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그만 드셔도 되지 않나요??
네이버 그라폴리오에서부터 알고 지내던 Denise가 갑자기 인스타그램의 다이렉트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 만나서 반가워. 불친절한 하루 씨(내 인스타그램 닉네임은 Unkind__HARU), 너의 본명이야??"
"아니, 내 이름은 고대윤이야, 만나서 반가워."
데니스는 내가 귀찮을 것을 알지만 꼭 묻고 싶은 것이 있어서 다이렉트 메시지를 보냈다고 했다. 마침, 나는 수의학이 전공이니 그가 궁금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기도 했고, 내 지식 선에서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알려줄 수 있다면 그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그의 질문에 기꺼이 답을 했다.
데니스가 궁금한 것은 아주 간단히 말해서, 한국의 "개" 식용 문화였다. 그녀는 생각보다 한국의 "개" 식용 문화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지만, 그것들에 대해서 조금 더 깊이 알고 싶어 했다. 그녀는 그것들을 토대로 글을 써보려고 한다고 했다.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빠르게 움직였다. 쉬이 대답할 수도 있지만 너무 쉬이 대답할 수도 없는, 여러 가지를 고려한 답변을 그녀가 이해하도록 해주고 싶었다.
그녀는 아직도 한국이 "개"를 음식으로 생각하는지 궁금해했다. 왜 "개"를 음식으로 생각하는지, 현재도 국민의 대다수가 "개"를 음식으로 생각하는지 등에 대한... 궁금증들. 사뭇 진지한 그녀의 질문에 나도 진지하게 대답을 해줬다.
"한국은 오래전에 상당히 가난한 나라였지, 특히 보통 사람들에게는 더 그랬어. 그런데 만약에 그 사람들이 고기를 먹어야 하는 상황인데 먹을 수 있는 고기가 "개" 밖에 없었다고 가정하면, 어땠을까. 그래서 "개"를 먹었던 거야, 그 시절 "개"는 가족이 아닌 "가축"에 더 가까웠으니까..."
이 대답을 그녀가 이해해주기를 바랐다. 서양인이 그녀가 대한민국의 "개" 식용 문화를 이해하고자 한다는 것조차도 내게는 고마운 일이었으니까. 오래전, 고교 시절 혹은 그 이전부터 말하던 "문화 상대주의"니 "문화 절대주의"니 이런 것들을 넘어서, 자신이 사는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의 문화 그 자체를 이해하려 한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감사했기 때문이다.
"그럼 요즘은 어떻지?? 있잖아, 나는 나의 강아지와 함께 살아. 그런데 나는 그런 끔찍한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아. 지금은?? 국민들의 50:50 정도의 비율이라고 생각하면 될까??"
"아니, 예전에 한국에서는 올림픽이 있었어, 그 당시에 많은 "개" 요리 집이 사라졌고, 지금은 아주 적은 숫자만 존재해, 사람들은 이제 "개"를 가족처럼 생각해. 네가 아는 것보다 한국사람들도 "개"를 사랑해. 아니 "개"뿐만 아니라 "고양이"도, 많은 동물들도 다 사랑해."
"다행이구나, 대윤?? 나 한 가지 더 알고 싶은 것이 있어. 질문해도 될까??"
"그래, 내가 알 수 있는 한에서는 무엇이든지..."
"실은, 얼마 전 중국에서는 특별한 날에 개를 먹는 날이 정해져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 그것이 사실이야?? 그리고 더 풍미를 좋게 하기 위해서 개를 때려서 죽인다는데 그것도 사실이고?? 끔찍한 일이라고 생각해..."
중국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개"를 먹는 날이 "복날"이 아닌가...라는 추측을 했다. 사실, 아직도 우리나라도 "개"를 복날에 먹는 일부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까지 다시 설명을 하기는 어렵고, 중국에 대한 이야기로 건너갔다.
"중국 사람들은 개고기를 아직도 좋아한다고 들었어, 그래서 자주 먹지. 단, 그것은 중국에서만 가능한 일이야, 타이베이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어. 동양에서는 모든 고기를 때려서 죽이면 그 맛이 더 좋아진다고 믿는 것도 사실이야. 그래서 중국에서 맛을 좋게 하기 위해서 때려서 죽인다는 것도 사실 일거야."
내가 아는 것은 아는 대로 그에게 그대로 이야기를 해줬다. 그는 아직도 "개"를 때려서 죽인다는 잔인성에 잠시 놀란 듯했지만, 곧 "배가 고프고, 가난했고, 고기가 필요했으니까..."라며 이해를 했다.
"대윤, 너는 수의사가 될 테니까, "개" 안 먹을 거지??"
"아니, 나는 원래부터 못 먹어, 그리고 앞으로도 안 먹을 거야."
"고마워, 귀찮았을 텐데, 나는 너희 나라의 그 문화를 꼭 알고 싶었어. 그런데 이제 조금 편안해졌어. 앞으로는 누구도 "개"를 먹지 않았으면 좋겠어. 가족이잖아..."
그녀의 마지막 말, "가족"이잖아... 가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30분이 넘게 스마트 폰으로 대화를 한 결과 다행히 그녀는 한국 아니 그 오래전부터 내려왔을 "개" 식용 문화에 대해 안타까워하지만 이해를 하고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으면 좋겠다고 말을 했다.
하지만, 나는 일부는 진실을, 일부는 거짓말을 했다. 그 거짓말을 한 것은 친구가 이제는 아니라고 믿고 싶다는 것을 그대로 믿게 해주고 싶은 내 바람이었다. 몇 년 전, 사진을 찍으러 지방의 도시에 갔을 때, 보신 거리라는 자그만 골목이 있었다. 그곳에는 "개"를 비롯해서 "흑염소"까지 보신이라고 불리는 많은 음식 및 보약을 빙자한 탕을 판매하는 곳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큰 쇠창살 안에 갇힌 개를 보았다. 개는 나를 향해 울부짖고 있었고, 나는 직감상으로 그 녀석이 자신의 운명을 알아차린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 처절한 눈빛과 녀석의 울음소리에서 녀석의 사진을 찍으면 굉장한 사진이 될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지만 오히려 녀석의 사진을 찍기는 커녕, 녀석이 실려있는 트럭의 가게에 가서 저 개가 얼마냐고 물었다. 그 가게의 사장님은 저 개는 파는 개가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하시고 볼 일이 없으시면 가보시라고 차갑게 말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만약, 그가 원하는 것이 돈이라면 내가 갖고 있는 돈의 얼마든지 줄 용의도 있었다. 그리고 녀석에게 자유를 주고 싶었다. 다시는 이런 곳에 끌려오지 말라고 먼 곳에다가 풀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이런 의도를 아는지 가게 주인은 단칼에 나의 물음을 잘라버렸다. "아직도 "개"를 먹는 사람이 있을까?? 한 50:50은 돼??"라는 질문에 나는 아니라도 단호히 말했었다. 하지만, 솔직히 나도 장담할 수 없는 대답에 불과했다.
버려지는 유기견 연간 13만 마리, 그리고 주인 혹은 보호소 등지에서 학대를 받는 녀석들까지 포함하면 수십만 마리의 "개"들이 한국에서 고통받고 있다. 나는 사실 그것을 알고 있지만, 그에게 솔직하게 말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내 나라, "코리아"가... 아직도 "개"를 식용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TV 동물농장에서부터,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그리고 반려견 행동교정 전문가가 인기 직업이 된 이 나라의 반려동물 문화에서, 이제는 적어도 "식용"문화는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 만약, 아직도 대한민국이 지극히 어려운 경제적 과도기 시절이라거나 혹은 그 이전의 시대라면 이해를 할 수 있겠지만, 대한민국은 현재 세계 10권 안의 당당한 경제적 대국이다.
"개"를 선호하는 사람들은 "개"가 가장 사람과 비슷한 영양성분과 맛을 갖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렇다면 "식인"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비난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과 가장 비슷한 맛과 영양분을 섭취하고 싶으면 그냥 "사람"을 먹으면 된다. 문화 절대주의니 상대주의 니를 떠나서 이제는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문화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런 것들을 우리 스스로도 너무 잘 알고 있는 지금, 굳이 몸에 좋다는 이유로 과거로 회기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세상에 꼭 "개"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영양을 보충할 수 있는 음식도 많은데 말이다. 이제 더 이상,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눈을 찌푸리는 문화는 사라져야 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싶다. 겉으로 거짓으로 상대방을 숨기는 것은 언젠가는 진실로 밝혀지게 되어있다.
2020-07
글 고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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