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소년 송유근, 신화는 없다.

가벼워질 그의 어깨를 생각하며

by 고대윤

내가 그를 매스컴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은 벌써 20여 년이 가까워져 온다. 그는 여러 매스컴에 방송을 타기 시작했고, 자녀를 가진 모든 부모들이 그의 부모를 부러워하면서, 이 땅에 "영재 개발"이라는 사회적 붐을 형성하기에 충분했다. 나는 그에 관련된 방송을 여러 번에 걸쳐서 봤다. 한 편으로는 하늘이 그 조그만 아이에게 내려준 능력에 시기와 질투, 그리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 아이의 벽을 절대로 넘을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좌절감 때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말 그대로의 부러움, 철저한 부러움 때문이었다.


"대한민국의 과학 영재"들이라는 모 프로그램에서 그는 미, 적분 문제를 자유자재로 만지며, 미, 적분은 쉬운 것이라고 말을 하고, 벡터 값이 방향을 갖는 값이라는 것(물론, 벡터를 그렇게 단순하게만 정의하기는 그렇지만.)을 스스럼없이 말하는 것을 보며, 아직도 미, 적분 문제에서도 헤어 나오지 못하는 나 자신이 한심하고 비참해서 씁쓸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었다.




하지만, 그 뒤의 그의 인생은 평탄치 못했다. 그가 선택한 것인지, 아니면 그의 부모가 선택한 것을 그가 따른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사회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 "천재" 혹은 "영재"라는 명함을 가슴에 붙인 그는 그가 정상적인 나이에 해당하는 교육 코스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어쩌면, "천재"는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비상하고도 특이한 면이 있기에,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기까지 했지만.


미국의 수학자 "존 내쉬"의 인생을 그린 "뷰티풀 마인드"라는 책을 보다 보면, 그가 얼마나 보통 사람들과 다른지 혹은 광기에 어려있었는지 알 수 있지만, 송유근도 어지간히 특별한 구석이 있었다. 물론, 미적분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풀어내는 그에게 초등학교의 "산수"에 불과한 수학 문제는 너무도 지루하고 따분한 문제들이었음에 스스로 집중하지 못하고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수업 시간 혹은 학교에서의 시간 내내 둥둥 떠다녔을 것이다.


문제는 그곳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 대한민국은 "천재" 혹은 "영재"라 불리는 특별한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교육시킬 수 있는 교육 기관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국가이다. 더불어 그 옛날, 중화권의 유교문화가 그대로 남아있어서, 장유유서에 따른 혹은 나이에 따라 차근차근 그에 맞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 사람을 배척하는 문화가 남아있다. (조선 시대에 천재라 불리던 이들의 삶이 비참했던 것을 보더라도.)하지만, 이 것은 꼭 대한민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 등의 선진국의 교육 여건 아래에서도 "천재"나 "영재"라 불리는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것은 분명한 한계점을 갖고 있다. 그것은 이미 그들을 교육시킬 수 있는 교육자의 한계를 넘어서버린 그들의 능력 때문이기도 하다.


여기서 그의 부모는 자연스레 월반을 선택했다. 중학교와 고교를 검정고시로 넘겨버리고 곧바로 대학(인하대)으로 진학을 시켜버렸다. 아이는 이 상태에서 더 힘들고 괴로웠을지도 모른다. 초등학교를 다닐 나이의 아이가 20살도 넘은 대학생 형, 누나들과 같이 다닌다는 것은, 이제 아동복을 입을 아이에게 XL 혹은 105 사이즈의 옷을 입힌 것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기에.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의 소식을 접하면서 나는 그가 "천재" 혹은 "영재"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어쩌면 철저하게 프로그램된 컴퓨터도 아닌 계산기에 불과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의 부모들은 매스컴에서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 아래에서의 "영재"에 대한 지원 시스템이 너무도 부족하다고 열변을 토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또다시 자신의 아들에 대한 지원을 얻어낼 수 있었고, 그 지원들은 보통 사람들은 쉬이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또한 그것을 통해 그들이 원하는 사회적 시선과 부러움을 한 번에 만족할 만큼 받을 수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송유근은 대학에 진학해서도 특별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자퇴서를 내고 말았다. 또 대한민국의 교육시스템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뒤로, 그의 소식은 뜸해지더니 대전에 있는 UST라는 대학에 입학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거의 송유근만을 위한 교육 시스템의 결정체였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논문 합격까지 8년이라는 시간까지 확보하면서 군대를 연기하는 특혜도 누렸다. 하지만, 그는 그의 천재성을 증명할 수 있는 논문을 만들지 못했다. 그는 "천재"가 아니었다. 그는 어쩌면 그의 부모와 주변 사람, 그리고 어떤 것에 대해서 쉽게 끓어오르는 대한민국 "냄비근성"의 철저한 욕심이 복합해서 만들었던 희생양이었을지도 모른다.


오늘, 송유근의 UST 학생 자격이 박탈되었다. 그럼에도 UST에서는 송유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것은 송유근이라는 네임이 갖고 있는 밸류에 대한 미련 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안타깝게도 스스로 "천재"라는 것을 증명해내지 못했다. 그에게 너무 기회가 적었다고 말하기에는, 그는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이 누릴 수 있는 것들과 그에게 집중되는 이목을 통한 스타성등, 너무 많은 것을 누렸다. 하지만 그는 실패했다.




나는 대한민국 학부모들의 유별난 모습들을 많이 본다. 그 유별난 부모들은 모두 다 자기 아이들은 특별함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원하고 원해서 세상에 나온 나의 아이는 모두 소중하고 틀별 하다, 하지만 그 아이가 내게 소중하고 특별하다고 해서 그 아이의 모든 것이 다 특별하지는 않다.

대한민국 부모들이 유별난 모습을 보이게 된 것에는 교육계의 문제도 크다. 교육계는 아이들에게 적절한 교육의 질을 보장하지 못한다. 자신이 전공한 과목의 문제들도 제대로 소화해 내지 못하는 교사들을 보면서 학생들은 실망한다. 그 실망은 곧 학부모에게 이어지고 학부모들은 공교육에 자자한 원성과 함께 사교육을 저절로 찾게 된다.


사교육은 가정의 무리한 지출을 가져온다. 그리고 아이에 대한 무한한 기대로 그 무리한 지출을 부모들은 감내한다. 자신의 아이들이 서울대, 연대, 고대 등의 SKY와 의, 약, 치, 한으로 대두되는 대한민국에서의 최고 엘리트가 되는 것을 위해서는 그들은 모든 것을 희생하고 감내한다. 하지만 최고가 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사회는 최고를 그리 많이 원하지 않는다.


송유근의 부모는 분명 남들과는 다른 그들의 자식이 너무나도 자랑스러웠을 것이다. 더하기를 알려주면, 곱하기를 알고, 곱하기를 알려주면 어느새 분수를 공부하고 있는 그들의 자식은 그들 삶의 자랑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는 가장 기본적인 것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것을 "창조"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매번 같은 것을 암송하는 앵무새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


세상의 욕심에 허덕이는 아이들을 바라본다. 부모들의 기대가 넘치는 아이들을 바라본다. 나이가 들어서 갖게 된 눈은 이제 그 학생이 어느 정도의 그릇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는가, 그리고 어느 정도의 시선으로 세상과 눈을 맞추고 싶은가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얼마나 자신을 버리고 노력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까지도. 학부모들은 그의 자녀들이 최고의 대학과 최고의 학과를 찾아가기를 원하지만, 그것은 그냥 그들의 바람이다. 학생들은 이미 포기하고 자신이 절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런 것을 보다 보면 너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와 자녀, 모두 다 스스로의 행복한 인생을 던져버리는 것이기에.


말 그대로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다. 정말 자신이 무엇인가를 희망하면, 그 희망을 품은 이들은 나이가 들어서라도 그 희망을 찾아서 다시 길을 떠난다. 굳이 학부모가 길을 정해주지 않고, 강요하지 않아도 그들에게는 이미 그 길에 대한 내재된 욕망이 있다. 송유근에게는 그런 욕망이 언제부터인가 보이지 않았다. 그냥 평범한 아니 어쩌면 이 세상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감정마저 가득한 눈이었다.




이제부터 그는 어떻게 할 것인가. 에 대한 호기심과 염려가 생긴다. 그는 과연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있을까.

어쩌면 쉬이 수긍을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오히려 그의 부모에게는 힘든 시간이겠지만, 그는 천재로써의 짐을 벗어버릴 때가 되었다. 세상에 천재는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각자의 시간 속에서 열심히 일하는 보통의 우리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에는 노벨상이 없다.(아니, 노벨 평화상이라 불리는 1개의 상은 논외로 한다. 나는 그런 상은 인정하고 싶지도 않다.) 그 이유는 "천재" 혹은 "영재"라 불렸던 사람들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천재"보다 더 중요한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인재"들을 무시하고, 특별함만을 찾아 헤매며, 추종하는 이 나라의 문화가 만들어낸 잘못된 분위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공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학생들이 미국이나 선진국으로 유학을 선택하는 것은 이제 당연한 코스가 되어버렸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대한민국에서 이공계를 졸업하고 그들만의 능력을 살려 자신들의 꿈을 펼치기에는 대학 이후에 연결되는 교육 기관과 더불어 그들의 전공을 살려도 한계가 있는 문화 때문이다.

과학고 학생의 80% 이상은 의대 등에 진학하는 것은 이 사회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송유근 군이 처음 매스컴에 나오는 것을 보고, 나는 그가 너무 부러웠다. 그리고 그런 능력을 가질 수 있는 그가 한 편으로는 세상 높이 쭉쭉 올라가기를 바랐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안타깝게 그렇게 하지 못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가 천재였는지 아녔는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미 굳을 대로 굳어져버린 이 나라의 문화가 아닐까 한다. 송유근이라도 끝까지 남겨놔서라도 대한민국의 이공계에도 희망이 있다고 말하고 싶은 UST 총장의 의견이 그 좋은 에가 아닐까. 그나마도 송유근 뒤로는 그만큼의 학생도 발견하지 못할 것을 걱정하는 마음이 아닐는지. 어찌 되었든 송유근은 이제 천재에서 보통사람으로 돌아갔다. 그의 가슴이 무한대로 아프고 힘들 수도 있겠지만, 차라리 "천재"라는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었던 그의 삶이 가벼워진 것을 축하할 뿐이다.


만약, Post 송유근 군이 나온다면, 이런 아픈 전철을 밟지 않으면 좋겠다.


2020-06


글 HARU

커버 이미지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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