어갑니다. 행복했던 그 모습이 담겨있는 과거와는 점점 거리가 더 멀어져갑니다. 앞으로 시간이 더 지난 후에, 저는 또 이 시간마저 어떻게 기억을 하게 될런지 미리 두렵습니다.
코로나가 연일 세계를 뒤덮고 있습니다. 백신이 나올거라고 연일 매체에서는 희망적인 소식을 전하지만, 저는 그 소식이 회의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은 방법은 적극적인 예방 뿐이라는 것을요. 제 글을 보러 다녀가주시는 분들 그리고 구독자님들께 예방을 철저히 하시라고 말씀드립니다. 가을이 다가왔습니다. 부디 아름다운 가을에 아무 일 없이, 행복한 시간으로 매 순간을 채워가시길 기도드립니다.
- 2020.09.05
고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