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약한 자의 변명
적어도 "의(醫)"자가 붙은 학과에 진학을 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맞이 하게 되는 강의가 있다. 가령, 본과 3학년에 진급하는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하는 외과를 차치하고서라도, 본과 1년만 해도 2학기 동안 "해부학"실습이 진행된다. "해부학"은 말그대로 동물의 몸을 가르고 책에서 배운 부분을 일일이 찾아서 그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사실 그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가령, 해부학 교과서에 표현되어 있는 것처럼 똑같이 생기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 것을 보고 한 눈에 알아보는 것은 매의 눈을 갖고도 쉽지 않은 일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많은 지방이 우리 몸을 채우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지방으로 추정되는 흰 빛깔의 어떤 장기만 보면 무조건 "와~!! 지방이다~!!"라고 말을 하지만, 그 장기가 "이자"가 될 수도 있고, "난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예로부터 귀로 공부하지 말고, 눈으로 공부하라는 말이 저절로 떠오르는 시간이 바로 해부학 시간이다.
동물을 좋아해서 수의대에 진학을 하고 싶다는 분들에게 메일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러면 "진정 동물이 좋아서 그러시는 거에요?? 아니면 다른 뜻이 있으신데, 동물도 좋아하니까 수의대를 진학하고 싶다고 생각하시는 거에요?? 그 마저도 아니면, 그냥??"이라고 물어본다. 내가 이런 질문을 다시 던지는 이유는 그들이 겉으로 보는 수의학과의 모습과 진짜 우리가 겪고 공부하는 수의학과의 모습은 많은 차이가 있을 수 있고, 그 차이를 고려하지 않으면, 동물을 학대하는 집단으로까지 비춰질 수 있는 것이 수의대라는 곳이다.
우선, 의학 계열은 도저히 글자로만 배워서는 무용지물인 학문이다. 위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우리가 예상했던 것과 사실은 정반대일 수도 있고, 그 것을 눈으로 보며 만지고 느끼는 것은 또 한 차원 다른 이야기이다. 결국, 우리도 원하든, 원하지 않든 동물들의 몸 속을 직접 봐야만 하고, 그 행위를 통해서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머릿속에 저장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 것을 하지 못하는 학생들도 종종 있다. 비록, 그 숫자가 많지는 않더라도 적지 않은 수의 학생들이 하지 못한다. 그들은 동물을 정말 좋아하는 학생들이 분명하다. 그래서 수의대에 열심히 공부해서 입학을 했지만, 차마 실습을 통한 공부는 하지 못하는 것이다.
해부 실습을 하기 전에 안락사는 수의대의 교수님들께서 해주신다. 동물의 안락사는 수의사 라이센스를 가진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권한이다.(그래서 이 문제로 예전에 "더 케어"라는 유기동물보호센터 소장 박소연씨도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 분은 권한이 없는데도 하셨죠.) 해부를 처음 하는 날, 우리는 고정이라는 작업을 하는데 실습이 다 끝날 때까지 실습 동물의 변형이나 이상이 없도록 화학용액(포르말린)을 동물 체내에 채우는 작업을 한다. 이 작업은 생각보다 힘든 작업으로 가만히는 눈을 뜨고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독한 용액도 한 몫을 하지만
그보다 더 힘든 것은, 안락사를 한 개의 체온이 그 때까지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나는 살아있는 생명과 죽어있는 개체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단호하게 "체온"이라고 대답을 한다. 죽어있는 개체에서는 느끼거나 확인할 수 없는 그 따스함이 바로 생명의 존재감이다. 그런 존재감이 다 떠나지 않고 남아있는 상태에서 오랫동안 변형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화학 물질을 채우는 작업은 여간 고역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다음부터 순서에 따라서 절개를 하며 피부와 골격, 내부 장기를 확인을 하는 "해부 실습"에 들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작은 동물이기는 하지만 실험 동물로 분류되는 랫드와 마우스를 1년에 몇 개체씩마은 해부를 해야 한다. 본과 1년 동안 나는 3마리의 마우스를 안락사시켰다. 그 중 한 녀석은 두개골까지 오픈을 하여 Optic chiasm(시신경이 X자로 교차하는 지점)까지 내 눈으로 확인을 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거치면서 나는 "미안해"를 계속해서 반복했다. 신께 기도를 드린지도 오래되었지만, 힘없는 이 생명들을 내 손으로 이렇게 해야만 한다는 것에서 오는 마음의 불편함도 가득했다.
매 년, 실험동물에 대한 복지도 문제가 되어서 화두가 되고 있다. 예전처럼 실험 동물 개체 하나하나까지도 그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다. 맞는 이야기고 타당한 이치다. 나도 찬성하고 훌륭한 생각이라 말한다. 하지만 실험 동물이 없으면 우리는 사람에게 투여하거나 사용해야 할 의약품들의 "전임상실험(임상실험은 사람에게 하는 실험이기에, 전임상실험은 보통 동물에 하는 것을 말한다.)"도 하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아무런 의학적 발전도 이뤄낼 수가 없다. 결국, 우리가 실험을 할 때, 혹은 연구를 할 때마다 더 신중해야 되는 이유가 여기에서 나온다.
나는 해부실습이 있던 해에 개 한마리의 생명을 거의 다 내 손으로 샅샅이 해체를 했다.(우리 조 친구들이 워낙 메스를 안 잡으려 했기도 했고) 나는 의학과가 아니라 사람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생명은 그리 단단하지 않다.
실습을 하면서 내가 가장 많이 느낀 점은 그 것이었다. '생명은 그리 단단하지 않구나...'
생각보다 쉬이 모든 장기가 드러나고, 분리가 되고, 눈으로 확인을 할 수 있었다. 그 긴긴 시간 동안, 나는 내 앞에 놓여진 체온마저 사라진 친구에게 약속을 끝없이 되풀이했다. "내가 조금 더 단단해질게, 그래서 나의 행동이 의미없는 일이 없도록 하지는 않을게."
마지막 실습이 끝났을 때, 1년 동안 나와 함께 한 친구는 정말 차갑게 변해서 떠나갔다. 거의 겨울도 코밑까지 다가온 시점이었다. 1년을 더하고, 다시 1년을 더하면, 나는 라이센스를 갖게 된다. 그러면 그 때부터는 살아있는 친구들과 마주해야 한다. 분명,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은 의사 소통이 가능하기에 오히려 고통이나 불편함을 더 빨리 알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치료해야 하는 존재들을 말을 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렇기에 단 한 번의 실수가 그들에게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분명,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많이 올 것이다. 그럴 때면, 단호한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만 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단단한 사람이 되지 못할 것 같다. 내 손으로 전해지던 체온들, 그 친구들의 가볍지만 존재하는 무게들을 나는 느꼈으니까. 그래서 지나간 시간이지만, 예전 1년 동안 자신과 같은 친구들의 아픔을 경감하기 위해 먼저 떠나야만 했던 나의 친구에게 말한다.
"내가 더 단단해질게, 그래서 너의 친구들이 덜 힘들도록, 내가 꼭 힘이 되어줄게."
2020-08
글, 사진 고대윤
의대에 진학했었으면 나는 오히려 더 마음은 편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의 생명...물론, 동물의 생명보다 훨씬 무겁지만, 동물들보다도 못한 짓을 하며 살아가는 수없이 많은 인간들을 보면서 생명에 대한 무게는 굳이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에 대해서 내 마음이 꽤 차갑게 변해버린 것을 보면서 이제서야 내가 걸아가야 할 길을 찾았다는 편안함이 느껴졌다. 사람과는 다르지만, 사람들보다 더 따스한 체온을 가진 존재들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